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한테 읽히려고 쓴다는 ‘청소년시’를 읽으면 거의 모든 작품이 ‘입시지옥에서 쪼그라드는 가녀린 넋’을 노래한다. 아무래도 중·고등학교가 한국에서 입시지옥 말고는 아무것이 아니니, 청소년시에서 이런 이야기만 다룰밖에 없겠구나 싶다. 그런데, 시집 한 권을 통째로 ‘입시지옥에서 기계나 종이 되는 바보스러운 하루’만 그리니, 이런 시집을 읽으면서 참으로 무거우면서 거북하다. 틀림없이 중·고등학교는 입시지옥이지만, 푸름이한테 입시지옥만 있을까? 어른들은 청소년시로 입시지옥만 노래해야 하는가? 입시지옥만 노래할 노릇이 아니라, 입시지옥을 없애려고 힘쓸 일이 아닐까? 입시지옥을 만든 사람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입시지옥을 만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를 만들지 않았다. 어른들이 만든 학교이고, 어른들이 만든 입시지옥이다. 어른들은 학교와 입시지옥을 만들고서, 청소년시도 만들면서 청소년시로는 그예 입시지옥만 다룬다. 어딘가 좀 얄궂은 모양새 아닌가. 《그래도 괜찮아》라는 청소년시 꾸러미를 읽으면서 생각한다. 이 시집이 참말 100% 입시지옥 이야기만 다뤘으면 너무 끔찍해서 끝까지 못 읽었겠다고. 군데군데 ‘푸른 꿈’과 ‘푸른 삶’ 이야기가 있어서, 겨우 끝까지 읽는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한 줄 책읽기)
| 그래도 괜찮아
안오일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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