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엄마도 참 문지아이들 84
유희윤 지음, 조미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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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0



빨래터 물놀이 하며 시읽기

― 참, 엄마도 참

 유희윤 글

 조미자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7.3.30.



  대나무를 베어 마당에 놓으니, 아이들이 이 대나무를 ‘출렁다리’로 삼으면서 오르락내리락 놉니다. 대나무를 베면서 잔가지를 몇 건사했더니, 대나무 잔가지는 잔가지대로 아이들이 휘휘 휘두르면서 노는 놀잇감이 됩니다.


  출렁다리 대나무 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어느새 평상에 앉아 인형놀이를 합니다. 아이들 놀이는 천천히 달라집니다. 이 놀이를 하다가 저 놀이로 가고, 저 놀이를 하다가 이 놀이로 오며, 다시금 새 놀이로 건너뜁니다.


  어디에서나 놀고, 무엇으로든 놉니다. 언제나 놀고, 하루 내내 뛰놉니다.



.. 밟지 말랬는데 / 고양이가 밟았다 // 발자국은 / 꽃 모양 ..  (고양이 발자국)



  아이들더러 ‘뛰지 말라’거나 ‘달리지 말라’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다그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기운차게 뛰면서 놀고,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며,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봅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동네에서나, 아이들은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기 어렵습니다. 학교이든 집이든 동네이든, 아이들이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면 어른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슨 말을 할까요?


  아이들한테 놀이터를 마련해 준 뒤, 집이나 동네나 학교에서 뛰지 말거나 달리지 말거나 소리치지 말라고 하나요? 아이들이 마음껏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워서 가슴이 후련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얌전히 있거나 조용히 있으라고 말하나요?



.. 왼쪽에 한 개 / 오른쪽에 한 개 // 주머니에 귤 넣고 / 만지작만지작 학교에 가며 ..  (귤)



  어제 낮에는 마을 빨래터를 치웁니다. 막대솔을 어깨에 짊어지고 셋이 빨래터로 갑니다. 아버지는 신나게 빨래터를 치우고, 두 아이는 하염없이 물놀이를 합니다. 먼저 샘터를 치우는데, 샘터를 치우면 두 아이는 작은 샘터에 둘이 함께 들어가서 놀아요. 아버지가 땀을 흘리면서 빨래터를 거의 다 치울 무렵, 슬슬 두 아이가 다가와서 “아버지 도와줘야지!” 하면서 거드는 시늉을 합니다.


  빨래터를 드디어 다 치우면, 두 아이는 가을에도 옷을 적시면서 물장구를 칩니다. 물을 서로 끼얹고 스스로 물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추워서 몸이 덜덜 떨릴 때까지 놀던 아이들을 햇볕 잘 드는 곳에 서서 몸을 말리도록 합니다. 젖은 옷을 벗고 해바라기를 하면 추운 몸에는 어느새 따순 기운이 감돕니다. 알몸이 된 아이들은 시골마을 빨래터에서 마음껏 더 놉니다.



.. 옆자리 병구가 / 내 손 펴게 하고 / 올려놓았다, 꼭 쥔 제 주먹 // 주먹을 풀어 / 사탕 한 개 내려놓고 / 내 손 꼬옥 오므려 주었다 ..  (병구의 손)



  유희윤 님이 빚은 동시집 《참, 엄마도 참》(문학과지성사,2007)을 읽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엄마’와 ‘아빠’라는 낱말을 참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이 낱말 ‘엄마·아빠’는 아이들이 아기일 적에만 쓰고는 너덧 살이나 예닐곱 살부터는 ‘어머니·아버지’로 고쳐서 알려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열 살을 넘고 스무 살을 넘기도록 말을 고쳐 주지 못해요.


  아기한테 ‘맘마’ 먹자고 하던 어버이가 열 살 어린이한테도 ‘맘마’ 먹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 젊은이더러 ‘맘마’ 먹으라 하면 스무 살 젊은이는 무엇을 느낄까요? 나를 언제까지 아기로 여기느냐고 투덜거릴 테지요. 아이가 열 살이 되기 앞서 예닐곱 살부터 ‘어머니·아버지’라는 낱말을 쓰면서 ‘아기에서 벗어나 아이가 된 삶’을 깨닫도록 돕고, 열 살 뒤부터는 ‘오롯한 사람’으로 마주하도록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말다운 말을 가르치는 일이란, 삶다운 삶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아기 말’에서 ‘아이 말’을 거쳐 ‘어른 말’을 들려주는 일이란, 아이가 앞으로 손수 삶을 가꾸도록 이끌면서 가르치는 일입니다.



.. ‘안경아, / 너도 쉬렴.’ // ‘아빠 깰 때까지 / 조용히 쉬렴.’ ..  (눈길 한 번 더 주고)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귀여운 것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학습이나 교훈이나 시험공부나 대학입시로 달달 볶아야 할까요? 아이들은 무엇을 받아야 할까요. 입시교육과 학원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 시골집엔 / 콩을 좋아하는 콩쥐가 / 할머니랑 살지요 ..  (할머니 댁 콩쥐)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한테 읽히는 동시에는 사랑을 실어야 합니다. 아이와 함께 즐길 동시에는 어른 스스로 짓고 가꾸며 보살핀 사랑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이 아름다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숨결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이쁘장한 말을 쓴대서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와 즐겁게 나누려고 하기에 동시가 됩니다. 짧게 쓰거나 가락을 맞추어 쓰기에 동시가 되지 않습니다. 어른 스스로 삶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가꾸는 하루를 찬찬히 담아서 짓기에 동시가 됩니다.



.. 바람 부는 밤 / 함석지붕에 풋감 떨어진다 // 쿵. 쿵. / 잠들만 하면 또 쿵그르 // 할머니도 / 그러려니 / 할아버지도 / 그러려니 // 외양간의 누렁소도 / 멍멍이도 꼬꼬닭도 / 그러려니 ..  (산골의 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은 살짝 아쉽습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는 눈길이 된다면, 아이와 함께 가꿀 삶과 마을과 지구별을 더 넓게 살피는 마음결이 된다면, 한결 따사로운 이야기가 되었으리라 느껴요.


  어른이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낄 때에 동시를 씁니다. 아이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른 누구나 어른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꾸어야 동시를 쓸 수 있어요. 유희윤 님은 이러한 ‘사랑’을 잘 건사하리라 느낍니다. 다만, 이 사랑을 아이와 어디에서 어떻게 나누면서 꽃으로 피울 때에 아름다울까 하는 대목까지는 아직 못 짚지 싶어요.


  빨래터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손을 말린 뒤 동시집 《참, 엄마도 참》을 읽었습니다. 이 동시집에 이어 선보일 다른 동시집에는 ‘즐거운 놀이’와 ‘기쁜 노래’와 ‘맑은 사랑’과 ‘따스한 꿈’이 골고루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0.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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