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605) 아래(下) 6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동의 하에 헤어졌다

《고우다 마모라/서현아 옮김-교도관 나오키 4》(학산문화사,2006) 59쪽


 서로의 동의 하에 헤어졌다

→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

→ 서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 서로 이야기해서 헤어졌다

→ 헤어지기로 서로 이야기했다

 …



  한자말 ‘동의(同意)’는 “(1) 같은 의미 (2) 의사나 의견을 같이함 (3) 다른 사람의 행위를 승인하거나 시인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서로 동의해서 헤어졌다”고 한다면, “헤어지기로 서로 뜻을 같이했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헤어지는 사람들은 “우리는 헤어지기로 서로 뜻을 같이했다”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헤어지자는 뜻을 서로 같이할 적에는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처럼 말합니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동의’하거나 ‘같이’하거나 이모저모 따지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헤어지자고 말했다”처럼 이야기해요. 4339.8.18.쇠/4347.10.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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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는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손질합니다. ‘헤어지다’라는 말을 쓰니 반갑습니다. 흔히 ‘이별(離別)’이라고 쓰니까요. ‘서로’란 말도 잘 쓰기는 했으나 토씨 ‘-의’를 얄궂게 붙여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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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47) 아래(下) 7


미국의 중재 아래 진행되던 골란 고원 반환을 둘러싼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평화 협상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여행 중 뉴욕에서 들었다

《임지현-이념의 속살》(삼인,2001) 203쪽


 미국의 중재 아래

→ 미국이 중재하며

→ 미국이 이끌면서

→ 미국이 이끌어

 …



  중재를 한다면 ‘중재했다’고 하면 될 일입니다. ‘중재 아래’라 할 까닭은 없어요. 그나마 일본 말투처럼 ‘중재 하에’라 쓰지 않았으니 낫다고 여길 분이 있을까 궁금한데, 한자 ‘下’를 한국말 ‘아래’로 풀었어도, 일본 말투를 털지 않는다면,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글투입니다. 껍데기뿐 아니라 알맹이를 보아야 합니다. 4339.11.21.불/4347.10.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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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끌어 이루어지던, 골란 고원 되찾기를 둘러싼 시리아와 이스라엘 평화 협상이 깨졌다는 이야기를 여행길에 뉴욕에서 들었다


‘진행(進行)되던’은 ‘이루어지던’으로 다듬습니다. ‘돌려주다’나 ‘되돌려주다’를 뜻하는 한자말 ‘반환(返還)’을 손질하자면, “골란 고원을 돌려주느냐 마느냐 하던 평화 협상”쯤으로 고쳐써야지 싶습니다. 또는 “골란 고원 되찾기를 둘러싼”으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무산(霧散)되었다’는 ‘깨졌다’나 ‘어영부영 끝나다’로 손보고, ‘소식(消息)’은 ‘이야기’로 손보며, ‘여행 중(中)’은 ‘여행을 하다가’나 ‘여행길에’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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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59) 아래(下) 8


나무들 역시 이처럼 개별화되고 구체화하는 시간과 장소의 영향 아래 있다

《웬델 베리/박경미 옮김-삶은 기적이다》(녹색평론사,2006) 70쪽


 시간과 장소의 영향 아래 있다

→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 때와 곳에 따라 달라진다

 …



  “영향 아래 있다”는 “영향을 받는다”로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앞에 토씨 ‘-의’까지 붙였네요. 이런 말투는 “정부의 영향 아래 있는 기관지”라든지 “태풍의 영향권 아래 있는 남부 지방” 같은 데까지 가지를 칩니다. 이 모두 “정부 영향을 받는 기관지”와 “태풍 영향권에 든 남부 지역”으로 고쳐야 알맞아요. 4339.12.15.쇠/4347.10.1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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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이처럼 쪼개지고 나눠지는 때와 곳에 따라 달라진다


‘역시(亦是)’는 ‘-도’나 ‘또한’으로 손봅니다. 그나저나 “개별화(個別化)되고 구체화(具體化)하는”은 무슨 소리일까 알쏭달쏭합니다. ‘개별화’는 한국말사전에조차 안 나오는 낱말이고, ‘구체화’는 “구체적인 것으로 됨”을 뜻한다는데, 이런 말풀이로는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글을 쓰거나 옮길 때에는 글뜻이 또렷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아듣도록 써야 올바릅니다. 아무리 좋거나 옳거나 아름답다고 하는 생각이라 하더라도, 이웃과 동무한테 제대로 밝혀서 들려주지 못한다면 덧없는 말이 되고 말아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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