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553) 교과서적 1


교과서적이고 엄격한 고향의 세계와, 퇴폐적이고 방종한 대학의 세계 사이에서 나는 고뇌했다

《곽아람-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아트북스,2009) 187쪽


 교과서적이고 엄격한 고향의 세계

→ 교과서 같고 엄격한 고향 세계

→ 틀에 박히고 깐깐한 고향

→ 판에 박히고 갑갑한 고향

 …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교과서적’은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모범이 되는”이요, 둘째는 “판에 박힌”입니다. 한 낱말을 놓고 엇갈리는 두 가지 쓰임새입니다. 그나저나, 우리들이 ‘교과서적’이라고 하는 말투를 꼭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같은 말투가 없다면 우리 생각을 나타낼 길이 없고, 이 같은 말투가 아니라면 내 느낌을 나눌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교과서 같은”이나 “교과서다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 남을”이나 “교과서를 보는 듯한”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루는”이나 “교과서에 갇힌”이나 “교과서 울타리에 갇힌”이나 “교과서를 다루는 듯한”이나 “교과서에 얽매인”이라 이야기해도 잘 어울립니다. 자리에 따라서는 “교과서에나 나오는”이나 “교과서처럼”이나 “교과서에 읊듯이”라 할 수 있겠지요. ‘-的’ 굴레에서 벗어나면, 때와 곳에 맞게 다 다른 말투를 살릴 만합니다. 아니, ‘-的’ 수렁에서 헤어나야, 다 다른 말투를 다 다르면서 아름답게 북돋울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的’이라고 하는 말끝을 아무 자리에나 함부로 붙이면서 우리 깜냥껏 이야기를 나누는 틀을 잃습니다. 한국사람은 ‘-的’과 같은 말투에 얽매이면서 슬기를 빛내며 넋을 키우는 길을 스스로 버립니다. “교과서에 갇힌” 꼴이라 할까요. “낡은 교과서를 붙잡는” 꼴이라 할까요. “좋은 교과서를 만들지 못하는” 꼴이라 할까요. “새로운 교과서를 엮지 않는” 꼴이라 할까요.


 시민운동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 시민운동에서 좋은 보기로 남으리라 본다

→ 시민운동에서 훌륭한 보기로 남으리라

 교과서적인 삶은 우리 시대에 없는 것이 아닐까

→ 교과서 같은 삶은 우리 시대에 없지 않을까

→ 반듯한 삶은 우리 둘레에 없지 않을까

→ 아름다운 삶은 우리 터전에 없지 않을까


  스스로 훌륭한 길을 걷고자 하지 않으니, 스스로 훌륭한 보기를 이루지 못합니다. 시민운동도 스스로 훌륭한 길을 걷는다면 “시민운동이 이룬 훌륭한 보기”를 이루겠지요. 남 앞에 내보이려는 생각이 아닌 나 스스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생각이라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삶은 우리 둘레에 넉넉히 있음”을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 다른 아름다움을 빛내면서 말하고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 찾는 말이고, 스스로 찾는 삶입니다. 스스로 가꾸는 말이고, 스스로 가꾸는 삶입니다. 스스로 빛내는 말이며, 스스로 빛내는 삶입니다. 스스로 일구는 말이며 스스로 일구는 사랑입니다.


 교과서적 원칙보다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 판에 박힌 잣대보다는 때에 따라 생각을 달리하는

→ 고리타분한 잣대보다는 그때그때 알맞게 맞추는

 고정 관념이나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 굳은 생각이나 딱딱한 생각에 사로잡히면

→ 얽매인 생각이나 세상모르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 해묵거나 틀에 박힌 생각에 사로잡히면


  생각이나 마음이나 넋이나 얼이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이며 글이며 따분하게 굳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생각이 고리타분하니 말이 고리타분합니다. 삶이 케케묵으니 말이 케케묵습니다. 도시에서 살든 시골에서 살든 생각없는 삶이라 한다면 언제나 답답하고 갑갑한 삶이면서 답답하고 갑갑한 생각이자 말입니다. 어디에서 어떠한 일을 하면서 산달지라도 생각있는 삶일 때에는 열린 삶이면서 열린 말입니다. 깊은 삶이면서 깊은 말입니다. 넉넉한 삶이면서 넉넉한 말입니다.


  고운 매무새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 고운 생각과 말이 샘솟지 않는 모습이란 본 적이 없습니다. 얄궂은 몸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서 얄궂은 생각과 말이 배어나오는 모습이란 못 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고자 한다면, 스스로 하는 일을 비롯하여 스스로 품는 생각과 꾸리는 삶과 펼치는 말 모두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 가지만 아름다울 수 없으며, 어느 한 가지만 아름답다면 거짓이나 겉치레이거나 겉핥기이거나 겉꾸밈입니다. 아름다운 밥과 옷과 집입니다. 아름다운 사랑과 믿음과 나눔입니다. 아름다운 이름과 힘과 돈입니다. 아름다운 손과 머리와 가슴입니다. 나란히 흐릅니다. 다 같이 움직입니다. 어깨동무하는 이음고리입니다. 4343.1.9.흙/4347.10.1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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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히고 깐깐한 고향과, 어지럽고 제멋대로인 대학 사이에서 나는 괴로웠다


“엄하고 철저하다”를 뜻하는 한자말 ‘엄격(嚴格)하다’인데, ‘엄하다’는 “철저하고 바르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말풀이가 서로 겹칩니다. ‘철저(徹底)하다’는 “빈틈이나 모자람이 없다”를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그러니까 ‘엄격한’이란 “빈틈없이 바른”을 가리키는 셈인데, 한국말로 하자면 ‘깐깐하다’나 ‘꼼꼼없다’쯤 됩니다. “고향의 세계”는 “고향 세계”나 ‘고향’으로 다듬습니다. “퇴폐적(頹廢的)이고 방종(放縱)한”은 “지저분하고 어수선한”이나 “어지럽고 제멋대로인”으로 손보고, “대학의 세계”는 “대학 세계”나 ‘대학’으로 손봅니다. ‘고뇌(苦惱)했다’는 ‘괴로워했다’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고뇌’를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괴로워하고 번뇌함”으로 풀이하는데, ‘번뇌’는 “마음이 시달려서 괴로워함”으로 풀이합니다. 이 또한 겹치기 말풀이입니다. 한 마디로 하면 ‘고뇌’이든 ‘번뇌’이든 ‘괴로움’이란 소리요, ‘고달픔’이나 ‘힘겨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교과서적(敎科書的)

1. 해당 분야에서 모범이 되는

   - 시민운동의 교과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

     교과서적인 삶은 우리 시대에 없는 것이 아닐까

2. 판에 박혀서 현실적이지 않은

   - 교과서적 원칙보다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

     고정 관념이나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


 '-적' 없애야 말 된다

 (1693) 교과서적 2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교과서적인 언행을 하며 애늙은이처럼 군다

《김정화-여행하는 카메라》(샨티,2014) 28쪽


 교과서적인 언행을 하며

→ 교과서 같은 말을 하며

→ 교과서처럼 말을 하며

→ 답답하게 말을 하며

→ 갑갑하게 말을 하며

 …



  풋풋한 아이들이 교과서에나 나옴직한 말을 한다면 애늙은이 같아 보입니다. 싱그러운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말을 한다면 살짝 질립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이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굳은 말을 한다면 고개를 살레살레 젓고야 말겠지요.


  교과서 같은 말이란 갑갑한 말입니다. 교과서처럼 하는 말이란 답답한 말입니다.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히니 재미없는 말입니다. 따분한 말이요 멋없는 말입니다. 아름답지 못한 말이고 슬프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를 학교에 넣어 교과서로 가르치는군요. 4347.10.10.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 언제나 갑갑하게 말을 하며 애늙은이처럼 군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는 “한 치도 흐트러짐 없이”로 손봅니다. ‘언행(言行)’은 “말과 몸짓”을 함께 가리키는 한자말인데, 보기글 끝에 “애늙은이처럼 군다”와 같이 나오니, “언행을 하며”는 “말을 하며”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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