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60. 움직이고 흐른다



  나는 바깥마실을 다니면서 가방에 늘 공책과 연필을 챙깁니다. 언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공책과 연필이 가방에 꼭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저잣마실을 갈 적에도 몇 시 몇 분에 버스를 타고, 버스삯을 얼마를 치렀다는 이야기를 공책에 적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읍내까지 버스로 20분 동안 달리는 길에도 틈틈이 이 생각 저 느낌을 적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버지가 이렇게 다니는 모습을 늘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이런 모습을 흉내냅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어느 날 공책과 연필을 챙겨 저잣마실을 나옵니다. 큰아이는 걸으면서도 공책에 무엇인가 적습니다. 무엇을 적으려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껴서 무엇을 적으려나?


  일곱 살 큰아이가 아는 ‘한글’은 아직 많이 짧습니다. 혼자 떠올려서 쓸 수 있는 글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큰아이는 큰아이 나름대로 아는 한글 테두리에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우리는 누구나 아는 대로 글을 씁니다.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알지 못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기는 해요. 제대로 알지 못해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글이 되기는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채 어수룩하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알 때에 비로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합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모르면 ‘제대로 모르는 티’가 나요. 생각해 보셔요.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지을 적에 제대로 할 줄 모르면 제대로 모르는 티가 곧바로 드러납니다. 마지막 하나까지 알뜰히 다스리거나 살필 줄 알아야 제대로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짓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삶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알아서 살펴야 합니다. 기저귀를 갈 줄 모르거나, 기저귀를 빨 줄 모르거나, 기저귀를 말려서 갤 줄 모른다면, 아기를 어떻게 돌보겠습니까.


  사진은 겉모습만 찍지 않습니다. 사진은 이야기를 찍습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으려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모르는 채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이러한 사진에도 ‘제대로 모르는 티’가 스미기 마련입니다.


  기계 다루는 솜씨나 재주가 아닌, 사진에 담는 넋과 마음과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이웃이나 모델이나 숲이나 풍경이나 사물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시골을 제대로 모른다면 시골에 와서 무엇을 찍을까요? 축구 경기를 취재하려는 신문사 기자가 축구라는 경기와 축구선수를 모른다면 무엇을 취재하거나 찍어서 기사를 쓸까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우리 둘레에서 흐르거나 움직이는 삶을 늘 읽어야 합니다. 함께 움직이고 나란히 흐르면서 온마음으로 사진을 마주해야 합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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