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58. 남길 수 있는 사진



  사진은 남깁니다. 찰칵 하고 찍으면서 남깁니다. 사진은 무엇이든 남깁니다. 무엇이든 사진기를 들어 찰칵 하고 찍으면 필름이나 디지털필름에 남깁니다. 사랑하는 짝꿍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남깁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지나칠 수 없어 살며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으로 남깁니다. 눈에 띄는 무엇인가 보고는 오래오래 건사하면서 두고두고 돌아보려는 마음이 되어 사진으로 남깁니다.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를 놀리면서 문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을 모아 값진 사진장비를 갖출 수 있고, 이럭저럭 쓸 만한 사진장비를 갖출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적에는, 천만 원짜리 사진기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백만 원짜리 사진기이기에 더 사랑스럽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십만 원짜리 사진기이거나 1회용 사진기이기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스럽게 못 찍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사진으로 찍어서 남길 수 없다면, 값진 사진장비이든 값싼 사진장비이든 나오지 않습니다. 값이 다를 뿐, 사진으로 찍어서 우리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사진기입니다.


  나무를 찍다가 도끼를 못에 빠뜨린 나무꾼은 금도끼도 은도끼도 바라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금이나 은으로 만든 도끼로 나무를 찍을 수 있을까요? 못 찍지요. 돈값은 제법 할 테지만, 나무꾼은 나무를 찍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 손에 익은 쇠도끼를 바라요.


  아마 누군가는 달리 생각하겠지요. 금도끼나 은도끼를 받으면 쇠도끼를 잔뜩 장만할 수도 있고, 앞으로 나무꾼 노릇을 더 안 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고요.


  그러면, 참말 생각해 보셔요. 나무꾼이 나무를 더 하지 않으면 삶이 즐거울까요? 탱자탱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노닥거리면 삶이 즐거울까요? 나무꾼은 아침마다 밥 한 그릇 비운 뒤 깊은 숲속으로 도끼 한 자루 메고 걸어서 올라온 뒤, 나무마다 인사를 하고는 한 그루 골라서 즐겁게 쩍쩍 찍으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리라 봅니다. 그러니, 나무꾼은 날마다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쉬며 알맞게 노래하는 이 삶을 놓치거나 버리지 않으려고 ‘쇠도끼’를 고릅니다. 나무꾼이 너무 고단한 삶이었다면, 나무꾼이 굶주리거나 종과 같은 삶이었다면, 아마 금도끼나 은도끼를 바랐을 수 있어요. 나무꾼이 쇠도끼를 고른 까닭은 스스로 앞으로도 즐겁게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진장비를 손에 쥐든 사진을 찍어서 남길 수 있습니다. 자, 어떤 사진기를 손에 쥐겠습니까? 무엇을 찍겠습니까? 어떤 마음이 되어 찍겠습니까?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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