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57. 서로 재미있습니다
글을 아직 잘 모르는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글을 배웁니다. 어버이는 글씨를 하나하나 천천히 쓰면서 보여줍니다. 아이는 글씨를 하나하나 천천히 보면서 눈에 익히고 손에 익힙니다. 쓰고 쓰고 또 쓰면서 글씨가 익숙합니다.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글씨를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글씨를 한창 익히는 아이가 어버이 손길을 받지 않고 혼자 처음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 때에는 어떤 느낌일까 헤아려 봅니다.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혼자 사진기를 다루면서 찰칵 하고 한 장을 찍을 때하고 비슷하겠지요. 아이가 마음속으로 흐르는 이야기 가운데 한 토막을 손수 글 한 줄로 적을 적에는 어떤 느낌일까 짚어 봅니다. 사진을 두 장 석 장 넉 장 꾸준히 찍으면서 스스로 그리고픈 모습을 마음껏 그릴 수 있을 때하고 서로 비슷하겠지요.
이제 막 새롭게 배우는 사람은 즐겁습니다. 이제 막 배움에 눈뜨도록 이끄는 사람도 곁에서 즐겁습니다. 이제 막 글씨를 익히는 아이도, 이제 막 사진을 익히는 어른도, 다 함께 즐겁습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글씨를 알려주는 어버이도, 사진찍기를 새내기한테 알려주는 길동무나 이슬떨이도 다 같이 즐겁습니다.
배우는 재미와 가르치는 재미는 같습니다. 새롭게 맞아들이는 재미와 새롭게 알려주는 재미는 같습니다. 물려받는 재미와 물려주는 재미는 같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새로운 모습을 보기에 재미있고, 가르치는 사람은 새로운 모습을 가르치기에 재미있습니다. 배움과 가르침은 언제나 서로 새롭기에 재미있어요.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맨 처음에만 배우지 않아요. 한글은 어릴 적에 배우고 더는 안 배우지만, 한글에 담을 말은 늘 새롭게 배웁니다. 글에 담을 이야기는 늘 새롭게 삶을 가꾸면서 배우지요. 사진에 담을 숨결을 늘 새롭게 배웁니다. 사진에 담을 이야기를 언제나 새롭게 삶을 가꾸면서 배웁니다.
나이 마흔에 글쓰기를 새로 돌아보면서 배웁니다. 나이 쉰에 사진을 새로 되새기면서 배웁니다. 나이 예순에 살림을 새로 살피면서 배웁니다. 나이 일흔에 한국말을 새로 짚으면서 배웁니다. 나이 여든에 풀과 꽃과 나무와 씨앗을 새로 마주하면서 배웁니다. 나이 아흔에 아이들 웃음소리와 노래를 새로 들으면서 배웁니다.
사진길을 오래 걸었다고 해서 안 배우지 않습니다. 쉰 해나 예순 해쯤 사진길을 걸었어도 날마다 새로 배우니 날마다 새로 찍습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지 이제 닷새나 엿새가 지났어도, 날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남을 흉내내는 데에서 그치며 따분한 사진만 만듭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아끼고 북돋울 때에 서로 재미있게 나눌 사진을 얻습니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