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가 아저씨인 줄 아니?



  나는 내 생일을 딱히 생각하지 않고 산다. 나는 한국말사전 만드는 일을 하지만 딱히 한글날을 생각하지 않고 일한다. 삼백예순닷새 내내 한국말사전을 생각하지, 어느 하루만 한국말사전을 생각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린다고 한다면, 어느 하루만이 아니라 삼백예순닷새 내내 내 삶을 스스로 기리면서 살 때에 즐겁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늘 생각하는 것이란 한결같이 마음에 깃들기에 굳이 따로 꺼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내 나이나 성별이나 고장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몇 살을 먹었기에 어떤 생각을 따로 더 할 까닭이 없다. 내 성별이 무엇이니까 아저씨답게 글을 쓰거나 아줌마답게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어느 고장에서 사니까 어느 고장 쪽에 서서 글을 쓸 일도 없다.


  어떤 글을 쓰든 오직 하나를 생각할 뿐이다. 내가 쓰는 글이 올바른가·아름다운가·사랑스러운가·알맞을까·즐거울까, 이러한 대목을 차근차근 짚으면서, 이러한 대목을 밝히는 글이 되는가 하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면서 ‘아저씨이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또는 ‘시골내기이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또는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저렇게 글을 쓰지!’ 하고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궁금하다. 이런 것을 따진다면, ‘졸업장 따지기’나 ‘경력 따지기’하고 똑같다. 글은 졸업장으로 쓰지 않는다. 글은 경력, 그러니까 더 오래 많이 썼다고 해서 잘 쓰지 않는다.


  마음을 읽고 마음을 쓴다. 마음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다. 마음이 아니라면 글이 태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아니라면 글이 훨훨 날아서 찾아가지 않는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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