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는
느티나무는 꽃이나 열매를 보려고 심거나 가꾸지 않는다. 그런데 왜 느티나무가 마을마다 으레 있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느티나무는 집을 지을 적에 기둥으로 삼던 나무였다고 한다. 다만, 이 나라에서 느티나무로 집을 안 지은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때뿐 아니라, 그 뒤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권력자가 벌인 궁궐짓기라든지 절짓기라든지, 덧없는 짓이 끊이지 않다 보니, 집으로 지을 만한 느티나무가 거의 사라졌단다. 그래서, 느티나무 다음으로 소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느티나무는 퍽 드물다. 구불구불 줄기가 휘어진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 한 그루쯤 있을 뿐이다. 이런 느티나무로는 참말 집을 지을 수 없다. 그저 그늘을 누릴 뿐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소나무 다루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놀랍다. 느티나무 다음으로 집을 짓는 나무로 삼은 소나무인데, 곧게 자라지 못하게 괴롭힌다. 마치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자라야 멋스러운 줄 여긴다. 일본에서 손바닥만 한 뜰을 꾸미면서 만든 ‘분재’ 흉내를 내면서, 소나무를 엉터리로 들볶는다.
문명 사회로 바뀌면서 나무로 집을 안 짓다 보니, 또 한국에서 나는 나무로 책걸상이나 옷장이나 책상을 짜지 않다 보니, 나무를 제대로 심어서 돌보거나 가꾸는 넋을 모두 잊거나 잃은 듯하다. 나무는 부동산이나 재산이 아니다. 몇 천만 원이나 몇 억 원을 들여 사고팔면서 큰 건물 앞에 장난스레 처박는 젓가락이 아니다. 우람하게 자라는 동안 우리한테 즐거운 숨결을 베푸는 나무이고, 우람하게 잘 자란 뒤에는 우리한테 보금자리 가꿀 기둥을 베푸는 나무이다.
나무를 나무답게 마주하면서 사랑하지 못할 적에는, 삶이 삶답지 못한 길로 뒤틀리지 싶다. 나무를 나무로서 아끼며 돌보는 넋을 지키지 못할 적에는, 삶을 삶답게 가꾸면서 보듬는 숨결을 북돋우지 못하리라 느낀다. 4347.9.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