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책읽기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넘친다. 인터넷을 켜서 멍하니 있으면 정보 물결에 휩쓸려 넋을 읽기 쉽다. 가만히 보면 인터넷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고 할 만하다. 온갖 정보가 넘쳐 책상맡에서도 얼마든지 온누리를 누빌 수 있는듯이 이끌지만, 인터넷을 켜서는 온누리를 누비지 못한다.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려서 자라고, 풀벌레는 풀밭에서 노래하며, 해는 아침저녁으로 뜨고 지기 때문이다.
갈수록 이 나라는 아이들이 뛰놀기에 몹시 까다로운 터전으로 바뀐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낮은학년이라면 길에서 놀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붙잡아야 한다. 사람들이 걷는 길을 내지르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많다. 조금만 벗어나면 골목이지만, 골목을 싱싱 달리는 자동차가 오죽 많은가. 아이를 해코지하는 어른이 많다. 어른을 해코지하는 어른도 많다. 마당이 없고 골목에서 놀지 못하며 동무랑 느긋하게 뛰거나 달릴 수 없는 아이들은 저마다 제 집에 틀어박힐밖에 없다. 그런데, 집에 틀어박혀도 방이나 마루에서 마음대로 뛰거나 구르지 못한다. 위층과 아래층 눈치를 보아야 한다.
아이들도 인터넷에 사로잡힐밖에 없고, 아이들은 컴퓨터게임에 이끌릴밖에 없다.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어디를 갈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지 못하는 터전이니, 어른도 홀가분하게 일하지 못하는 터전이다. 아이도 어른도 길에서 느긋하게 돌아다니지 못한다. 이런 나라에서 사람들은 졸업장과 자격증을 늘리고, 이런 지식과 저런 정보를 쌓는다. 그런데, 나라는 똑똑해지지 않는다. 사회와 정치와 경제는 슬기롭지 않다. 교육과 문화와 예술은 사랑스럽지 않다.
인터넷을 켜는 어른들은 무엇을 보는가? 스무 살도 더 어린 가시내랑 몰래 바람을 피우는 마흔 줄 아저씨 뒷이야기를 읽는가? 군대에서 얻어맞다가 목숨을 잃고 만 가녀린 아이들 이야기를 읽는가? 이제서야 ㅈㅈㄷ 같은 신문에서조차 손가락질하는 4대강사업 뒷이야기를 읽는가? 밀양 송전탑 싸움이 언제나 슬기롭게 풀릴까 하는 이야기를 읽는가?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채 바다 한복판에 풍덩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헤엄치기는 배우지 않고서 바다 한복판에 풍덩 뛰어들겠다고 하면 어떻게 될는지 궁금하다.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으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길이 아니라면, 길다운 길이 아니라고 느낀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숨결로 노래하는 삶이 아니라면, 삶다운 삶이 아니라고 느낀다. 인터넷으로 하나가 된다는 오늘날,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인터넷으로 가까이 이어진다는 오늘날, 어깨동무하면서 활짝 웃는 사람들을 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4347.9.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인터넷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