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시골집 지키기
내 어버이는 음성이라는 시골에 산다. 한가위나 설날에 어른들한테 인사하러 찾아가는 길은 시골에서 시골로 가는 길이다. 올 한가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로운 말씀을 하신다. 이제 나이도 많이 들고 힘이 들어 더는 차례나 제사를 안 지내겠다고 하신다. 올 한가위에는 다른 곳에 나들이를 가시겠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설과 한가위뿐 아니라 제삿날까지 챙기며 지낸 나날이 마흔 해가 되었을까. 아마 마흔 해에서 몇 해 모자라지 싶다. 이제 두 분은 한결 느긋하면서 조용히 설과 한가위를 누리실 수 있을까.
올 한가위에는 시골집에서 조용히 보낸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가지 않는다. 전남 고흥에서 이곳을 가기도 저곳을 가기도 퍽 멀다. 어른인 나와 곁님도 고단하지만 아이들은 더없이 고단하다.
여느 때처럼 한가위 언저리에도 시골집에 있으니 참 조용하다. 참으로 한갓지다. 아마 옛날부터 시골사람은 이렇게 조용하면서 한갓진 나날을 누렸으리라 본다. 차례나 제사는 언제부터 누가 지냈을까? 멧골에서 조용히 지내던 옛사람도 차례나 제사를 지냈을까? 아마 안 지냈겠지. 조선이라는 때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차례나 제사를 지냈을까?
정치나 사회에서 ‘문화’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시킨 일이 아닌, 시골사람 스스로 누렸던 한가위나 설이란 무엇일까 헤아려 본다. 1200년대에는, 300년대에는, 기원전에는 시골사람이 저마다 어떤 한가위나 설을 누렸을까 궁금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낯빛으로 마주하면서 삶을 꽃피웠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논다. 그야말로 안 지치고 논다. 밥도 잘 먹고, 놀기도 잘 논다. 이렇게 쉬잖고 노니까, 저녁에 잠자리를 펴면 곧바로 곯아떨어질 테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한가위나 설에 함께 일하고 함께 쉬면서 함께 놀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한다. 4347.9.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