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951) 반대의 1 : 반대의 방향에서 접근


이 글은 그러한 방향과는 반대의 방향에서 접근하여, 문학에 나타난 정치라는 각도에서가 아니라 ‘문학 속에 흡수된 정치’라는 견지에서 그의 한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명환-졸라와 자연주의》(민음사,1982) 236쪽


 반대의 방향으로 접근하여

→ 반대쪽으로 다가서며

→ 다른 쪽으로 다가가서

→ 다르게 다가가서

→ 거꾸로 다가가서

 …



  한자말 ‘반대(反對)’는 “(1) 등지거나 서로 맞섬 (2) 맞서 거스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쪽이 아닌 다른 쪽을 ‘반대쪽(反對-)’이나 ‘맞은쪽’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반대의 방향”이 아닌 ‘반대쪽’이나 ‘맞은쪽’으로 담아내면 넉넉합니다. ‘반대쪽’이란 여기가 아닌 곳이니, ‘다른 쪽’으로 적어도 어울려요. 짤막하게 줄이면 “다르게 다가가서”로 적어 볼 수 있고, 뜻을 살려 “거꾸로 다가가서”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반대 방향 / 반대의 방향 → 다른 쪽 / 다른 곳 / 맞은쪽 / 맞은편

 반대로 놓다 → 거꾸로 놓다 / 뒤집어 놓다

 반대로 돌다 → 거꾸로 돌다

 집 방향의 반대로 가다 → 집과 다른 쪽으로 가다 / 집하고 어긋난 쪽으로 가다

 반대 의견 / 반대의 의견 → 다른 생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 부모 뜻과 달리


 ‘반대 + 의’ 꼴에서는 한자말 ‘반대’ 뒤에 붙는 토씨 ‘-의’를 떨구는 일뿐 아니라, 한자말 ‘반대’가 얼마나 쓸 만한가를 헤아려야지 싶습니다. 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참말 쓸 만한 ‘반대’일는지, 굳이 안 써도 되는데 자꾸 쓰임새를 넓히는 ‘반대’일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찬성표·반대표’처럼 쓰는 자리라면 그대로 두어야 할 테지요. 그렇지만 “그는 이 일에 반대표를 던지다”는 “그는 이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나 “그는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나 “그는 이 일을 안 좋다고 했다”쯤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4340.3.10.흙/4342.1.31.흙/4347.9.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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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그러한 눈길과는 다르게, 문학에 나타난 정치라는 테두리에서가 아니라 ‘문학에 스며든 정치’라는 눈길에서 그가 쓴 작품 하나를 살피려 한다


‘방향(方向)’은 ‘쪽’이나 ‘곳’으로 고쳐 줄 만한데, 보기글에서는 ‘눈길’이나 ‘흐름’으로 고쳐쓰면 한결 낫습니다. ‘접근(接近)하여’는 ‘다가가서’나 ‘다가서며’로 고치고요. ‘각도(角度)’는 ‘눈길’이나 ‘테두리’로 손질하고, “문학 속에 흡수(吸收)된 정치”는 “문학에 스며든 정치”로 손봅니다. ‘견지(見地)’는 ‘생각’이나 ‘눈길’로 다듬고, “그의 한 작품을”은 “그가 쓴 작품 하나를”로 다듬으며, “분석(分析)하는 것이 목적이다”는 “파헤치려 한다”나 “살피려 한다”로 다듬어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663) 반대의 2 : 반대의 뜻을 표했지


산이 좋아 물이 좋아 시골생활을 시작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동안에도 주위에서 대부분 반대의 뜻을 표했지, 진정으로 앞날을 축복해 주고 호응해 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대우-새들아, 집 지어 줄게, 놀러오렴》(도솔오두막,2006) 87쪽


 반대의 뜻을 표했지

→ 반대했지

→ 손사래를 쳤지

→ 걱정을 했지

→ 이 일은 아니라는 말만 했지

→ 이렇게 살지 말라는 말만 했지

 …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 살면서 날마다 먹는 밥이며 입는 옷을 손수 빚거나 일구거나 얻지 않아요. 모두 돈을 주고 사들입니다. 이렇게 돈으로 무엇인가 사들일 수 있게끔 돈을 버는 일에 모든 품과 겨를과 몸을 바칩니다. 이러다 보니 제아무리 시골이 고향이었고, 시골에서 살고픈 꿈을 키우는 이라 할지라도 섣불리 시골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오래도록 도시살이에 길들거나 익숙합니다.


  한번 길들거나 익숙한 틀이나 버릇에서 홀가분해지기란 몹시 어려워요. 좋지 않은 버릇이나 얄궂은 틀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떨구지 못합니다. 삶도 생각도 마음도 매무새도 굳어진 틀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하지만, 여든뿐 아니라 아흔도 가고 백도 가지 싶습니다. 어쩌면 어릴 적 굳어진 버릇은 죽는 날까지 안 고쳐지거나 안 달라지는지 모릅니다.


 시골에서 살지 말라고만 했지

 시골살이는 안 좋다고만 했지

 시골에서 어떻게 사느냐고만 했지

 도시로 돌아오라고만 했지

 도시에서 살자고만 했지

 도시가 시골보다 낫다고만 했지


  어릴 적부터 올바르고 아름답고 싱그럽고 튼튼하고 훌륭한 버릇이 몸에 익는다면 참으로 기쁘고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릴 적부터 올바르게만 살는지, 아름답게만 살는지, 싱그럽게만 생각할는지, 튼튼하게만 매무새를 다스릴는지, 훌륭하게만 넋과 얼을 가꿀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참다운 말을 익히고 알맞춤한 글을 쓰는 우리들일까요? 어릴 적부터 읽는 글이, 어릴 때부터 듣는 말이, 우리 생각과 마음을 아름다운 쪽으로 이끌어 주는가요? 우리들은 나이가 들어서나 어릴 때에나 우리 말과 글을 한 번이나마 꾸밈없이 들여다보거나 조촐하게 헤아려 보는 일이 없이 살아가지는 않는가요? 4342.2.2.달/4347.9.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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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물이 좋아 시골에서 살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동안에도 둘레에서 거의 손사래를 쳤지, 참으로 앞날을 기뻐해 주고 손뼉 쳐 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시골생활(-生活)을 시작(始作)했지만”은 “시골에서 살기로 했지만”이나 “시골에서 살지만”으로 다듬고, ‘생활(生活)하는’은 ‘사는’으로 다듬습니다. ‘주위(周圍)’는 ‘둘레’로 손보고, ‘대부분(大部分)’은 ‘거의 모두’나 ‘으레’로 손보며, ‘표(表)했지’는 ‘나타냈지’로 손봅니다. ‘진정(眞正)으로’는 ‘참말로’로 손질하고, ‘축복(祝福)해’는 ‘기뻐해’로 손질하며, ‘호응(呼應)해’는 ‘손뼉쳐’나 ‘북돋워’로 손질합니다. “없었던 것 같다”는 “없었다”나 “없었지 싶다”나 “없었던 듯하다”로 고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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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4) 반대의 3 : 반대의 관점


흔히 고난은 사람을 동물들의 수준으로 낮춘다고 한다. 랭은 반대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제프 다이어/한유주 옮김-지속의 순간들》(사흘,2013) 117쪽


 반대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 반대로 보았다

→ 다르게 보았다

→ 거꾸로 보았다

→ 이와 다르게 생각했다

→ 이를 거꾸로 생각했다

 …



  곰곰이 헤아리니, 이 보기글은 아주 단출하게 쓸 만합니다. “반대의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처럼 적을 일이 없어요. “반대로 보았다”고 적으면 돼요. 관점이든 눈길이든 생각이든 ‘이다’나 ‘있다’로 나타냅니다. “(이러한) 관점이다”처럼 쓸 노릇이에요. “(이러한) 눈길이다”라든지 “(이러한) 생각이 있다”로 써야지요. 품에 지니거나 주머니에 지니는 것이 아닌 만큼 ‘지니다’라는 낱말을 아무 곳에나 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 투로 “지니고 있다”로 쓰는 말투는 더 얄궂습니다. 4347.9.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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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시밭길은 사람을 짐승과 비슷하게 낮춘다고 한다. 랭은 이를 거꾸로 보았다


‘고난(苦難)’은 ‘괴로움’이나 ‘가시밭길’로 손보고, “동물(動物)들의 수준(水準)으로”는 “짐승들 눈높이로”나 “짐승과 비슷하게”로 손봅니다. “관점(觀點)을 지니고 있었다”는 “보았다”나 “생각했다”나 “바라보았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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