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광이아재비 책읽기 (며느리밑씻개)



  길가나 풀숲에서 아주 흔하게 보는 풀이 있다. 이 풀에 꽃망울이 조물조물 달릴 무렵 꽃망울이 어찌나 고우면서 환한지, 어머니한테 여쭈고 둘레에 물어 보지만 좀처럼 풀이름이나 꽃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 이렇게 지낸 지 꽤 오래된다.


  올해에 이르러 내가 그동안 궁금해 하던 풀과 꽃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며느리밑씻개’라 한다. 늦여름부터 첫가을 사이에 피어나는 고우면서 환한 꽃망울은 ‘며느리밑씻개꽃’이란다.


  그런데 나는 이 이름이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첫머리에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름을 놓고 학교에서 어른들이 한참 떠들던 일이 떠오른다. 며느리를 들볶던 시어머니 이야기를 어른들이 참으로 신나게 들려주었다. 그때 내 마음에 든 생각은 ‘내가 가시내 아닌 사내로 태어나서 잘된 셈일까?’였다. ‘내가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났으면 며느리를 들볶는 시어머니한테 어떻게 했을까?’ 하고도 생각했다.


  지난 2013년에 김종원 님이 《한국 식물 생태 보감》(자연과생태) 1권을 선보였다. 이 책 앞자락에서 ‘며느리밑씻개’ 이야기를 다룬다. 이녁은 식물사회학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풀이름과 꽃이름을 제대로 알고 살피려고 온힘을 쓴다고 한다. 오늘날 ‘며느리밑씻개’로 알려진 풀이름은 일본말 ‘의붓자식의 밑씻개(ママコノシリヌグイ)’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서 1937년부터 책에 실렸다고 한다. 1921년에 나온 책에는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 다른 풀에 ‘사광이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37년에 갑작스레 엉뚱한 이름이 실렸다고 한다. ‘아재비’라는 이름이 붙는 풀은 어느 풀과 닮은 풀한테 붙인다. ‘미나리아재비’처럼.


  더 살피니, 북녘에서는 ‘사광이아재비’를 문화어로 삼아서 쓴단다. 그리고, 북녘에서뿐 아니라 남녘에서도 적잖은 이들은 ‘사광이아재비’라는 풀이름을 쓴다. ‘사광이’가 무엇을 가리키는 이름인지까지 잘 모르겠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어쩌구 하는 이야기는 엉뚱하게 잘못 지어낸 뚱딴지 같은 소리일 뿐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런 이야기이든 저런 이야기이든, 지어내고 싶으면 지어내면 된다.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답게 지어내면 된다. 그러나, 엉뚱한 정보나 지식으로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지어내어 퍼뜨리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엉뚱한 정보나 지식으로 지은 뚱딴지 같은 이야기를 학교에서도 가르치고 사회에서도 두루 읊으면 어떻게 될까. 올바로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라 잘못 바라보는 눈길이 퍼질 때에, 우리는 무엇을 느끼거나 알거나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그동안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채 아름답구나 하며 바라본 꽃은 ‘사광이아재비꽃’이었다. 이 풀꽃 이름을 그동안 몰랐던 까닭을, 이제서야 알 수 있던 까닭을 곰곰이 돌아본다.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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