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미리, 미리 쓰는 글
나는 글을 늘 미리 쓴다. 누군가 글을 써서 달라고 바라면 곧장 글을 써서 보낸다. 내가 앞으로 책으로 엮고 싶다고 꿈꾸는 글도 미리 쓴다. 미리 차근차근 쓴다. 그런데 어제 전화 한 통을 받고는 혀를 내둘렀다.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사에서 글 한 꼭지를 써 주십사 하고 전화를 하셨는데, 어제가 8월 25일인 만큼 ‘시월호’로 넣을 글을 써 주십사 하고 이야기하려는구나 하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십일월호’에 넣을 글을 써 주십사 하고 이야기한다. 잘못 들었나 하고 여겼는데, 곧바로 받은 누리편지를 여니 ‘시월호에 실을 글’이 아닌 ‘십일월호에 실을 글’이 맞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사는 벌써 시월호 편집까지 마쳤다는 뜻이리라. 대단하구나. 참으로 빈틈이 없구나. 이렇게 일을 하고 글을 받으니 아주 많은 사람들을 독자로 이끌면서 잡지를 선보일 수 있구나. 내가 하는 일이 한국말사전 만들기인 터라, 한글날이 있는 시월을 헤아려 ‘한국말 이야기’를 써 주십사 하고 물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아니고 ‘시골살이 이야기’를 써 주십사 하고 묻는다. 그래서, 재미나게 글을 쓰기로 했다. 미리 미리 미리. 4347.8.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