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속의 벚꽃 上 - 배심원제도의 빛과 어둠
고우다 마모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69



누가 누구를 죽였을까

― 미궁 속의 벚꽃 上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글·그림

 도영명 옮김

 시리얼 펴냄, 2011.7.25.



  전쟁이 터졌으면, 이쪽에서 저쪽을 죽이든 저쪽에서 이쪽을 죽이든 ‘죽인 짓’이 틀림없지만, 어느 쪽에서나 ‘죽인 잘못을 따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전쟁이기 때문에 서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 여겨,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전쟁이기 때문에 죽여도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허울을 쓴 채 서로 죽이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커지거나 이어집니다. 허울이 전쟁일 뿐, ‘사람 죽인 짓’은 똑같기 때문에,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서로 앙갚음을 할 마음만 가득합니다.



- ‘나, 난 방금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 이렇게까지 살인자가 될 만큼 망가져 버린 건가. 나란 놈은!’ (13쪽)

- ‘결국 갈 곳 없는 피리터가, 사회의 밑바닥을 떠도는 인간이 남을 처벌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는데.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27쪽)




  죽여도 될 사람이 있을 턱이란 없습니다. 죽어도 될 사람이 있을 까닭이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이라든지, 지구별에서 없애야 할 사람이 있을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기에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을 뜨지 않아서 마음을 열지 못한 탓에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헤아리자면, 여러 독재자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어 여느 사람을 괴롭히거나 죽인 허수아비나 꼭둑각시가 있습니다. 독재자한테 빌붙은 허수아비나 꼭둑각시한테 잘 보이려고 바보짓을 한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재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던 공무원과 교사가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거나 일삼는 사람은 참말 바보스럽기 때문입니다. 바보스러운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하고 말했습니다. 이 옛말을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지만, 이 옛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예부터 한겨레는 ‘미운 아이’한테 떡을 더 주었을까요?



-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맡아도 괜찮은 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이려고 했던 내가, 사람을 처벌한다니.’ (29쪽)

- “배심원 여러분은 이 형사사건을 각자의 인생경험에 비춰서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53쪽)




  ‘미운 아이’나 ‘고운 아이’란 없습니다. 다만, ‘미운 아이’라 할 적에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 마음이 다친 아이들을 가리켜 ‘미운 아이’라고 에둘러 말할 뿐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들한테 사랑(떡 하나)을 자꾸 베푼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한 탓에 자꾸 바보스러운 짓을 저지르니, 이 아이들이 아무쪼록 앞으로 제대로 사랑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알도록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쥐었던 이들 가운데 참답게 ‘사랑’을 알거나 누리거나 나눈 사람은 거의 없지 싶어요. 사랑을 모르기에 허튼 짓을 저지릅니다. 사랑을 누리지 못했기에 독재정권 서슬 퍼런 칼을 휘두릅니다. 사랑을 나눈 적이 없기에 우악스러운 토목개발과 새마을운동 따위를 밀어붙입니다.


  미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운 아이만 사랑하고픈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라 한다면, 참말로 사랑이라 한다면, 내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한테만 나눌 수 없습니다. 참사랑이라 한다면, 다 함께 참삶을 이루도록 어깨동무를 하는 길로 나아가리라 느낍니다. ‘밉다·곱다’라는 틀을 씩씩하게 깨부순 뒤, 서로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길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이 된다고 느낍니다.



- ‘지금부터 ‘집단의 악’을 말하려고 한다는 건, 이 여자애도 내부고발을 한 나랑 같은 배신자라는 얘긴데! 대체 왜 피고인 측의, 엄마를 죽인 남자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걸까?’ (116쪽)

- “집단 괴롭힘이 거짓말이라느니 뭐라느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마. 이 어린애 같은 인간아! 난 진짜 있었던 일을 말하러 온 것뿐인데. 어째서 너 같은 안경잡이 뚱땡이한테 이런 공격을 받아야 되는 건데!” (128쪽)



  고우다 마모라(고다 마모라) 님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 上》(시리얼,2011)을 읽습니다. 일본에 처음 생긴 배심원 제도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그려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배심원 제도가 드리우는 어두움과 빛을 나란히 밝히는 작품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심원이 되고, 어떤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며, 판사는 어떻게 법을 다루고, 사회는 어떻게 흐르는가를 조용히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기나긴 해에 걸쳐서 괴롭던 이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사람’을 죽인다면, 누가 누구를 죽인 셈일까요. ‘살인죄’란 무엇일까요. 집단 따돌림이 없었어도 살인이 있었을까요. 살인죄로 어느 한 사람을 다스린다면 집단 따돌림이 사라질까요.




- ‘자식을 지켜야 할 어머니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식에서 ‘사형’을 선고한 것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이미 이 가족에겐 부모 자식 간의 애정 같은 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170쪽)

- “각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을 제 자식에게 빼앗긴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집단 괴롭힘을 그만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175쪽)



  만화책 《미궁 속의 벚꽃》은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이들이 ‘언젠가 앙갚음을 고스란히 받을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저마다 조금씩 품는데, 이 두려움이 차츰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더 모질게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다고 이야기합니다. 따돌림받는 이가 앙갚음을 못 하게끔 더 모질게 밟고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폭력으로 한 사람을 누르면 ‘새로운 폭력’이 안 터질까요. 폭력으로 사람을 눌러서 ‘폭력이 더 없도록’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자면, 군대를 키우면 전쟁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이웃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를 모조리 빼앗으면 전쟁이 없이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만화책이 아닌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전쟁·폭력·살인·따돌림’ 따위는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얼거리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과 살인과 따돌림은 바로, 군대뿐 아니라 학교와 회사와 모든 조직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참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으면 되지, 경찰이 있으면 되지, 대통령이 있으면 되지, 뭐가 있으면 되지 …… 하면서, 정작 하나도 될 일은 없는데 스스로 눈을 감습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전쟁입니다. 전쟁은 폭력입니다. 폭력은 살인을 낳습니다. 살인으로 나아가는 따돌림입니다. 군대도 경찰도 없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없어야 합니다. 문화도 과학도 없어야 합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삶이 있어야지요. 생각이 있어야지요. 사랑이 있어야지요.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있어야지요. 우리는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아름답습니다. 이 땅에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 ‘있지 않아도 될 것’이나 ‘없어야 할 것’만 잔뜩 심은 채 바보짓을 저지르지 않나 돌아보아야 합니다. 4347.8.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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