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8.19.

 : 줄기찬 빗줄기 사이로



- 늦여름에 비가 너무 잦을 뿐 아니라 그치지 않는다. 해가 나지 않는다. 이런 날씨라면 덥지는 않다 할 테지만, 해가 나지 않으니 논이며 밭이며 곡식과 남새가 제대로 여물지 못한다. 곡식도 남새도 해를 받아야 자란다. 해가 없으면 곡식과 남새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사람도 해를 쬐지 못할 때에는 따사로운 빛이 스러진다. 해를 적게 쬐거나 못 쬐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헤아려 보면 쉬 알 만하리라 느낀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에서, 햇볕과 햇빛하고는 동떨어진 채 전깃불로 밝힌 등불 옆에서 일하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가.


- 빗줄기가 그친다. 해는 나지 않는다. 며칠째 우체국에 못 갔다. 비가 그쳐야 자전거를 몰아서 달릴 텐데. 혼자 비옷을 입고 우체국에 다녀올까 싶다가도 그만둔 지 여러 날. 드디어 빗줄기가 없구나 싶어 부랴부랴 짐을 꾸린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어디 간대! 자전거 탄대!” 하고 외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자전거를 타고 싶었을까.


- 우체국에 들러 도서관 소식지를 열 통 부친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른다. 두 아이가 저마다 빵봉지를 하나씩 고른다. 면소재지로 나오는 길에 빗방울이 몇 떨어졌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비야 비야 오지 마라, 비야 비야 이제 그쳐라.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빗방울이 더 떨어지지는 않는다. 큰아이가 놀이터에 가고 싶다 말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가기 힘들구나. 게다가 이제 집에 가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지.


- 자전거를 천천히 달린다. 작은아이는 어느새 수레에서 잠든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잠자리로 옮긴다. 작은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저녁밥을 차려서 큰아이를 먹일 적에도 잠을 안 깬다. 이러더니 이튿날 아침까지 내처 곯아떨어진다. 산들보라야, 너한테 하루란 참으로 길면서 짧고, 느리면서 빠르구나. 잘 자는 산들보라는 앞으로 무럭무럭 씩씩하게 크겠구나.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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