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책읽기
내 어릴 적에 국민학교 동무들끼리 ‘바보’를 “바다 보배”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누구를 ‘바보’라고 놀리면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덜 떨어진 사람”이라고 놀리려고 누군가 ‘바보’라 말하더라도, 나 스스로 “바다 보배”라고 여기면, 참말 나는 바다에서 보배가 되고, 바다를 가꾸는 보배가 되며, 바다를 밝히는 보배가 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바보’이기에 ‘바라보기’를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바보’는 ‘바로보기’를 할 수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참 그렇구나 싶기도 해요. 바다를 가꾸는 보배와 같은 노릇은 똑똑하다는 이들은 안 해요. 다들 도시로만 가니까요. 바라보기는 똑똑하다는 이들은 안 해요. 똑똑하다는 이들은 아주 바빠서 도시에서 돈을 벌기만 하거든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가만히 바라보면서 생각에 젖는 사람은 오직 바보뿐 아닌가 싶어요. 어디에서나 바로보려고 하는 사람은 바보뿐이지 싶어요. 왜냐하면, 바보는 하루를 온통 스스로 누리거든요. 똑똑한 사람은 돈을 벌거나 이름값을 거머쥐거나 힘을 부리고 싶어서, ‘남이 시키는 일’을 곧잘 해요. 제 몸을 스스로 쳇바퀴 틀에 맞추어요. 게다가, 돈과 이름과 힘이 있는 무리에서는 똑똑하다는 이들을 데려가서 일을 부리거나 시키려 하지요. 똑똑하다는 사람은 으레 허수아비나 꼭둑각시 노릇을 합니다.
이와 달리, 바보라고 하는 이한테 일을 시키려는 부자나 권력자는 드뭅니다. 어쩌다 일을 시켜도 허드렛일을 시키고, 잘 되리라 바라지 않기 마련입니다. 바보는 언제나 홀가분하게 제 삶을 누려요. 둘레를 느긋하게 살펴봅니다. 둘레를 넉넉하게 돌아봅니다. 둘레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바보인가, 바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면, 나는 내 삶을 바라보는가 바로보는가, 또는 나 스스로 보배와 같은 숨결인가 아닌가 하고 마음속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