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3) 요리


마치 아빠가 직접 와서 내게 엄마가 요리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

《러드야드 키플링/정회성 옮김-먼 옛날 와가이 강가에서 생긴 일》(서강출판사,2008) 80쪽


 엄마가 요리하는

→ 엄마가 밥하는

→ 엄마가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



  다른 사람 집에 가서 밥하는 사람을 ‘밥어미’라고 했습니다. ‘식모(食母)’라고도 했지만. 밥 잘하는 사람을 두고 ‘밥꾼’이라 할 수 있을 터이나, 우리들이 쓰는 말은 오로지 ‘요리사(料理師)’입니다. 밥을 하는 사람이니 ‘밥꾼’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이니 ‘요리사’입니다.


 요리 솜씨 → 밥하는 솜씨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오늘 하루 남다른 먹을거리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 바로 끓인 매운찌개


  밥보다 빵을 많이 먹고, 밥도 곡식으로 이룬 먹을거리만을 즐기지 않으니, ‘밥’이라는 말로 가리키기에는 테두리가 좁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고, ‘밥먹기’가 아닌 ‘식사(食事)’일 때에는, 우리 ‘밥삶’은 사라지고 ‘食文化’만 남을는지 모릅니다.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다

 거친 일꾼을 잘 요리했다 → 거친 일꾼을 잘 다루었다


  ‘殖利’도 ‘要利’도 한국사람이 쓸 말이 아닙니다. 도무지 무슨 말일까 알쏭달쏭합니다. 중요한 이치나 교리라면 한국말로 ‘고갱이’이거나 ‘알짜’나 ‘알맹이’나 ‘줄거리’입니다. ‘要理’가 아니지요.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처럼 말하면, 이 ‘요리’를 얼마나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천주교 뜻”이나 “천주교 참뜻”이나 “천주교 깊은 뜻”이나 “천주교 참넋”처럼 적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낱말을 잃으면 열 가지 낱말을 잃습니다. 한 가지 말투를 잃으면 열 가지 말투를 잊습니다. 한 가지 낱말을 살리면 열 가지 낱말을 살립니다. 한 가지 말투를 가꾸면 열 가지 말투가 살아납니다. 4341.4.15.불/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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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빠가 몸소 와서 내게 엄마가 밥하는 데 쓸 물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듯하잖아


‘직접(直接)’은 털어내도 되고, ‘여기’나 ‘몸소’를 넣어도 됩니다. “말하는 것 같잖아”는 “말하는 듯하잖아”로 손봅니다.



 요리(要利) = 식리(殖利)

 요리(要理)

  (1) 긴요한 이치나 도리

  (2) [종교] 중요한 교리

   - 생계를 돕고 기도문과 천주교 요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요리(料理)

  (1) 음식을 일정한 방법으로 만듦

   - 요리 솜씨 / 오늘의 특별한 요리 / 즉석에서 요리한 매운탕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 남자를 제 마음대로 요리하다 / 거친 일꾼들을 아이 다루듯 잘 요리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5) 수분


이건 서리라는 거야. 공기 안에 있던 수분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어 있는 거지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92쪽


 공기 안에 있던 수분

→ 공기에 있던 물기

→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

→ 바람 사이에 있던 물

 …



  한국말사전에는 모두 여섯 가지 ‘수분’이 실립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어느 만큼 쓰는 ‘수분’은 ‘물기’를 빼고는 없습니다. 물을 담아 꽃을 꽂는 그릇을 ‘水盆’이라 할 일이란 없습니다. ‘앙금’이나 ‘화장품’을 ‘水粉’이라 할 일도 없고, 주제를 지키는 일을 ‘守分’이라 할 일도 없습니다. 꽃가루가 옮겨서 붙는 일은 ‘꽃가루받이’일 뿐, ‘受粉’이 아닙니다. ‘壽分’ 같은 한자말도 쓰임새나 쓸모가 없습니다.


 수분을 섭취하다 → 물을 마시다

 수분이 증발하다 → 물기가 마르다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 물기가 많다


  ‘물기’를 가리킨다는 한자말 ‘수분’이 어느 자리에 쓰이느냐를 살펴보면, “수분 섭취”와 “수분 증발”과 “수분 다량 함유”처럼 다른 한자말하고 붙습니다. 그러니까 ‘수분’이라는 한자말이 쓰이면서 ‘섭취(攝取)’며 ‘증발(蒸發)’이며 ‘다량(多量)’이며 ‘함유(含有)’며 쓰이는 셈입니다. 처음부터 한국말을 쓴다면 다른 한국말을 알맞게 쓰도록 길을 트는 셈이요, 처음부터 한자말을 쓴다면 자꾸자꾸 다른 한자말을 불러들여서 말삶을 어지럽히는 셈입니다. 4341.4.17.나무/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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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서리야. 바람 사이에 있던 물방울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잎사귀에 붙었지


“서리라는 거야”는 “서리야”나 “서리라고 해”로 손봅니다. “공기 안에 있던”은 “공기에 있던”이나 “바람 사이에 있던”으로 손보고요. “붙어 있는 거지”는 “붙었지”나 “붙었단다”로 손질합니다.



 수분(水分) = 물기(-氣)

   - 수분을 섭취하다 / 수분이 증발하다 / 수분을 다량 함유하다

 수분(水盆) : 물을 담아 꽃을 꽂거나 괴석(怪石) 따위를 넣어 두는 그릇

 수분(水粉) 

  (1) = 무리

  (2) = 물분(-粉)

 수분(守分) : 분수나 본분을 지킴

 수분(受粉) : 종자식물에서 수술의 화분(花粉)이 암술머리에 옮겨 붙는 일

 수분(壽分) : 타고난 수명의 분수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0) 차도


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기도를 해 주었지만, 병은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56쪽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 나아지지 않았고

→ 나을 낌새가 없었고

→ 나을 듯하지 않았고

→ 나으려 하지 않았고

 …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면 ‘찻길’입니다. 차를 마시는 법이면 ‘차법’입니다. 그런데 남녘에서는 차 마시는 법을 ‘차 茶’라는 한자를 써서 ‘다도’라고 하는군요. 우리들은 “다를 마신다”고 하지 않고 “차를 마신다”고 하는데, 왜 차 마시는 법은 ‘다도’여야 할까요.


  ‘遮道’나 ‘遮路’나 어디에 쓰는 말인지 알 길이 없는 한편, 쓰일 곳조차 없습니다. 이와 같은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실리니 괜히 한국말사전 부피만 두껍습니다. 쓰이지 않는 낱말이 아니라, 쓰일 까닭이 없는 한편, 지난날 한문 권력자들이 아무렇게나 쓰던 말은 말끔히 털어내야 올바릅니다.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그는 병이 조금씩 나아졌다

→ 그는 병을 차츰 씻어내었다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 좀 나아지셨는지요?

→ 좀 괜찮아지셨는지요?

 …


  몸이 아플 때에는 ‘아프다’고 말합니다. 아팠던 곳이 조금씩 아물면 ‘나아진다’고 말합니다. 느끼는 대로 말하면 되고, 바라보는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4341.4.2.물/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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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는 내 방을 찾아와 오랫동안 빌어 주었지만, 아픈 곳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기도(祈禱)를 해 주었지만”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빌어 주었지만”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병(病)은’도 그대로 둘 만한데, “아픈 곳은”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전(全)혀’는 ‘조금도’로 다듬어 줍니다.



 차도(車道) = 찻길

   - 차도로 뛰어들다 / 시위대는 차도로 나와서 시위를 계속했다

 차도(差度) : 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정도

   - 그의 병세에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 어르신네는 차도가 좀 있으신지요?

 차도(茶道) : ‘다도’의 북한어

 차도(遮道) = 차로(遮路)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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