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2) 방치
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정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둔 채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장석주-가을》(백성,1991) 126쪽
몇 달 간을 방치해 두었었다
→ 몇 달 동안을 내버려 두었다
→ 몇 달 동안을 그대로 두었다
…
한국말사전에 실린 한자말 ‘방치’는 두 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한 나라 정치”를 가리킨다는 ‘邦治’는 쓰일 일이 없습니다. 쓴다고 한들 알아들을 사람도 없을 테고요.
두 번째 ‘放置’ 뜻풀이를 보면 ‘내버려 둔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이하여 ‘내버려 둔다’는 말을 쓰지 않고, 이 말을 한자로 옮겨서 ‘방치’라고 쓰는가 하고. 한국말 ‘내버려 둔다’나 ‘내버린다’라고만 적으면 어딘가 모자라거나 아쉽거나 알맞지 않다고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쓰레기의 방치로 → 쓰레기를 내버려 두어
그대로 방치된 채 → 그대로 버려진 채
한국말이 세계에 첫 손가락을 꼽을 만하다고 자랑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바람이 미치도록 분다고 해서 영어바람에 휩쓸릴 까닭 또한 없습니다. 이 나라 권력자와 지식인이 옛날부터 한문을 썼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들까지 한문을 익히거나 알아야 할 까닭마저 없습니다.
다만,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배워야지요. 한문을 배워야겠다면 배워야지요. 배우되, 지식자랑이 되지 않도록, 지식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깔보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옳게 추스른 다음에 배워야지요. 배우되, 알뜰히 배워서 훌륭히 펼치도록 배워야지요. 말 사이사이 우쭐거리듯 끼워넣거나 섞는 못난 짓을 일삼지 않도록 매무새를 곱게 여미어야지요. 4341.5.25.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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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읽고 모아 온 책들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그냥 마구잡이로 쌓아 둔 채 몇 달 동안 내버려 두었다
‘정리(整理)하지도’는 ‘갈무리하지도’나 ‘차곡차곡 간수하지도’로 다듬습니다. “몇 달 간(間)을”은 “몇 달 동안을”로 손보고, ‘두었었다’는 ‘두었다’로 손봅니다.
방치(邦治) : 나라의 정치
방치(放置) : 내버려 둠
- 쓰레기의 방치로 온 동네가 지저분해졌다 /
죽은 물고기가 저수지에 그대로 방치된 채 썩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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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940) 의사
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자기 안에 분명히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기류 유미코/송태욱 옮김-나는 아들에게서 세상을 배웠다》(샨티,2005) 179쪽
어떤 의사를 가지고 한 말이었다
→ 어떤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
우리는 누구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동이 트는 모습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생각합니다. 달과 별을 바라보며 이제 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서 함께 어깨동무하자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놀면서 오늘 하루도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운 말을 쓰면서 마음 깊이 고운 넋이 자라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意思’가 아닙니다.
의사를 전달하다
→ 생각을 알리다
→ 뜻을 알려주다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다
→ 사람들 생각을 섬기다
→ 사람들 뜻을 귀여겨듣다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 혼인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
→ 혼인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병을 다스리는 사람을 ‘醫師’라고 쓸 일이란 없습니다. 그냥 ‘의사’면 됩니다. 윤봉길 의사를 말할 때에도 한글로 ‘의사’라 하면 되지, ‘義士’로 안 써도 됩니다. 그나저나, ‘義死’나 ‘義師’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疑事’는 “의심스러운 일”이고 ‘疑辭’는 “의심스러운 말”이라는데, 이런 말을 왜 써야 할까요? ‘擬死’는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을 가리킨다는데, 한국말로 ‘죽은 척’이라 하면 됩니다. 쉽고 알맞게 쓰면 됩니다.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을 ‘議事’라고 하는데, ‘會議’라느니 ‘議論’이라느니 자꾸 한자말을 빌어서 쓰니 다른 한자말까지 잇달아 쓰고 맙니다. 모임(← 會議)을 열어 어떤 일을 이야기(← 議論)하면 됩니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임을 꾸리면(← 議事) 됩니다. 4338.6.8.물/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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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틀림없이 이때는 아이 스스로 틀림없이 어떤 뜻을 품고 한 말이었다
보기글을 살피면, 앞에서는 ‘틀림없이’라 하면서도 곧바로 ‘분명(分明)히’라는 한자말을 쓰는군요. 뒤에 적은 ‘분명히’는 덜어야겠습니다. 아이가 마음속으로 어떤 뜻을 품고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이니, “자기(自己) 안에”는 “아이 스스로”로 손봅니다.
의사(衣?) = 옷상자
의사(意思) :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
- 의사 전달 / 국민의 의사 /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다
의사(義士) : 의로운 지사
의사(義死) : 의를 위하여 죽음
의사(義師) : 의로운 뜻을 품고 일어난 군사
의사(疑事) : 의심스러운 일
의사(疑辭) : 의심스러운 말
의사(縊死) :‘액사’의 원말
의사(擬死) : 외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은 동물이 움직이지 않고 죽은 체하는 일
의사(擬似) : 실제와 비슷함
의사(醫事) : 의료에 관한 일
의사(醫師) :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 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의사(議事)
(1) 회의에서 어떤 일을 의논함
(2) 회의에서 의논할 사항
의사(議史) : 신라 때에 둔 내사정전의 으뜸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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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121) 운반
애들 두 명이 나를 따라와서 구입한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오스카 루이스/박현수 옮김-산체스네 아이들 上》(청년사,1978) 48쪽
물건을 식당까지 운반한다
→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 물건을 일터까지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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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글에서 말하는 ‘식당’은 ‘글에서 내가 일하는 곳’이니, ‘일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말사전에는 두 가지 ‘운반’이 나옵니다. 하나는 “구름 가운데”를 뜻한다는 ‘雲半’인데, 최남선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서 보기글을 따서 싣습니다.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
→ 구름 가운데에 높이 솟은 곳은 곧 반야봉
문학작품에 쓰인 낱말이라면서 ‘雲半’을 실었구나 싶습니다. ‘高聳’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운반’이나 ‘고용’처럼 한글로만 적으면 무엇을 가리키거나 나타내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에 실린 낱말이지만 ‘한국말’이라 하기 어렵고, ‘한국말사전 올림말’이라 하기도 어렵습니다.
최남선이라고 하는 분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이와 같은 고리탑탑한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왜 실어야 하는가를 따져야지 싶습니다. 굳이 싣고 싶다면, ‘한국 한자말 사전’을 따로 엮어서 실어야지요.
이삿짐 운반 → 이삿짐 나르기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는 편의를 생각해서 / 나르기 좋도록
물건을 옮겨서 나른다는 ‘運搬’은 말 그대로 ‘옮기다·나르다·옮겨 나르다’라고 말하면 그만입니다. 달리 더 할 말이 있을까요. 말뜻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고, 말느낌 그대로 적으면 됩니다. 4339.7.20.나무/4341.6.24.불/4347.8.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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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둘이 나를 따라와서, 내가 산 물건을 식당까지 나른다
“애들 두 명(名)이”는 “애들 둘이”로 다듬습니다. ‘구입(購入)한’은 ‘사들인’이나 ‘산’으로 다듬고요.
운반(雲半)
(1) 구름의 가운데
- 남쪽 맨 뒤로 둥긋하게 운반에 고용(高聳)한 것은 곧 반야봉이요…
(2) 음력 동짓달을 달리 이르는 말
운반(運搬) : 물건 따위를 옮겨 나름
- 이삿짐 운반 / 물건 운반의 편의를 생각해서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