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46) 거동
부실한 영양 공급에 질병이 겹치면서 거동조차 어려웠다
《마이클 예이츠/추선영 옮김-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이후,2008) 105쪽
거동조차 어려웠다
→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 다니기조차 어려웠다
→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어려웠다
…
지난겨울은 ‘지난겨울’일 뿐, ‘去冬’이 아닙니다. ‘속수자’는 무엇이고, ‘拒冬’은 무엇일까요? 풀이름을 왜 이렇게 한자말로 붙여야 할까요?
어른들을 가리키며 “거동이 불편하다”라는 말을 곧잘 씁니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고 동네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기에 이 낱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무슨 뜻인가는 제대로 몰랐으나,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모습’일 때에 이 말을 했기 때문에 어렴풋이 헤아려 보기는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다 → 움직이기 힘들다
거동이 수상하다 → 움직임이 수상하다
군대에서 지낼 때, ‘거수자’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초소에서 총을 들고 경계를 설 때 ‘거수자’가 있으면 어찌어찌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거수자’는 ‘거동수상자(擧動殊常者)’를 줄인 말이라 했는데, 한국말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 그치가 뭘 하는지만 지켜보고
→ 그치 움직임만 지켜보고
→ 그치 하는 일만 지켜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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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움직임’이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한국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이라는 낱말을 살려서, “할머니는 움직임조차 어려웠다”나 “할머니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처럼 말하는 사람은 그리 안 많습니다. 모두들 ‘거동’이라는 낱말을 넣습니다. 군대에서도 ‘움직임’보다는 ‘거동’을 사랑합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에서 총을 닦을 때 ‘수입(手入)’이라고 말해서 어리벙벙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역하는 날까지 ‘수입’이라 안 하고 ‘손질’이라고 말했지만, 중대장이나 행정보급관이나 소대장은 하나같이 ‘총기수입’이라고만 말했고, 동무들도 ‘손질’보다는 ‘수입’이라고 말했어요. 4341.7.1.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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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못 먹은데다가 몸까지 아프면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부실(不實)한 영양(營養) 공급(供給)에”는 “어설픈 밥에”나 “제대로 못 먹은데다가”로 다듬습니다. “질병(疾病)이 겹치면서”는 “몸까지 아프면서”나 “몸이 아프면서”로 손질합니다.
거동(去冬) = 지난겨울
거동(拒冬) = 속수자
거동(擧動) : 몸을 움직임
- 거동이 불편하다 / 거동이 수상하다 / 작자의 거동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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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0) 설치
슈퍼마켓에서는 계란 상자들이 다시 사용될 수 있도록, 계란 상자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M.램/김경자,박희경,이추경 옮김-2분 간의 녹색운동》(성바오로출판사,1991) 141쪽
모으는 코너를 설치하면 좋다
→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면 좋다
→ 모으는 데를 두면 좋다
→ 모으는 곳을 놓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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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에 여러 가지 한자말 ‘설치’가 실립니다. 이처럼 여러모로 실린 ‘설치’가 얼마나 쓰이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라 했을 때에 ‘설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으리라 봅니다. 이런 자리에서는 “줄다리기에서 갚아 주려고”로 적어 주어야 알맞습니다.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안테나 놓인 자리를 바꿨더니
설치가 간편하다 → 손질이 쉽다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 쓰레기 태우는 곳 짓기에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신호등이 건널목에 놓이다
조명탑을 설치하는 → 조명탑을 세우는
지부를 설치하고 → 지부를 두고
한국사람 누구나 한국말을 사랑하면서 곱게 쓰면 좋겠습니다. 꾸밈없이 쓸 줄 알고 수수하게 쓸 줄 알며 따사롭게 쓸 줄 알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부터 한국말을 알뜰살뜰 배우면서, 이 말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생각과 꿈을 널리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지식이 아닌 살가운 말씨와 넉넉한 몸씨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삶을 가꾸는 빛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우다, 놓다, 두다, 마련하다, 짓다, 손질하다, 꾸미다, …… 같은 낱말을 그때그때 알맞춤하게 쓰면 됩니다. 한자말 ‘설치’를 내려놓으면 됩니다. 쉬운 말은 쉽습니다. 아름다운 말은 아름답습니다. 한국사람이 먼먼 옛날부터 수수하게 주고받던 가장 쉽고 수수한 말은 언제나 가장 아름답습니다. 4341.7.26.흙/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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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는 달걀 상자를 다시 쓸 수 있도록, 달걀 상자 모으는 자리를 두면 좋다
‘슈퍼마켓(supermarket)’은 ‘가게’나 ‘구멍가게’로 고쳐 줍니다. ‘계란(鷄卵)’은 ‘달걀’로 다듬고, ‘사용(使用)될’은 ‘쓰일’로 다듬으며, ‘코너(corner)’는 ‘자리’나 ‘칸’이나 ‘곳’으로 다듬습니다.
설치(設置) : 베풀어서 둠
- 안테나의 설치 위치를 바꿨더니 / 조립식 제품은 설치가 간편하다 /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반대하여 / 신호등이 횡단보도에 설치되다 /
조명탑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 / 각 시도(市道)에 지부(支部)를 설치하고
설치(雪恥) = 설욕(雪辱)
- 우리 동네 사람들은 줄다리기에서 설치를 바라며 긴장하고 있었다
설치(楔齒) : [민속] 염습하기 전에, 입에 낟알을 물리려고 시신(屍身)의 이를 벌리는 일
설치(齧齒) : [한방] 잠을 자면서 이를 가는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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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433) 여전
‘서울 방면’이 아닌, ‘인천 방면’의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욱·김혜영) 《작가들》 22호(2007년 가을) 297쪽
여전히 남아 있다
→ 고스란히 남는다
→ 그대로 남는다
→ 아직까지 남는다
→ 여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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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돈’을 가리킨다고 하는 ‘餘錢’은 쓸 일이 없습니다. 아니, 이러한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지 말아야 합니다. 괜히 이런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으니, 쓸데없이 부피만 두꺼운 한편, ‘한국말 숫자가 한자말보다 적다’는 엉터리 얘기가 나돕니다. ‘잔금’이라는 말도 ‘잔돈’이나 ‘남은돈’으로 고쳐 줍니다.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그 사람 말버릇은 그대로였다
여전하게 소란하고 → 예전처럼 시끄럽고
큰 키도 여전하고 → 큰 키도 똑같고
‘예전과 같’기에 ‘그대로’라고 느낍니다. 예나 이제나 그대로라고 느끼는 마음은, ‘아직’도 예전하고 같은 마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여태’ 예전 생각이 남았을 테지요. 예전에 품던 생각과 느낌이 오늘날 품는 생각과 느낌하고 그대로라면, ‘똑같’거나 ‘마찬가지’이기도 합니다. 그예 ‘고스란히’ 남습니다. 4341.5.26.달/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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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쪽’이 아닌, ‘인천 쪽’으로 가는 경인선을 타며, 어린 마음에 꽤 오랫동안 서글퍼 했던 일이 아직까지 남는다
“서울 방면(方面)”이나 “인천 방면”은 “서울 쪽”이나 “인천 쪽”으로 다듬습니다. “인천 방면의 경인선”은 “인천으로 가는 경인선”으로 다듬어 줍니다. “서글퍼했던 기억(記憶)이”는 “서글퍼 했던 일이”나 “서글퍼 했던 생각이”로 손봅니다.
여전(女專) : [교육] ‘여자 전문학교’를 줄여 이르는 말
여전(如前) : 전과 같다
- 그의 말버릇은 여전했다 / 상점과 행인들이 여전하게 소란하고 번잡했다 /
큰 키도 여전하고 힘도 여전한 만큼
여전(餘錢) = 잔금(殘金)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