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195) 작업 6 : 학구적인 작업
사실 마르크스는 이처럼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학구적인 작업 외에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없었고
《스즈키 주시치-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0 14쪽
학구적인 작업 외에
→ 학문 말고
→ 공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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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적(學究的)인 작업”이라는 글월을 보니, “수학적인 작업”이나 “철학적인 작업”이나 “과학적인 작업”이라는 말도 쓰겠구나 싶습니다. “경제적인 작업”이나 “정치적인 작업”이라든지 “외교적인 작업”도 있을까요? “사교적인 작업”도 있겠군요. 갖다 붙이면 무엇이든 다 말이 되어 버리는 ‘-적’붙이 말투인데, 이 말투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쓸 만한 말투일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가지치기를 잘하고 온갖 곳에 다 들러붙으면서 많은 사람들 입과 손에 익는 말이니까 말입니다.
한자말 ‘학구적’은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학문 연구에 몰두하기 빼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하는 보기글입니다. 학문 연구란 무엇일까요? 공부일 테지요. 4340.1.2.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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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면 마르크스는 이처럼 아주 외톨이가 되어 공부 빼고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고
‘사실(事實)’은 ‘가만히 보면’으로 손보고, “완전(完全)히 고립(孤立)된 상태(狀態)에서”는 “아주 외톨이가 되어”나 “아주 혼자만 동떨어지면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외(外)에’는 ‘말고’나 ‘빼고’로 고쳐씁니다. “다른 수단(手段)”은 “다른 길”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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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268) 작업 7 :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글로 정리하는 일, 영어로 옮기는 일,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하여 책의 형태로 만드는 일 등이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이나미-나의 디자인 이야기》(마음산책,2005) 25쪽
모두 나의 작업이었다
→ 모두 내 일이었다
→ 모두 내가 하는 일이었다
→ 모두 내 몫이었다
→ 모두 내가 했다
→ 모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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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글을 보면 모두 세 가지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일’을 ‘작업’이라고 뭉뚱그립니다.
왜 앞에서는 ‘일’이라 말하고, 뒤에서는 ‘작업’이라 했을까요. 하나하나 나누어 살필 때에는 ‘일’이고, 이를 뭉뚱그릴 때는 ‘작업’일까요. 자잘하게 하거나 치를 여러 가지는 ‘일’이고, 이것저것 해치워서 이루어 내면 ‘작업’일까요.
일을 받아서 일을 합니다. 일한 품으로 일삯을 받습니다. 일을 하니 일꾼입니다. 해야 할 일들은 일감입니다. 일이 바쁘니 일손이 더 있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곳이니 일터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들은 일을 하면서 제 일을 ‘일’로 느끼지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4340.4.26.나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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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갈무리하기, 영어로 옮기기, 그림을 그리고 꾸며서 책꼴로 만들기 들이 모두 내 일이었다
‘디자인(design)하여’는 흔히 쓰는 영어인데, ‘꾸미고 만져서’나 ‘꾸며서’로 손볼 수 있습니다. “책의 형태(形態)로”는 “책으로”나 “책꼴로”나 “책 모양으로”로 다듬고, ‘등(等)’은 ‘들’로 다듬으며, “글로 정리(整理)하는”은 “글로 갈무리하는”으로 다듬습니다. ‘나의’는 일본 말투이니 ‘내’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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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417) 작업 8 : 제설작업
간밤에 백두산 정상과 거기로 오르는 길에 눈이 한 자 이상 내려 제설작업으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박도-항일유적 답사기》(눈빛,2006) 124쪽
제설작업으로
→ 눈치우기로
→ 눈 치우는 일로
→ 눈을 치운다고 해서
→ 눈을 치워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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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대에 가서 ‘제설(除雪)작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기 앞서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부지런히 쓸어냅니다. 이러다가 눈이 쌓이면 넉가래를 들고 나와서 치우고, 넉가래로 힘이 부치면 눈삽으로 하다가 나중에는 쇠삽으로 퍼냅니다.
군대에서 ‘제초(除草)작업’도 했습니다. 철책 둘레에 난 풀을 베어내는 일입니다. ‘시계청소(視界淸掃)’라고도 했는데,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나 살펴볼 수 있도록 나무도 베고 나뭇가지도 자릅니다. 제가 있던 철책에서는 고엽제를 뿌리기까지 했습니다.
제설 → 눈치우기 / 눈쓸기
제초 → 풀뽑기 / 풀베기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와 보니, 관청에서도 ‘제설작업’을 합니다. 군대와 관청과 학교에서는 그예 ‘제설작업’입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은 얼결에 어른들 말투를 물려받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골에서는 풀약을 뿌릴 때에 ‘제초제’를 쓰는군요.
우리는 이러한 말, ‘제설·제초’를 언제부터 썼을까요. 이러한 말 뒤에 ‘작업’을 붙이는 말씨는 언제부터 퍼졌을까요. 일제강점기부터 썼을까요? 그때 쓰던 말이 군대에 깊이깊이 박히면서 사회에도 두루 퍼졌을까요? 4341.4.25.쇠/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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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백두산 꼭대기와 거기로 오르는 길에 눈이 한 자 넘게 내려 눈을 치우느라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정상(頂上)’은 ‘꼭대기’나 ‘봉우리’로 손질합니다. ‘이상(以上)’은 ‘넘게’로 다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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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477) 작업 9 : 교재 선정 작업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다음 주에 교재 선정 작업을 해서 오겠습니다 …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들이 이 시간에 주로 할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김현수-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4) 107쪽
교재 선정 작업을 해서
→ 교재를 골라서
→ 교재를 알아보고
→ 교재를 살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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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敎材)’는 가르칠 때 쓰는 책입니다. 그래서 ‘선정’과 ‘작업’을 다듬어 “교재 고르는 일”로 적을 수 있는 한편, ‘교재’까지 다듬어 “무엇으로 가르칠느지 고르는 일”로 적어도 됩니다. 뒷말을 묶어서, “무엇으로 가르칠는지 생각해 오겠습니다”나 “어떤 책을 쓸는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들이
→ 새로운 길들을 찾아가는 일들이
→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이
→ 새로운 길 찾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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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글 뒤쪽을 보면 ‘할 일’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 때에 마음 쏟아 ‘할 일’이 이러저러하다고 하면서, 바로 앞에서는 그 ‘할 일’이 ‘새로운 방안들을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적습니다. ‘작업’하고 ‘일’이 겹치기로 쓰인 셈입니다. 한국말은 ‘일’이요, 한자말은 ‘작업’이니까요.
찬찬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은 늘 ‘일’을 하지만, ‘노동(勞動)’이 어떠하고 ‘작업’이 어떠하며 ‘근무(勤務)’가 어찌어찌 하다고 이야기하기 일쑤입니다. ‘집안일’이 아닌 ‘가사노동’이라 하고, ‘일터’가 아닌 ‘직장’이나 ‘작업장’이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고칠’ 때면 ‘수정 작업’이나 ‘보완 작업’을 하고, 밤을 새우거나 늦은 밤까지 일하면 ‘철야작업’이나 ‘야간근무’라고 합니다.
일이 힘든가 수월한가를 말하지 않고 ‘노동강도’만을 따집니다. 일할 맛이 나는지, 일하는 터전이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고 ‘근로조건’이나 ‘근무조건’이나 ‘노동조건’을 살필 뿐입니다. 일하는 사람도 아니요 ‘일꾼’도 아닌 ‘노동자’요 ‘근로자’요 ‘회사원’이다 보니까, 일꾼들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닌 ‘노무사’인데다가 ‘노동부’이다 보니까, 우리들은 자꾸자꾸 ‘일’에서 멀어지지 싶습니다. 스스로 일을 돌아보지 못하면서, 스스로 무엇을 먹고살려고 무엇을 붙잡는지도 못 느끼지 싶습니다.
일을 잊으며 말을 잊고, 말을 잊으며 일을 잊습니다. 돈에 따라 일거리를 찾으면서 돈에 따라 말을 흩뜨립니다. 돈에 따라 말을 버리며, 돈에 따라 아무 일이나 함부로 붙잡고 맙니다. 4341.11.4.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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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다음 주에 교재를 골라서 오겠습니다 …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일들이 이때에 흔히 할 일이 될 듯합니다
‘검토(檢討)해서’는 ‘살펴보고’나 ‘알아보고’나 ‘헤아려 보고’로 다듬습니다. ‘선정(選定)’은 ‘고르는’이나 ‘가리는’으로 손보고, ‘방안(方案)’은 ‘길’로 손보며, ‘주(主)로’는 ‘마음 쏟아’나 ‘힘을 모아’로 손봅니다. “될 것 같습니다”는 “되리라 생각합니다”나 “될 듯합니다”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