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264) 수리
간조의 결의는 굳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수리해서 원만하게 퇴사하게 되었다
《스즈키 노리히사/김진만 옮김-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소화,1995) 77쪽
사표를 수리해서
→ 사표를 받아들여서
→ 사표를 받아서
…
한국말 ‘수리’가 셋 있습니다. 한자말 ‘수리’는 모두 열둘입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수리’는 몇 가지일까 궁금합니다. “수리 시설”과 “사표 수리”와 “고장난 곳 수리”와 “수리 탐구 시험”, 이렇게 네 가지만 쓰지 싶은데, “수리 탐구 시험”에서는 쓰일 수 있으나,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는 “셈에 밝아서 틀리는 일이 없다”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망가진 곳을 고치는 “수리해서 쓰다”는 “고쳐서 쓰다”나 “손봐서 쓰다”나 “손질해서 쓰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수리 시설”은 “물 시설”이라고 적을 때에 알아듣기에 한결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표 수리”에서도, ‘受理’는 ‘받아들임’이나 ‘받음’으로 고쳐서 써야 한다고 나와요.
다른 여덟 가지 ‘수리’는 얼마나 쓰일 만한지 궁금합니다. 손금이면 ‘손금’일 뿐 ‘手理’라 할 까닭이 없고, 손안이면 ‘손안’일 뿐 ‘手裏’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물줄기는 ‘물줄기’일 뿐이요, 물길은 ‘물길’일 뿐, ‘水理’가 아닙니다. “소매 속”을 왜 ‘袖裏’라 적어야 할까요? 근심이 있으면 “근심 있다”라 하면 되는데, 왜 ‘愁裏’라 적어야 할는지요? 옛날 역사에서 쓰던 한자말은 역사사전으로 옮길 노릇입니다.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사전은 어떤 책인지 새삼스럽게 돌아봅니다. 한국사람이 사랑할 한국말사전에 한국말이 얼마나 제대로 실렸는지 곰곰이 되짚습니다. 4340.4.18.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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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조는 굳게 다짐했고, 드디어 5월 4일에 구로이와가 그 사표를 받아들여서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간조의 결의(決意)는 굳었고”는 “간조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고”나 “간조는 굳게 다짐했고”로 다듬습니다. ‘원만(圓滿)하게’는 ‘잘’이나 ‘그대로’로 손질하고, ‘퇴사(退社)하게’는 ‘회사를 나오게’나 ‘회사를 그만두게’로 손질합니다.
수리 : 밤이나 도토리, 개암 따위의 일부분이 상하여 퍼슬퍼슬하게 된 것
수리 : 수릿과의 독수리, 참수리, 흰죽지참수리, 검독수리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수리 = 단오(端午)
수리(手理) = 손금
수리(手裏) = 수중(手中)
수리(水利)
(1) 수상 운송상의 편리
(2) 식용, 관개용, 공업용 따위로 물을 이용하는 일
- 농업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수리 시설을 확충하다
수리(水理) : 물에 관련된 근본 이론이나 이치
수리(水理) = 수맥(水脈)
수리(受理) : 서류를 받아서 처리함. ‘받아들임’, ‘받음’으로 순화
- 사표가 수리되다
수리(首吏) : ‘이방 아전’을 달리 이르던 말
수리(修理) :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
- 사실 그는 일의 종류라면 발동기 수리로부터 도토리 요리까지
수리(袖裏) : 소매의 속
수리(愁裏) : 근심이 있음
수리(數理)
(1) 수학의 이론이나 이치
- 그는 수리에 밝아서 계산이 틀리는 일이 없다
(2) 수학과 자연 과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이번 시험은 언어 영역보다 수리 영역이 어려웠다
수리(?吏) : 낮은 벼슬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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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086) 순수 1
그 초가집에는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순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엄광용-초롱이가 꿈꾸는 나라》(이가서,2006) 12쪽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
→ 눈송이처럼 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해맑은 마음
→ 눈송이처럼 깨끗한 마음
→ 눈송이처럼 하얀 마음
→ 눈송이처럼 고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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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일을 지난날에 ‘巡狩’라는 한자말로 가리켰을는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이런 말을 쓸 일이 없기도 하고, 이 같은 한자말을 굳이 한국말사전에 올릴 일이 없다고 느낍니다. 권력자나 양반이 바라볼 적에는 “임금님이 순수한다”일는지 모르나, 여느 사람한테는 “임금이 돌아다닌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거의 안 섞인 물은 ‘純水’가 아닌 ‘맑은 물’입니다. 차례로 세는 일은 그저 ‘차례로 세기’이지 ‘順數’가 아니에요. 고분고분 받는 일은 ‘고분고분 받기’이지 ‘順受’가 아닙니다.
‘順修’나 ‘順守’나 ‘循守’는 누가 언제 왜 쓸까 궁금합니다. ‘循首’ 같은 한자말도 ‘巡狩’처럼 지난날 권력자와 양반이나 쓰던 한자말입니다. 이런 낱말은 한국말사전에 담을 일이 없습니다.
순수 성분 → 맑은 성분
순수 농축액 → 맑은 농축액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 어린아이처럼 맑다
티가 섞이지 않을 때에 ‘맑다’고 합니다. 성분도 결정체도 농축액도 다른 것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에 티나 거짓이 깃들지 않으면 ‘맑’습니다. 4339.5.17.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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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풀집에는 눈송이처럼 마음이 맑은 ‘순이’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소녀(少女)’라는 한자말을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아이’라 손볼 수 있습니다. ‘가시내’로 손보아도 됩니다. “-한 마음을 가진”은 “마음이 -한”으로 손보고, “살고 있었습니다”는 “살았습니다”로 손봅니다. ‘초가집(草家-)’은 겹말이니 ‘풀집’이나 ‘초가’로 바로잡습니다.
순수(巡狩) :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
순수(純水) : 부유물이나 불순물이 거의 섞이지 않은 물
순수(純粹)
(1) 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
- 순수 성분 / 순수 결정체 / 순수 농축액
(2)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
-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를 지녔다
순수(循守) = 준수(遵守)
순수(循首) : 참형에 처한 죄인의 머리를 끌고 다니며 백성에게 보이던 일
순수(順守) : 도리를 따라 지킴
순수(順受) : 순순히 받음
순수(順修) : 미혹을 버리고 진리에 따라 수행하는 일
순수(順數) : 차례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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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147) 순수 2
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망라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 서평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책을 엮어냈다는 사실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김기태)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183호 87쪽
순수 서평만으로
→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 오로지 책 이야기만으로
→ 책 소개글 한 가지만으로
→ 다른 글은 없이 책 이야기만으로
→ 다만 책 소개글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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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야기하는 글 하나로 590쪽짜리 두툼한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 이야기 한 가지로 59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책을 말하는 글만 모아서 590쪽이 넘는 큰 책을 엮어냈다”고 합니다.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대견하다면 대견합니다.
다른 글은 안 쓰고 책을 이야기하는 글만 썼다고 합니다. ‘오직’ 책 이야기만 썼다고 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이야기만을 썼다고, ‘그저’ 한 가지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한자말 ‘순수’를 쓰면 글쓴이 마음을 한결 잘 나타낼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자말 ‘순수’를 쓰기에 맑은 말이 사그라듭니다. 맑은 넋이 되어 맑은 말을 사랑한다면, 언제나 맑은 삶을 누리면서 맑은 이야기를 두루 펼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4339.9.10.해/4341.8.26.불/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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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봄부터 2002년 겨울까지 읽은 책들을 두루 모았을 뿐만 아니라, 오직 책 이야기만으로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엮어냈기에 무척 대견스러웠다
‘망라(網羅)했을’은 ‘두루 모았을’로 다듬고, ‘방대(尨大)한’은 ‘어마어마한’으로 다듬으며, “590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量)의 책”은 “590쪽에 이르는 큰 책”이나 “590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으로 다듬어 줍니다. “엮어냈다는 사실(事實)이”는 “엮어냈다는 대목이”나 “엮어냈기에”로 손질합니다. ‘서평(書評)’은 ‘책 이야기’나 ‘책 소개글’로 고쳐 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