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370) 체념


내가 체념을 하면 아무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9쪽


 내가 체념을 하면

→ 내가 마음을 놓으면

→ 내가 두 손을 들면

→ 내가 힘이 빠지면

→ 내가 풀이 죽으면

 …



  보기글에서는 “내가 희망을 버리면 아무도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쯤으로 고쳐써도 어울립니다. 희망을 버리는 일이란 “손을 놓는” 일, 또는 “마음을 놓는” 일이에요. 어떤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일이며, “두 손을 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힘이 빠지”거나 “풀이 죽”겠지요.


 쌓인 생각 . 맺힌 생각 . 응어리진 생각

 滯念


  한국말사전에는 세 가지 ‘체념’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첫째 ‘滯念’은 얼마나 쓰이는 낱말일까요. 아니, 쓰이기나 할 만한 낱말일는지 궁금합니다.


 깊이 생각함

 體念


  한자로 ‘體念’을 밝혀서 적는다 한들 어느 누가 “깊이 생각함”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가만히 보면, ‘體念’이나 ‘滯念’뿐 아니라 ‘諦念’조차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諦念’이라고 적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놓는다”나 “희망을 버린다”는 뜻을 알아듣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4340.12.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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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손을 들면 아무도 꿈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소원(所願)’은 ‘꿈’으로 손보고, “없다는 것을”은 “없음을”로 손보며, “알게 되었습니다”는 “알았습니다”로 손볼 수 있습니다.



 체념(滯念) : 풀지 못하고 오랫동안 쌓인 생각

 체념(諦念)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 체념 상태 / 체념에 빠지다 / 하나 둘씩 체념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체념(體念) : 깊이 생각함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151) 신기


말 잘 듣는 호박도 신기하고, 호박을 열리게 한 할머니도 참말로 신기해요

《이영득-할머니 집에서》(보림,2006) 42쪽


 말 잘 듣는 호박도 신기하고

→ 말 잘 듣는 호박도 놀랍고

→ 말 잘 듣는 호박도 재미나고

 …



  새롭고 기이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新奇’와 신비롭고 기이하다는 ‘神奇’는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말사전 낱말뜻을 살피면 다른 줄 알겠지만, 두 낱말을 다른 자리에 알맞게 쓰는 분은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신기’라고 쓸 뿐이지 ‘新奇’와 ‘神奇’를 가려내어 쓰지는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 그이 연주는 하늘이 내려준 듯하다

→ 그 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매우 뛰어나다

 …

 

  다른 한자말 ‘신기’도 생각해 봅니다. “몸의 기력”이나 “남자 정력”이나 “임금 자리” 나 “새벽에 일찍 일어남” 같은 ‘신기’는 누가 언제 어느 자리에서 쓸까요. 다른 수많은 ‘신기’는 또 얼마나 쓸모가 있습니까. 정작 쓸 만한 낱말은 싣지 않으면서, 한자 한두 마디로 장난을 치는 낱말만 잔뜩 싣는 우리네 한국말사전은 아닌가요.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두가 새로웠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두가 놀라웠다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놀랍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알 수 없다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대단하다

 …


  말은 삶을 담고, 삶은 말에 담깁니다. 오늘날 우리 삶이 어떠하기에 온갖 ‘신기’가 한국말사전에 실릴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신기’라는 말은 우리 삶에 어떻게 스며들거나 파고들까요. 우리들은 날마다 쓰는 말과 글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거나 살피는지요. 4339.9.27.물/4347.8.1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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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호박도 놀랍고, 호박을 열리게 한 할머니도 참말로 놀라워요


‘정말(正-)로’가 아닌 ‘참말로’를 써 주니 반갑습니다.



 신기(身氣) : 몸의 기력

   - 신기가 좋다

 신기(神技) : 매우 뛰어난 기술이나 재주

   - 신기를 다하다 / 그의 연주는 신기에 가까울 정도이다

 신기(神奇) : 신비롭고 기이하다

   - 신기한 일 / 그 마술은 아무리 보아도 신기하다

 신기(神祇) = 천신지기

 신기(神氣)

  (1)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운기(雲氣)

  (2) 만물을 만들어 내는 원기(元氣)

  (3) 정신과 기운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신기가 풀리다

 신기(神旗) : 무녀가 기도를 하기 위한 단(壇)을 설치할 때 쓰는 기

 신기(神器)

  (1) 신령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그릇. 또는 신령스러운 도구

  (2) 임금의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신기를 노리다

 신기(神機) : 신묘한 계기(契機)나 기략(機略)

 신기(神騎) = 신기군

 신기(訊期)

  (1) 월경을 하는 주기

  (2) 월경을 하는 기간

 신기(晨起) : 새벽에 일찍 일어남

 신기(腎氣)

  (1) 성교할 때의 남자의 정력

  (2) 사람의 활동하는 근원

 신기(愼機) : 기회를 소중히 여김

 신기(新奇) : 새롭고 기이하다

   - 아이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



 알량한 말 바로잡기

 (1560) 제거 


“자, 마무리할까. 이라부는 적당한 길이로 썰고,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이걸 다시 푹 삶으면.”

《우에야마 토치/설은미 옮김-아빠는 요리사 (111)》(학산문화사,2011) 16∼17쪽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 내장과 뼈를 바르고

→ 내장과 뼈를 빼내고

 …



  고기를 잡을 적에는 내장이나 뼈를 ‘바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일본사람은 이를 한자를 빌어 ‘除去’로 적을는지 모르지요. 보기글처럼 한자말을 자꾸 빌어서 나타내려 하면, 먼먼 옛날부터 한겨레가 수수하면서 쉽고 알맞게 쓰던 말이 차츰 잊히거나 사라집니다.


 불순물 제거

→ 찌꺼기 없애기

→ 찌꺼기 털기

→ 찌꺼기 빼기

 장애물이 제거되다

→ 걸림돌이 없어지다

→ 걸림돌을 치우다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제거되고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뽑고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떼내고

 냄새를 제거하는 방향제

→ 냄새를 빼는 방향제

→ 냄새를 없애는 방향제

 장기수를 제거하려는 그의 발상은

→ 장기수를 없애려는 그이 생각은

→ 장기수를 죽이려는 그이 생각은


  한국말사전을 살펴보니 중국 역사에서 쓰던 ‘制擧’와 한국 역사에서 쓰던 ‘提擧’라는 한자말이 나옵니다. 아마 예전에는 이런 한자말을 썼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런 한자말을 쓸 일이 없으며, 한국말사전에는 이런 낱말을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皇居’를 뜻한다는 ‘帝居’는 황제가 사는 곳을 가리킨다고 하는군요. 이런 낱말을 따로 한자로 지어서 써야 할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이런 낱말을 구태여 짓기보다는 “황제네 집”이라고만 쓰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자, 마무리할까. 이라부는 알맞은 길이로 썰고, 내장과 뼈를 바르고, 이런 다음 푹 삶으면.”


“적당(適當)한 길이로 썰고”는 “알맞은 길이로 썰고”나 “알맞게 썰고”나 “먹기 좋게 썰고”나 “먹기 좋을 만큼 썰고”로 다듬고, “이걸 다시 푹 삶으면”은 “이런 다음 푹 삶으면”이나 “이러고 나서 다시 푹 삶으면”으로 다듬어 줍니다.



 제거(制擧) : [역사] 중국 당나라 때에, 황제의 명에 따라 관리를 등용하던 제도

 제거(帝居)

  (1) = 황거(皇居)

  (2) 상제(上帝)가 거처하는 곳

 제거(除去) : 없애 버림

   - 불순물 제거 / 장애물이 제거되다 / 썩어 얼크러진 풀뿌리도 많이 제거되고

     냄새를 제거하는 방향제 / 장기수를 제거하려는 그의 발상은

 제거(提擧) : [역사] 고려 시대에, 보문각·국자감·연경궁 제거사에 둔 벼슬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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