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4년 8월호에 실은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이야기입니다. <전라도닷컴>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도 모두 싱그럽게 빛날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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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우리는 모두 밥 먹는 이웃



  네 살 작은아이가 문득 한 마디 합니다. “아버지, 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요.” “그래, 새소리가 들리는구나. 새소리인 줄 알겠니?” “응.”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은 요즈음 쓸쓸합니다. 새끼 제비 네 마리가 모두 날갯짓을 하느라 새벽같이 둥지를 비운 뒤, 저녁 늦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비는 이렇게 씩씩한 어른 제비로 자라나야 여름이 저무는 팔월 끝자락에 이웃 제비들하고 무리를 지어 태평양 너른 바다를 가로지를 수 있어요.


  우리 집 마당은 멧새 놀이터가 되곤 합니다. 지난겨울에는 빈 제비집에 딱새 두 마리하고 참새 두 마리가 깃들기도 했어요. 처마 밑에 제비집이 셋 있기에, 이 가운데 두 군데를 딱새와 참새가 나누어서 썼습니다. 마당에서 크게 자라는 후박나무에 온갖 새들이 내려앉아서 놀고, 옆에 있는 초피나무에도 갖은 새들이 내려앉아서 놉니다. 새들은 후박알을 따먹고 초피알을 훑습니다. 초피나무에 알을 까는 범나비 애벌레로 잡아서 먹기도 합니다. 마을 이웃 할배와 할매 가운데에는 ‘나비가 있으면 알을 까서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다’며 농약이나 살충제를 휘휘 뿌리는 분도 있지만, 제비와 직박구리와 딱새와 참새와 어치 같은 새들이 쉴새없이 찾아들어 바지런히 애벌레를 잡아서 먹곤 합니다.


  글을 익히는 아이는 책을 스스로 읽고 싶습니다. 글을 익히기 때문에 남이 읽어 줄 때보다 스스로 읽을 때에 한결 재미있습니다. 따사로운 목소리로 읽어 줄 때에도 즐겁지만, 새롭게 맞아들일 이야기를 스스로 알아내면서 더욱 즐겁습니다.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을 씁니다. 어버이한테서 배운 글을 척척 쓰면서 동생을 불러 이 글은 무엇이고 저 글은 무엇이라며 알려줍니다. 큰아이는 작은아이한테 스승이요 동무입니다.


  동생한테 글을 찬찬히 보여주며 물려주는 아이들입니다. 언니 오빠한테서 무엇이든 지켜보면서 물려받는 아이들입니다. 학교에 들어가야 배우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배웁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늘 둘레 모든 것을 지켜보거나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파트와 고속도로와 핵발전소와 군부대를 바라보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툭하면 총을 들고 싸우는 어른들이 둘레에 있으면, 아이들은 툭하면 싸움놀이, 이른바 전쟁놀이를 합니다. 싸움놀이, 그러니까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란 아이들 마음에는 싸움과 전쟁이라는 생각이 크게 자리합니다. 동무를 아끼고 동생을 돌보면서 놀던 아이들 마음에는 따순 손길과 눈길이 넓게 자리하겠지요.


  〈뉴스타파〉라는 매체를 만든 최승호 님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정권이 아닌 약자의 편에 서라》(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을 읽어 봅니다. 신문기자나 방송피디로 일하는 사람은 정치권력이 아닌 ‘여린 이’, 그러니까 ‘수수한 사람들’ 곁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수한 사람들이란 누구일까요. 정치권력이 아닌 여린 이는 누구일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어떤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어야 할까요.


  학교에 집어넣기만 하면 끝나는 가르침(교육)이 아닙니다. 집과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아이들 앞날이 달라집니다. 어버이는 밥을 어떻게 지을까요. 어버이는 밥을 어떻게 마련할까요. 어버이는 자전거를 탈까요, 아니면 자가용을 탈까요, 아니면 두 다리로 걸을까요. 어버이는 텔레비전만 보나요, 책을 가까이하나요, 거친 말을 일삼는가요, 보드라우면서 사랑스러운 말을 나누는가요.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니 방송을 안 봅니다. 이웃에 나들이를 가면 가끔 텔레비전을 구경합니다. 시외버스를 탈 적에도 더러 텔레비전을 구경합니다. 켜진 텔레비전을 문득 들여다보면 온통 사건·사고요, 연예인과 운동경기요, 정치권력하고 가까운 사람들 모습입니다. 굵직굵직하다는 일이라서 방송에 나와야 할는지 모르는데, 저 방송에서 ‘팔월에 뙤약볕 받으면서 풀을 뜯는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잡초가 아닌 풀을 뜯어서 나물로 먹는 이야기’를 다룰 수 있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학교에 붙들려 꼼짝없이 걸상에 앉아서 지내는 아이들이 아닌, 팔월 한여름에 시원한 골짜기로 놀러가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을 한 시간이나 두 시간쯤 그대로’ 보여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씨앗을 심는 어버이 곁에서 씨앗을 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자가용 손잡이를 붙잡는 어버이 곁에서 자동차를 빠르게 익히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손으로 옷가지를 복복 비벼 빨래하는 어버이 곁에서 손빨래 삶을 살피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어버이 곁에서 과자봉지를 아무 데나 버리는 아이들이 자랍니다.


  달포쯤 되었지 싶은데,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면소재지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머스마 넷이 나란히 걷다가 빈 음료수 깡통을 하늘로 높이 던지며 버려요. 이 아이들 뒤에서 자전거를 세운 뒤 “얘들아, 여기는 너희들이 사는 동네이고 너희들 고향이야. 너희가 이곳을 함부로 다루면 어떡하니.” 하고 얘기했습니다. 깡통을 버린 아이는 어기적거리며 주웠지만, 우리가 지나간 뒤 다시 아무 데에나 깡통을 집어던집니다. 읍내에서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곧잘 과자봉지를 길바닥에 휙 던집니다. 이 아이를 붙잡고 주워서 가져가라고 얘기하면 마지못해 줍고는 몸을 돌리고 몇 걸음 가다가 다시 휙 던집니다.


  엊그제부터 상추씨를 얻습니다. 노란 상추꽃이 지면서 작은 씨앗을 맺습니다. 아이들 가슴마다 작은 씨앗이 있을 텐데, 시골 아이들은 어떤 어른들 곁에서 무엇을 보면서 어떤 씨앗을 키울까요. 고등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야 할 시골일까요. 언제나 즐겁게 두레를 하며 지낼 시골일까요. 푸른 바람을 마시고 푸른 노래를 부르며 훨훨 날아오르듯이 뛰노는 맑은 아이들을 그립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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