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 글쓰기



  예전부터 무척 궁금했던 대목이 하나 있다. 대학교를 다닌 사람일수록 한국말을 참 엉터리로 쓴다고 느꼈다. 나라밖으로 배움길을 떠났던 사람이라든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한국말을 여러모로 어설프게 쓴다고 느꼈다. 이와 달리, 학교 문턱을 못 밝거나 학교를 조금만 다닌 사람은 한국말을 무척 재미나거나 맛깔스럽게 쓸 뿐 아니라, 책을 적게 읽거나 못 읽은 사람은 한국말을 남다르면서 살가이 쓰는구나 하고 느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한국말사전 엮는 일을 스무 해 즈음 하면서 시나브로 깨닫는다. 그렇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나오는 책 가운데 슬기롭거나 올바른 틀을 갖추거나 지키면서 나오는 책은 아주 드물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말다운 말하고는 동떨어진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지식은 더 쌓고 정보를 더 늘리기는 하되, 말다운 말하고는 자꾸 멀어진다.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전문 지식은 더 갖출 테지만, 학교에서 쓰는 말은 한국말다운 한국말이 아닌 ‘전문 지식을 더 전문으로 바라보는 말’이다. 그러니,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이나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한국말답지 않은 한국말, 그러니까 무늬는 한글이지만 알맹이는 알쏭달쏭한 말이기 일쑤이다.


  유치원과 텔레비전과 비디오와 그림책과 만화책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이 쓰는 말은 아직 고소하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도 어버이가 오랫동안 길들거나 물든 말이 얄궂기 때문에, 머잖아 이 아이들도 고소하면서 사랑스럽고 살가운 말빛을 잃거나 잊는다.


  요즈음도 아직 ‘구비문학 연구’를 하거나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녹음기에 담는 민속학자가 있으리라 본다. 이들은 어렴풋하게 느끼리라. 학교를 안 다니거나 텔레비전을 안 본 사람들 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더없이 놀랍도록 재미나면서 ‘쓰는 말 가짓수가 아주 많’다. 이와 달리 학교를 오래 다닐수록, 텔레비전과 책을 많이 볼수록, 이런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새롭지 않기 마련이고, ‘쓰는 말 가짓수가 아주 적’다. 그렇다. 그렇다. 그렇다. 4347.8.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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