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나오는 그림책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으며 곧잘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리는 그림책이 우리 아이한테 알맞을는지,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리는 그림책이 우리 한테 알맞을는지 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리는 그림책이라면 아무래도 ‘한겨레 빛’이 더 서린다고 할 만할 테지요.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그리는 그림책이라면 아무래도 ‘다른 나라 빛’이 더 감돈다고 할 만할 테지요.


  그런데, 요즈음 흐름을 보면, 한국 작가가 그린 그림책이라서 ‘한겨레 빛’을 잘 담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도시문명 사회에서는 한국 작가이건 중국 작가이건 러시아 작가이건 체코 작가이건 거의 비슷합니다. 아니, 똑같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외려 미국 작가나 독일 작가나 스웨덴 작가한테서 ‘한겨레 빛’이라고 할 만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한국 작가보다 일본 작가가 ‘한겨레 빛’을 한결 살가이 그린다고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국에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옛날부터 있었고, 한국에서도 그림책이 나온 지 제법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창작 그림책’이 제대로 대접을 받은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히고 싶은 어버이는 아주 많으나, 아이한테 건넬 만한 그림책을 한국사람 스스로 살뜰히 빚은 햇수는 2014년까지도 스무 해가 채 안 된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만 헤아려도 일본 그림책 역사는 백 해 안팎입니다. 아니, 일본은 백 해가 더 넘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을 담은 그림책이 아니라 ‘어린이와 함께 읽으려고 빚은 그림책’을 놓고 하는 말입니다.


  아직 한국 그림책은 그리 훌륭하게 자리잡지 못했다고 느껴요. 한국에서 그림책을 그리려는 ‘어른’은 더 많이 배우고 더 오래 살펴야 한다고 느껴요. 미술대학을 나왔거나 일러스트라든지 디자인을 좀 했으니 ‘그림책도 그릴 만하다’ 하는 생각은 섣불리 안 하기를 바라요. 그림책은 말 그대로 그림책입니다. 붓질이 여러모로 괜찮아서 그림책을 그리려 하지 않기를 바라요. 그림책을 그리려 한다면 ‘내 아이한테 선물로 주어서 내 아이가 날마다 백 번쯤 들여다볼 만하도록’ 그리기를 바라요.


  그림책에는 세 가지가 깃들어야 합니다. 첫째, 노는 삶입니다. 둘째,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셋째, 즐거운 빛입니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그림책이 안 됩니다. 무엇보다 “노는 삶”을 가장 알뜰살뜰 펼쳐 보여야 그림책이요, “노는 삶”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빚어서 들려줄 때에 그림책 이름이 빛나고, “노는 삶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빚어서 들려주는 손길과 눈길은 “즐거운 빛”으로 가다듬어야 그림책 하나가 제대로 피어납니다.


  한국에서 그림책을 그리려는 작가는 누구나 더 몸과 붓질을 낮춰서 아이들하고 ‘노는 길’을 밝힐 수 있기를 빌어요. 그래야 아름다우면서 재미난 그림책이 되겠지요. 먼저 놀아야 합니다. 온몸을 던져 놀아야 합니다. 온몸에 땀이 나도, 옷이 땀으로 옴팡 젖어도, 밥때가 지나도, 아이들은 놀이를 그치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주려는 어른이라면, 아이가 즐겁게 읽을 그림책을 바라는 어른이라면, 아이처럼 놀고 아이와 함께 놀아야 합니다. 이렇게 옷을 땀으로 폭삭 적시고 밥때까지 잊으면서 뛰놀고 나서 붓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려 보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다가 사진 몇 장 찍은 뒤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이들과 뒤섞여 깔깔 하하 호호 히히 웃으면서 ‘나가 떨어질 때까지 놀고 난 뒤’에 붓을 들기를 바라요.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한국 그림책 작가는 ‘그림을 너무 못 그리’거든요. 제대로 놀아 보지 않았으니 그림을 너무 못 그려요. 어릴 적뿐 아니라 어른이 된 뒤에도 제대로 놀지 않으니 그림을 참 못 그립니다.


  그런데, 그림을 너무 못 그릴 뿐 아니라, 상상력도 너무 모자라고 관찰력까지 떨어져요. 한자말 ‘상상력’은 “생각하는 힘”을 가리킵니다. ‘생각힘’입니다. 한자말 ‘관찰력’은 “바라보는 힘”을 가리킵니다. ‘눈힘’입니다.


  그림을 이럭저럭 그린다 싶으면 생각힘과 눈힘이 떨어지기 일쑤이고, 생각힘이 좋다 싶으면 그림 솜씨와 눈힘이 떨어지며, 눈힘이 괜찮으면 생각힘이 없거나 그림을 못 그리고.


  생각힘이란 무엇일까요. 생각하는 힘이란 무엇인가요. 스스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도록 이끄는 힘이 생각힘입니다. 스스로 삶을 새롭게 짓는 힘이 바로 생각힘입니다. 하늘을 날거나 우주를 가로지르는 생각이 ‘생각힘’이 아닙니다. 스물네 시간마다 찾아오는 하루를 언제나 새롭게 맞아들여서 날마다 기쁘게 웃고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지을 수 있는 생각이 바로 ‘생각힘’입니다.


  아직 한국에는 드물거나 없다시피 한데, 다른 나라에서 그림책을 그리는 이들은 어마어마한 생각힘으로 그림책을 빚습니다. 아주 자그맣구나 싶은 이야기 하나를 바탕으로 놀라운 생각힘을 선보입니다. ‘생활 그림책’을 그리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삶을 언제나 새롭게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으면서 꿈으로 가꿀 수 있는 생각힘을 그림책 작가 스스로 기르고 가다듬어서 ‘아이와 함께 지구별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을 때에 그림책이 태어난다는 소리입니다.


  눈힘이란 무엇일까요. 바라보거나 살펴보거나 지켜보거나 들여다보거나 찾아보거나 마주보는 힘이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개미 한 마리를 몇 시간 동안 바라볼 수 있듯이, 그림책 작가도 나팔꽃 한 송이를 열 시간쯤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도랑물 흐르는 빛을 한나절 동안 꼼짝 않고 들여다볼 수 있듯이, 그림책 작가도 개울물이나 못물에서 감도는 빛을 한나절 동안 꼼짝 않고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보아서는 안 됩니다.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속속들이 보아야 합니다. 참답게 보아야 합니다. 슬기롭게 보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아름답게 보는 눈빛과 사랑스레 보는 눈길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할 수 있으면, “노는 삶”과 “생각하는 힘”과 “보는 힘”을 즐겁게 추슬러 사랑스레 누릴 수 있으면, 비로소 붓을 들 때입니다. 세 가지를 즐겁게 어우르는 그림을 그릴 때에 그림책이 태어납니다. 이웃한 일본에서 태어나는 그림책이든, 저 먼 미국에서 태어나는 그림책이든, 한국 그림책 작가들 누구나 더 넓고 깊게 배우면서 아름다운 빛을 받아들여서 우리 나름대로 보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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