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연가 2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5



여기 있고 싶어

― 골목길 연가 2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곁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우는 아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겪은 일이라 하셨는데, 아이가 우는데 그 아이 어머니 되는 사람이 아이를 달래지 못하더랍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그 아이 어머니 되는 사람은 가만히 두기만 했다는데, 보다 못해서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 보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어머니는 ‘아이를 안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지요.


  어쩜 참말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러나, 참말 그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어머니가 틀림없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아버지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나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아버지도 만났고, ‘아이한테 말 한 마디조차 안 건네는’ 아버지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들이 마음씨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더욱이 교육을 못 받거나 생각이 얕은 사람도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교육도 높이 많이 받은 사내인데, 아버지 자리에서는 그야말로 ‘아버지 구실’을 하지 않습니다.



- “여자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쓸데없이 친절한 남자. 딱 질색이야.” (27쪽)

- “흔치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정작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가시로 위협하면서, 혼자 서 보려 아둥바둥.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 페어플레이 하려는 그 모습이 남녀관계와 상관없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내가 함께 서로 의지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39∼40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길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 되기’를 ‘아이한테 곁을 안 줄 뿐 아니라, 아이 돌보기는 오직 어머니한테 맡기면 되는 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되기’란 ‘집 바깥으로 나가 돈만 잘 벌면 되는 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야 아버지가 되는 줄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때 되면 밥을 차려’ 주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밤일을 바라면 몸을 대 주어야 어머니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줄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어머니 자리에 있으려면 집 바깥으로 나다닐 엄두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내가 오늘날에도 제법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서로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가꾸어 아이와 함께 슬기로운 빛으로 거듭나는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사내와 가시내가 무척 많습니다.



- ‘사츠키 씨, 잘 됐다. 만나러 와 줬구나. 아마 저 사람, 그 말을 하러 온 걸 거야. 정말 다행이야. 저 사람, 사츠키 씨를 포기하지 않았어.’ (61쪽)

- “프랑스 같이 가자. 저금 빼 쓰며 생활하는 거면 여기나 몽마르트르나 마찬가지잖아? 불어라면 내가 가르쳐 줄게. 몽마르트르든 교토든 이 골목길이든 다 마찬가지야. 난 ‘여기(네 가슴)’ 있고  싶거든.” (70∼71쪽)




  학교에서 어버이 노릇을 가르치는 일이 없습니다. 학교는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집에서 아버지 구실와 어머니 구실을 가르치는 일이 드뭅니다. 집에서는 학교와 학원을 보내느라 바쁩니다. 마을에서 아버지 몫과 어머니 몫을 보여주는 일이 드뭅니다. 마을은 온통 가게투성이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흐르는 사회 얼거리만 있을 뿐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버이 노릇이나 어머니 구실이나 아버지 몫을 제대로 겪지 못합니다.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사회 얼거리에 길들 뿐입니다. 새로 태어나 자라면서 지구별을 새롭게 가꿀 아이들은 마음속에 사랑과 꿈을 심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소모품처럼 다루어집니다. 이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마땅합니다. 게다가 사회도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문학도, 아이들한테 빛을 보여주지 못하곤 합니다. 입시지옥이 아니면 놀음놀이입니다. 놀음놀이조차 술과 담배와 살곶이뿐입니다. 삶을 밝히는 노래가 없는 사회이고, 삶을 가꾸는 이야기가 없는 교육이며, 삶을 빛내는 꿈이 없는 정치입니다.



- “제자로 받아만 주신다면 가게 따위 내팽개치고 당장 달려갈 거예요. 난 뭐든 닥치는 대로 만드는 소품점 주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고 싶거든요.” (82쪽)

- “그런데 스승님이 별로라는 게 잘 팔리니 희한하죠?” “못 만들었다고는 안 했어. 너무 공을 들여 재미가 없다는 거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거든.” (88∼89쪽)




  아소우 미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골목길 연가》(시리얼,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나오는 사람들이 둘째 권에도 나오는데, 아주 뜻깊은 말 한 마디를 남기고 골목길을 떠나 프랑스로 갑니다. ‘여기 있고 싶다’는 말 한 마디입니다.



-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쓸 수밖에. 이젠 만드는 곳이 거의 없거든. 그 쇠꼭지도, 풀도, 주머니로 쓰는 일본 종이도, 감즙도, 자수 장인이 쓰는 바늘도, 업자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엔 남지 않았어. 유젠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왜냐하면 일본의 문화니까.” (101쪽)

- “고무풀은 제가 직접 만들게요. 그렇게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괜한 걱정이에요. 마음 놓고, 전부 저한테 넘겨주세요.” (103쪽)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늘 바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 눈을 들여다봐요.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 손을 잡아요.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을 살포시 안아요.


  함께 즐겁게 놀아요. 함께 즐겁게 노래해요. 함께 즐겁게 웃어요. 함께 즐겁게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며, 자전거를 달려요. 함께 숲길을 헤치고, 함께 바닷가에 서며,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요. 아이들이 살아야 지구별이 사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서 숨쉴 수 있을 때에 우리 어른들도 제대로 살아서 숨쉴 수 있습니다. 4347.7.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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