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4년 7월호에 싣는 '고흥 사진책도서관 시골일기'입니다. 시골에서 네 식구가 누리는 빛을, 도시에 있는 이웃과 나누려는 뜻으로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 한 자락 엮었습니다.






시골도서관 풀내음

―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저녁에 빨래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빨래기계가 들어온 지 이태째인데, 이불을 빨 적을 빼고는 거의 안 씁니다. 으레 손으로 모든 빨래를 합니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마흔 살인 오늘까지 손빨래로 살아갑니다. 손으로 하지 말고 기계로 하면 품을 아끼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분이 많지만, 손으로 빨래를 하더라도 품과 겨를을 얼마든지 누립니다. 왜냐하면, 빨래는 밥하기와 청소처럼 집살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조물조물 옷가지를 주므르면서 네 식구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봅니다. 쭉쭉 물을 짜면서 네 식구가 새로 맞이할 하루를 그립니다. 물짜기까지 마친 옷가지를 마당에 널면서 내 마음을 얼마나 말끔하게 갈무리했는지 헤아립니다.


  아버지가 날마다 손빨래를 하니, 마을 어귀 샘터에서 옷을 다 벗고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빨래놀이를 합니다. 저희 옷가지를 샘터 옆 빨래터 바닥에 놓고 비비기도 하고, 물이 흐르는 곳에 담가서 헹구는 시늉을 합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세 살 적부터 설거지를 흉내내고 싶어 애쓴 끝에 곧잘 설거지를 도와줍니다. 이 아이는 갓난쟁이일 적에 단추 꿰기를 스스로 하고 싶다면서 날마다 단추에 매달리더니 돌이 될 무렵 혼자서 단추를 꿰거나 풀 수 있었어요.


  아이 곁에서 어버이가 호미질을 한다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호미를 장난감으로 삼아서 땅을 쪼면서 놉니다. 아이 곁에서 어버이가 베틀을 밟거나 물레를 자으면, 아이들도 베틀과 물레를 놀잇감으로 여기면서 실짜기와 천짜기를 퍽 일찍부터 익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적잖은 어버이는 아이들이 서너 살밖에 안 되었어도 골프를 시키거나 영어를 가르치거나 테니스를 물려주거나 바이올린을 켜도록 이끌어요. 그렇지요. 어릴 적부터 익숙하면 나중에 한결 잘 할 테니까요.





  누구나 쉬 알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부터 손전화를 갖고 노는 아이는 손전화를 일찍부터 빈틈없이 다룹니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으레 타고 다니던 아이는 누구보다 자동차를 일찍 살피고 헤아리면서 몰 수 있어요. 예전에도 그랬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운기를 늘 바라보던 아이들은 열 살 언저리에도 경운기를 씩씩하게 몰 수 있습니다. 더 먼 옛날에 시골에서 나고 자라던 아이들은 열 살 언저리에도 혼자 멧골로 들어가서 나무를 하고는 지게로 장작을 날랐지요.


  유월 한복판이 되니 온 나라에서 세계축구대회 이야기로 들썩입니다. 시골에서 축구 이야기를 하는 이웃은 없지만, 셈틀을 켜면 인터넷에는 온통 축구 이야기입니다. 밀양에서 송전탑 때문에 시름시름 앓거나 고단한 사람들 이야기는 찾아보기 몹시 어렵고, 바닷물에 잠긴 가녀린 아이들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뚝 끊어집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축구를 좋아한다면 세계축구대회를 얼마든지 즐길 만하지만,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무엇을 보고 누리며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브라질에서는 세계축구대회를 열려고 ‘경기장 지을 터’를 둘러싼 마을에서 살던 사람을 20만이나 쫓아냈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토막소식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철거민 20만을 억누르려고 경찰과 군인을 20만이나 들인다고도 해요. 오늘날 브라질을 떠나, 우리 한국을 되새겨 봅니다. 한국에서 1988년에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빼앗겼던가요. 올림픽에 앞서 전국체전을 벌일 적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터를 잃어야 했던가요. 댐을 짓는다거나 고속도로를 놓는다거나 발전소나 공장을 들인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가요.


  전북 진안에서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리던 김지연 님이 엮은 《용담 위로 나는 새》(아카이브북스,2010)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진안 조림초등학교 교장이던 전형무 님이 용담댐 때문에 사라지는 마을을 샅샅이 돌면서 찍은 사진과 남긴 글을 바탕으로 새로 엮었습니다. 그런데, 아파야 하거나 떠나야 하던 사람들 이야기를 담거나 들려주는 책이 참 없어요. 이러한 책이 나와도 찬찬히 살피거나 즐겁게 읽는 이웃이 몹시 드물어요. 지구별에서 까마득히 먼 데에서 터지는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곁에서 생기는 슬픈 이야기를 담아 《밀양을 살다》(오월의봄,2014) 같은 책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러한 책을 우리들은 얼마나 읽고 얼마나 새기면서 스스로 삶을 고칠는지 궁금해요.


  오월에 들딸기를 훑으면서 생각합니다. 유월 어귀에 감꽃을 주으면서, 또 유월에 오디를 따면서 생각합니다. 들딸기는 오뉴월에 실컷 즐기는 선물과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 식구가 아이들 이를 고치려고 큰도시에 있는 치과를 다녀오느라 며칠 도서관을 비운 사이, 누군가 우리 도서관 들딸기를 모조리 훑었습니다. 참 얄궂은 이웃입니다. 예전에는 한가위에 여러 날 시골집을 비우고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뵈러 다녀온 사이에 우리 집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베어 죽인 이웃이 있었어요. 이와 같은 이웃은 참 어떤 넋일까 아리송해요. 왜 이웃나무를 죽일까요.


  풀을 뜯습니다. 우리 집 마당과 옆밭과 뒤꼍에서 풀을 뜯고, 도서관 둘레에서 풀을 뜯습니다. 그동안 그러려니 여기던 풀 가운데 멸나물(어성초)이 있는 줄 올해에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몇 해 동안 쳐다보고 뜯기만 하다가 올해 처음 사진으로 찍어 둘레에 여쭈어 이름을 알았습니다. 우리 식구는 돌미나리도 뜯고, 젓가락나물과 갯기름나물도 뜯습니다. 방가지똥과 고들빼기도 뜯으며, 이름을 아직 모르는 여러 가지 풀도 뜯습니다. 아이들은 내 곁에 달라붙어 “어떤 풀 뜯어?” 하고 묻다가 저희도 풀을 같이 뜯고, 내가 풀잎을 입에 넣으면 “나도 줘.” 하면서 손을 내밉니다. 함께 풀을 먹고, 함께 바람을 마십니다. 함께 햇볕을 쬐고,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서로 가슴을 토닥이다가 밤에 잠들고, 서로 이불깃 여미면서 밤마다 개구리 노래잔치를 누리면서 꿈나라로 갑니다. 하루는 언제나 새롭게 즐겁습니다. 4347.6.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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