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 푸르게 물드는 마음



  사진을 찍는 까닭은 ‘멋진 모습’을 찍고 싶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누군가는 멋진 모습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적에도 멋진 글이나 멋진 그림을 얻으려는 마음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멋진 글을 쓰고 싶다고 바랄 수 있고, 멋진 그림을 뽐내고 싶다고 바랄 수 있어요. 노래나 춤은 어떨까요. 멋진 노래를 불러야 하거나 멋진 춤을 추어야 할까요?


  스스로 즐겁게 부르는 노래가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추는 춤이 사랑스럽습니다. 노래는 남이 듣기도 하지만, 남이 듣기 앞서 내가 듣습니다. 춤은 남이 보기도 하지만, 남이 보기 앞서 내가 봅니다. 사진도 ‘남이 내 사진을 보기’ 앞서 ‘내가 내 사진을 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삶을 즐기려고 찍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한 타래 지어서 누리고 싶기에 찍는 사진입니다.


  나와 가까운 살붙이나 동무를 사진으로 담을 적에 ‘빙그레 웃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아무 낯빛이 안 보이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자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눈물짓는 모습을 찍어도 좋고,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는 모습을 찍어도 좋습니다. 어떤 모습을 찍든 나 스스로 사진 한 장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으면 됩니다. 어떤 사진을 얻든 사진 한 장을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애틋한 웃음과 눈물이 섞인 이야기를 누릴 수 있으면 됩니다.


  앞모습이 더 낫지 않습니다. 뒷모습이 더 좋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는 앞모습이 싱그럽고, 어느 때에는 뒷모습이 맑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찍히는 사람’ 모습뿐 아니라 ‘찍는 사람’ 마음을 담기 때문입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어 바라보는 사람이 마음 가득 푸르게 물드는 빛이라면, 어떻게 찍는 사진이든 푸른 숨결이 서립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은 어디에 써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마셔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아, 삶이 즐겁구나’ 하는 느낌이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 오늘 이 삶이 아주 즐거운걸’ 하는 느낌이 들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노래가 흐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야, 오늘 하루는 더없이 즐겁네’ 하는 느낌이 들 때에 사진기를 손에 쥐어야 이야기가 빛물결처럼 출렁이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4347.6.1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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