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914) 공전의 1 : 공전의 대성공
새 오페라 〈후궁 탈출〉은 1782년 7월 16일의 개막 공연에서 공전의 대성공을 기록했다
《제러미 시프먼/임선근 옮김-모차르트, 그 삶과 음악》(포토넷,2010) 153쪽
공전의 대성공을 기록했다
→ 어마어마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 눈부시게 성공을 거두었다
→ 엄청나게 성공을 했다
→ 크게 사랑을 받았다
→ 대단히 사랑받았다
…
어린 날부터 “공전의 히트” 같은 말마디를 익히 들었습니다. 어린 날에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즐겨 보고 들었는데, 그무렵 음반이나 책이 잘 팔리면 으레 “공전의 히트”라고들 일컬었습니다.
어린 날 “공전의 히트”라는 말마디를 들을 때에 이 말마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습니다. 말뜻을 알려주며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분들 가운데 어린 우리들한테 말뜻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분이란 없었으며, 저나 동무들이나 이 말마디가 무얼 뜻하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맣이 팔리니’까, ‘잘나가니’까 이렇게 말하는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이 ‘구루마’라고 하면 우리들은 똑같이 ‘구루마’라 듣고 말하고 머리에 새기며 살았지 ‘구루마’가 왜 ‘구루마’인지를 살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구루마’는 ‘구루마’이지 ‘손수레’하고 다르다고까지 말하는 동무가 있습니다. ‘바께쓰’는 ‘바께쓰’이지, 왜 ‘바께쓰’를 놓고 ‘양동이’라 하느냐고, 말을 왜 어렵게 하느냐고 따지는 동무마저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고참이나 새내기나 “일본말을 안 쓰면 깔본다”고 해서 어처구니없는 일본말을 버젓이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군대에서 벗어나 책마을 일꾼으로 일할 때에도 ‘생각있다’는 사람들이 ‘생각있다’는 책을 만들면서 ‘도비라’니 ‘피’이니 ‘하시라’니 하면서 일본말을 주워섬겼습니다. 참으로 웃긴 모습이라 할 텐데, 어린이 한국말사전을 엮는 편집자조차 일본강점기에 스며든 찌꺼기말을 아무렇지 않게 뇌까리며 일해요. 이런 모양새는 2010년대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첫 공연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을 받았다
첫 공연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을 받았다
첫 공연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
첫 공연에서 눈부시게 빛나며 사랑을 받았다
…
한국말사전에서 ‘공전’을 찾아봅니다. 한자로 ‘空前’으로 적는다는 낱말입니다. 말뜻은 “(주로 ‘공전의’ 꼴로 쓰여)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에는 없음”이라 나오고, 보기글로 “공전의 대성공”과 “공전의 히트”와 “공전의 대성황이었던 것이다”를 싣습니다.
문득 벙 하고 뜹니다. 뭐 이런 쉬운 한자로 적은 말이었느냐 싶으면서, ‘없다/비다(空) + 예전(前)’이라는 짜임새를 들여다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예전에 없다”를 뜻하는 한자말 ‘空前’입니다. 다른 뜻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예 “예전에 없다”요 “지난날에 없다”요 “이제껏 없다”요 “여태까지 없다”입니다.
누구한테나 손쉽고 살가우면서 알맞게 주고받을 우리 말마디를 내버리고, 고작 이런 하찮은 한자말을 너무 얄딱구리하게 쓰는구나 하고 느끼니 기운이 쪽 빠집니다. 우리는 삶을 슬기와 깜냥으로 아름다이 빛내도록 말 한 마디를 북돋우는 데에는 영 젬병인 겨레인가요. 우리는 그야말로 넋과 얼을 착한 힘과 참된 땀으로 살뜰히 어루만지는 글 한 줄을 일구는 데에는 사뭇 머저리인 사람들인가요.
한국말사전을 덮고 히유 한숨 한 번 내쉽니다. 아무래도 여느 사람들은 ‘공전’ 같은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뒤적일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어린이일 때부터 할매 할배가 되도록 이러한 낱말 하나 찾아보며 뜻을 옳게 아로새길 줄 모르리라 느낍니다. 어쩌다가 한국말사전을 뒤적인다 하더라도 말뜻과 말느낌과 말짜임을 제대로 살필 줄 모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사랑스러운 말을 찾을 만한 눈썰미가 없습니다. 믿음직한 말을 붙잡을 만한 눈길이 없습니다. 따스한 말을 아낄 만한 눈높이가 없습니다. 넉넉한 말을 깨달을 만한 눈매가 없습니다.
공전의 대성공
→ 놀랍고 큰 성공
→ 대단히 큰 성공
→ 예전에 없던 큰 성공
공전의 히트
→ 엄청난 인기
→ 대단한 사랑
→ 이제껏 없던 인기
공전의 대성황이었던 것이다
→ 무척 많은 사람한테서 사랑을 받았다
→ 예전에 없이 널리 사랑을 받았다
…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직 옳고 바르게 엮은 한국말사전 하나 없는 이 나라입니다. 말풀이와 보기글을 알맞고 알차게 담은 한국말사전 하나 아직 없는 우리 겨레입니다. 해마다 한글날을 앞뒤로 한글이 온누리에 으뜸간다고 내세우거나 떠벌이기만 할 뿐입니다. 옳고 바르며 알맞고 알찬 한국말사전을 엮는 데에는 옳고 바르며 알맞고 알차게 나라돈을 쓰지 못할 뿐 아니라, 슬기와 넋과 힘과 땀을 바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한국말사전에 앞서 여느 우리 삶자리에서 옹글거나 사랑스레 말할 줄 모르는 겨레입니다. 식구나 동무나 이웃하고 살갑거나 따스히 이야기를 나눌 줄 모르는 겨레입니다. 옷치레 돈치레 집치레에, 자가용치레 학벌치레 계급치레에, 말치레 글치레 이름치레인 겨레입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도 가난한 사람은 똑같이 있으며, 지식이 높아지고 대학생 숫자가 치솟아도 엉터리 말과 글이 똑같이 있는 나라입니다. 4343.3.22.달/4347.5.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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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오페라 〈후궁 탈출〉은 1782년 7월 16일 첫 공연에서 엄청나게 사랑을 받았다
“7월 16일의 개막(開幕) 공연에서”는 “7월 16일 개막 공연에서”나 “7뤟 26일 첫 공연”이나 “7월 16일에 한 첫 공연에서”로 다듬습니다. “대성공(大成功)을 기록(記錄)했다”는 “크게 성공했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나 “크게 사랑받았다”로 손질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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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38) 공전의 2 : 공전에 히트
민주노동당 분당파들이 나가면서 당권파들을 종북이라고 비판했던 것을 가져다 쓰면서 공전에 히트를 시킨 건데요
《손석춘·지승호-이대로 가면 또 진다》(철수와영희,2014) 74쪽
공전에 히트를 시킨 건데요
→ 널리 알린 셈인데요
→ 크게 터뜨린 셈인데요
→ 크게 알려졌는데요
→ 엄청나게 퍼졌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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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글에 나오듯 “공전에 히트”로 적으면 알맞지 않습니다. 토씨 ‘-의’를 붙이는 말씨도 올바르지 않으나, 아무튼 맞춤법으로 보자면 “공전의 히트”로 적어야 합니다. 이렇게 적고 나서 ‘공전의’를 손질합니다.
말뜻을 헤아리면, “예전에 없이 인기를 얻은 건데요”입니다. 어느 낱말 하나를 예전에 없이 인기를 얻도록 했다고 한다면, “널리 알렸다”거나 “널리 퍼뜨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널리 알맀는데요”나 “엄청나게 퍼뜨렸는데요”나 “널리 알려졌는데요”나 “엄청나게 퍼졌는데요”로 손보면 됩니다. 4347.5.1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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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분당파들이 나가면서 당권파들을 종북이라고 꾸짖은 말을 가져다 쓰면서 엄청나게 퍼졌는데요
‘종북(從北)’ 같은 낱말을 굳이 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시사용어라면 시사용어일 텐데, ‘북한바라기’처럼 풀어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판(批判)했던 것을”은 “비판했던 말을”이나 “꾸짖은 말을”로 다듬습니다. ‘히트(hit)’는 ‘인기’나 ‘안타’를 뜻하는 영어입니다. “히트를 시킨”은 “인기를 얻은”이나 “사랑을 받은”으로 다듬으면 되는데, 이 자리에서는 “크게 퍼진”이나 “널리 알린”으로 다듬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