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소리 듣는 책읽기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이틀에 걸쳐 두 차례 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인터넷으로 살펴보니 ‘씨네21’이라는 잡지에 어떤 전문비평가가 매긴 평점이 나온다. 10점 만점에 5점이란다. 독자평점은 10점 만점에서 9점이라고 나온다. 그나마, 이 영화를 놓고 기자나 전문비평가나 영화평론가가 매긴 점수는 ‘씨네21’이 하나 있고, 거의 없지 싶다.


  그러면 나는 영화 〈어거스트 러쉬〉에 점수를 얼마쯤 주는가? 글쎄, 나는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즐겁게 본 영화에 왜 점수를 줄까? 그저 ‘즐거운 웃음’과 ‘즐거운 눈물’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일곱 살 큰아이와 함께 두 차례 볼 수 있던 만큼, 10점 만점에서 9.5점을 주고 싶다. 0.5점은 영화 끝자락에서 조금 더 마음을 쓰지 못한 아쉬움 때문에 깎는다.


  어쨌든,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주인공인 열두 살 어린이가 ‘소리를 듣’고 ‘소리에 웃’으며 ‘소리를 노래하’는 이야기가 흐른다. 아이는 소리를 사랑한다. 아이는 소리에서 빛을 찾는다. 아이한테 찾아드는 소리는 아이 어버이가 들려주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아이 마음속에서 퍼져나오는 소리요, 온 우주에서 흐르는 소리이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 빗소리를 듣는다. 빗물이 우리 집 처마를 따라 흐르다가 줄줄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비가 오니 온 들과 논과 숲에서 개구리가 깨어나 왁왁 노래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 빗줄기 사이로 먼 멧자락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까지 듣는다.


  아아,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 나는 이 밤에 개구리 노래와 소쩍새 노래와 사월비 노래를 들으면서 도무지 잠들지 못한다. 이 아름다운 소리가 가슴을 적시고 후벼파며 어루만지기에 즐겁게 웃고 운다. 그러나, 두 아이가 나를 기다린다. 두 아이를 먼저 재우는데,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아버지 언제 와요? 곧 와요? 얼른 와요. 같이 자요.” 하고 부른다. 나는 아이들 사이로 파고들어 자야 한다. 나는 아이들 사이에서 달게 꿈나라로 접어들어 아이들과 웃고 노래하련다. 비가 흐르고, 노래가 흐르며, 사랑이 흐른다. 작은 초피꽃에 떨어진 빗방울을 바라보며 가슴이 찡한 하루였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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