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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ㅣ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평점 :
권정생 님 문학을
아이도 어른도
즐겁고 아름답게 읽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밑힘으로
삼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
어린이책 읽는 삶 51
“나 대신 아파 달라.”
― 몽실 언니
권정생 글
이철수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4.4.25.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입니다. 비는 사월에도 오월에도 내립니다. 유월에도 칠월에도 내리겠지요. 지난해를 돌이키면, 지난해 여름에 고흥에는 비가 거의 안 내렸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줄기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고흥은 예부터 물이 모자란 곳이었기에 그동안 둠벙이나 못을 무척 많이 팠어요.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지난여름에 물이 모자란 곳은 드물었습니다. 다만, 못이나 둠벙을 파지 않고 새로 일구는 비탈논이나 비탈밭이었으면 모두 메말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여름에 비가 달포 남짓 한 방울조차 안 내리니, 마을마다 큰일이 납니다. 그동안 이 나라 시골은 관행논으로 바뀌어 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사짓기를 합니다.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논도랑도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이제 시골 논자락에서 미꾸라지를 잡지 못하고, 시골에서 반딧불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반딧불이가 있자면 다슬기가 살아야 하는데, 다슬기가 살 수 없도록 시멘트도랑으로 바꾸었어요. 게다가 시멘트도랑은 깊어 개구리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에 잠겨 죽습니다. 때 없이 농약을 치니 논에 논거미가 없어요. 논거미가 없을 뿐 아니라, 밭자락에 벌이나 나비가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비닐집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시켜요. 벌이나 나비를 부르지 않고, 개미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벌이나 나비가 없고 풀벌레도 자취를 감춥니다.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모든 벌레가 살 수 없는 터전으로 만들었거든요. 이리하여 새들은 애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애벌레를 잡아먹으며 생태계 균형을 맞추던 새이지만, 이제는 곡식을 쪼아먹고, 밭에 심은 씨앗을 캐먹습니다.
.. 만주나 일본 같은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줄지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조국의 품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쌀쌀했다. 그래서 말만으로 해방된 조국에 빈몸으로 찾아온 그들은 살아갈 길이 없었다 … 밀양댁의 울음소리는 골짜기에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개 위에서 몽실은 밀양댁의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눈자위가 씀벅거려지고 코가 찡하게 더워져 왔다. 몽실은 입슬을 꼭 깨물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 잘못이 아니야…….” … 가물가물한 남폿불을 걸어 놓고 모두가 열심이었다.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이 자라게 한다 .. (7, 44, 68쪽)
지난날에는 시골이든 도시이든 제비집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에다가 둥지를 틉니다. 처마 밑을 좋아해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요. 그러면, 둥지를 드나들며 똥을 누지요. 새끼 제비가 똥을 누도록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도록 해서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 똥구멍을 살몃살몃 쫍니다. 그러면 새끼 제비는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면서 똥을 영차 하고 누고,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똥구멍으로 내보낸 똥을 부리로 잡아채서 바닥으로 떨구어요.
다른 새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새도 이처럼 어미 새가 새끼 새 꽁지를 살몃살몃 쪼아 똥이 나오도록 하지 싶어요. 고양이도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똥구멍을 핥으면서 똥이 나오도록 해 줍니다.
그러니까, 처마 밑 제비집은 날마다 똥벼락입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장대로 제비집을 허뭅니다. 이때에 암제비가 알을 품었다면 그만 알이 다 깨져요. 어린 제비가 아직 자랄 때라면, 어린 제비는 아직 날갯짓을 못하는 채 떨어져 죽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인천에서도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은 으레 학교 건물 처마 밑 제비집을 찾아다니며 떨구었어요. 긴 장대를 마련해서 제비집이란 제비집은 모두 치웠습니다.
둥지와 새끼를 잃은 제비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씩씩하게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새 둥지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 둥지를 지어서 다시 알을 까면 어른들은 또 제비집을 헐어요. 몇 차례 되풀이합니다. 이리하여, 중국 강남에서 한국으로 찾아오던 제비들은 그만 새끼를 못 낳은 채 슬픈 날갯짓으로 태평양 건너 중국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 이 산골 마을 이름은 댓골이라 했다. 뒷산 골짜기로 보리둑나무가 무성하여 달밤엔 은빛 잎사귀가 아름다왔다 … 아버지 정씨는 주인집에서 세 끼 밥을 먹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몽실이 혼자 밥을 지어 먹었다. 산나물을 뜯어다가 죽도 끓였다. 누더기 같은 아버지의 옷을 깨끗이 빨고 집안 청소도 했다 … 북촌댁은 다소곳이 말이 없는 여자였다. 몸이 약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따금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나타나곤 했다. 가난하고 적막한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매만졌다. 몽실의 해진 저고리를 예쁘게 기워 주고 아버지의 고무신도 자주 깨끗이 씻어 주었다 .. (9, 18∼19, 52, 55쪽)
비가 오는 아침에 두 아이를 씻깁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나는 빨래기계를 안 쓰고 내 두 손을 씁니다. 빨래기계 없이 스무 해 넘게 빨래를 하며 살기도 했지만, 두 손으로 아이들 옷가지를 복복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 몸과 넋을 헤아립니다. 이 작은 옷을 입는단 말이지? 이 작은 옷이 이렇게 흙투성이 되도록 뛰놀았단 말이지?
작은 옷을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아끼고 살림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잘거리고 놉니다. 어느새 네 살이 된 작은아이는 일곱 살 누나가 읊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 저도 부르겠다면서 똑같이 따라합니다.
두 아이가 노는 소리를 한귀로 들으며 빨래를 하다가, 우리 집 씻는방 바깥문 모기그물을 문득 봅니다. 지푸라기 같아 보이는 무언가 모기그물에 있기에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 지푸라기가 아닙니다. 사마귀입니다. 아직 사월인데 무슨 사마귀인가 하고 입김을 호 붑니다. 저런. 지난가을께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죽은 사마귀인 듯합니다. 넌 어쩌다가 이 모기그물 한쪽에 갇혀서 그만 목숨을 잃었니. 이 모기그물 언저리에 모기가 많이 앉으니 모기를 잡으려다가 그만 발이 끼어서 빠져나가지 못했니.
시골집을 여러 날 비우고 돌아오면,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굶거나 말라서 죽은 벌레를 곧잘 봅니다. 용케 어느 빈틈으로 들어온 듯한데 나갈 구멍을 못 찾은 셈입니다. 작은 새는 빈집이나 빈 건물에 살그마니 들어가서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잘못 들어갔다가 나올 구멍을 못 찾아서 그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갇혀서 죽는 새도 있습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잡아먹고는 배앓이를 하고 죽는 들고양이가 있습니다.
시골이라는 데는 사람을 살리는 모든 먹을거리를 일구어 거두는 곳이지만, 농약바람이 분 뒤 시골은 삶터이기보다는 죽음터로 흐르기 일쑤입니다. 지난여름에 달포 남짓 비가 안 오면서 논마다 멸구가 많이 생기니 마을마다 농약을 날마다 엄청나게 뿌렸는데, 이때에 온 마을 제비와 참새와 딱새가 참 많이 죽었습니다. 새들은 농약을 맞아서도 죽고, 농약 묻은 곡식을 쪼아먹다가 죽으며, 농약 맞아 해롱거리는 애벌레나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먹다가 죽습니다.
.. 자주 어머니와 싸우긴 했지만, 역시 몽실의 진짜 아버지는 한없이 가난한 그 아버지뿐이다 … 할머니는 몽실에게 수다스러울이만큼 심부름을 시켰다. “몽실아, 애기 기저귀 빨아 오너라.” 몽실이는 기저귀를 빨았다. “설거지 해라.” “마루를 훔쳐라.” “방을 쓸어라.” 이제 여덟 살인 몽실은 시키는 것을 싫다고도 할 수 없었다 … 맑은 개울물에 기저귀랑 저고리랑 담그어 놓고 방망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빤다. 몽실이와 순덕은 딴 아이들보다 빨래도 잘한다 … 집에 와서 몽실은 가지고 온 쑥떡을 북촌댁 앞에 내밀었다. “이건 떡 아니니? 어디서 난 거야?” “남주네 거여요.” “너 먹잖고 왜 갖고 오니?” “난 먹었어요. 그러니 어머니 잡수셔요.” … 어쩐지 몽실은 밀양댁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기를 가졌어도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북촌댁은 왜 굳이 이런 곳에 시집을 왔을까? 그러고는 그 가난을 이렇게 견디고 있을까? .. (12, 21, 33, 78, 79쪽)
지난 2007년 봄에 권정생 님이 죽었습니다. 아프디아픈 몸으로 살다가 그예 죽었습니다. 권정생 님은 안동 조탑마을 조그마한 흙집에서 지낼 적에 이녁을 찾아온 손님이나 이웃한테 늘 “나보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기예요. 나 대신 아파 주면 좋겠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권정생 님더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하고 안부를 여쭈던 이들은 머쓱해 합니다. 뒷통수를 긁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느껴요. 권정생 님은 아파서 죽지 못하던 몸이었고, 권정생 님을 찾아온 이들은 안 아프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없는 몸이니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이나 몸을 얼마나 알까요.
권정생 님은 허리에 구멍을 뚫어 노란 호스를 끼운 채 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산다.”면서 “이렇게 아픈데 참 죽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프다거나 죽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손님들이 아뭇소리를 못 합니다. 바람이 싸합니다. 그러면 권정생 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돌립니다. “저거 저 풀 아나? 한 번 뜯어 봐.” 하고 묻습니다. 사람들은 권정생 님이 가리키는 풀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뭐라더라, 요즘에는 허브라고 하던가? 다들 그런 풀을 꽃집에서 사다가 화분에 두는가 보더만, 우리 나라에도 옛날부터 향긋한 풀이 있었어. 박하라고. 얘가 박하풀이야.” 하면서 손수 박하풀을 뜯어서 코에 대 보라고 건넵니다. 박하풀 한 줌을 건네받아 코에 대다가 입에 넣어 살짝 씹습니다. 냄새로도 맛으로도 참말 박하풀 냄새가 그윽하며 좋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어지르고 사느냐고 하지만, 아픈데 어떻게 치우겠어요. 누가 와서 집을 치워 준다면 하지 말라고 말려. 다 어지르고 사는 듯이 보이지만, 아파서 드러누울 적에 손에 닿는 자리에다가 물건을 놓았으니 하나도 건드리면 안 돼. 다 그 자리에 있어야 찾아서 쓸 수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무엇이고 저것은 어느 때에 쓰는 무엇이라고 알려줍니다. 한번은 빨랫줄을 가리키면서 “저기 봐요. 저것은 전기 공사 하는 이들이 버리고 간 건데, 굵은 전깃줄이 하도 아깝다 싶어서 살짝 휘어 놓으니까 빨래집게가 돼.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래집게는 비 오고 해 나면 삭는데, 굵은 전깃줄 조각은 비가 오든 해가 나든 그대로 두면 돼. 평생 쓸 수 있는 빨래집게야. 내 발명품이야.” 하고 이야기합니다.
.. “누가 그걸 곧이듣니? 할아버지가 잘못한 거지. 아무리 자식이지만 빨갱이한테 떡을 해 주고 닭을 잡아 주다니, 그건 백 번 천 번 잘못한 거야.” “아버지!” 몽실이 정씨 얼굴을 쳐다봤다. 어두운 움막 속에서도 그걸 알 수 있었다. “…… 그렇지 않아요. 빨갱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가 될 수 없어요. 나도 우리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갔다면 역시 떡 해 드리고 닭 잡아 드릴 거여요.” “…….” 정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말이 맞죠?” 정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날 이후 몽실은 딴사람처럼 되었다.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61, 84쪽)
2004년과 2005년에 한두 차례씩 조탑마을에 찾아간 적 있습니다. 나는 조탑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으나, 조탑마을에 찾아가는 분이 함께 찾아뵙자고 해서 여러 차례 인사를 여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는 권정생 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이 둘레를 오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러면서 권정생 님이 다른 분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가만히 담았습니다.
어느 날에는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다고 보면 안 돼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여러 차례 들려주었습니다. 권정생 님이 쓴 동화 가운데 여러 권이 널리 사랑받아 꽤 많이 팔린다고 하지요. 그러나 권정생 님은 제발 그런 이름을 내려놓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온누리에 대단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스스로 작게 살고 작은 이웃을 언제나 어깨동무하면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상을 몇 가지 받는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국회의원으로 몇 번 뽑힌다거나 대통령이 되었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시장이나 군수가 되면 대단할까요? 내가 쓴 책이 백만 권이나 천만 권이 팔리면 대단할까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굶겠지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하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재채기를 해요. 숲이 우거져서 바람이 싱그럽고 맑으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즐거워서 활짝 웃어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해가 나지 않으면 추워요. 해가 나서 햇볕이 골고루 비출 적에 비로소 지구별이 따스해요. 바람이 숲을 따라 불면서 도시와 시골을 살살 어루만져야 모든 숨결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어쩌면, 권정생 님은 너무 아픈 몸이었기에 여러 가지를 남보다 일찍 깨달았는지 몰라요.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아프지 않고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 예쁜 각시를 만나서 오붓하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시는 마음을 알겠어요. 어느 날에는 “나더러 글이 좋다고 써 달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앞에서 말한다고 해서 내 몸이 좋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손님을 만나 30분 말하면, 손님이 가고 난 다음 한나절 드러누워서 앓아야 해. 그렇게 앓아누워 끙끙거리다가 원고지에 한 줄 쓰고, 또 앓으며 끙끙거리다가 한 줄 쓰고,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쓰기가 힘들어.” 하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좀 안 아프다 싶어서 원고지 몇 장을 썼더니, 바로 이튿날에 꼼짝도 못하고 하루 종일 드러눕기만 했어.” 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우리는 동화책 《몽실 언니》를 하루, 아니 몇 시간, 아니 한 시간만에라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몽실 언니》라는 책 하나만큼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앓아눕고 얼마나 끙끙거렸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요.
.. 몽실은 벌떡 일어나 앉아 인민군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인민군 여자는 몹시 슬픈 표정이었다. “왜 그러니?”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그리고 누가 더 착한 거여요?” “…….”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여요?” 인민군 여자가 누운 채 말했다.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다.” … “몽실아.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 의용군 아이가 어깨에 멘 총을 벗겼다. 그리곤 돌아서서 총구멍을 겨누었다. “왜? 넌 나 같은 아이도 죽일 줄 아니?” “그래, 죽일 줄 안다.” 몽실의 눈에 파아랗게 불길이 올랐다. “죽여 봐! 어서 죽여 봐!” “…….” 의용군 아이와 몽실의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둘은 그렇게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용군 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이…….” .. (114, 122∼123쪽)
동화책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 펴냄)는 1984년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나는 이 동화책을 1984년에 읽지 못했습니다. 1984년은 나로서는 국민학교 3학년입니다.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였으니 아버지가 이 동화책을 알아보고 사 주실 만했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를 마치기까지 동화책을 사 준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학급문고로 동화책을 사서 갖추셨을까요?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어버이가 교사로 일한다 하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책을 읽히지는 않겠지요. 책을 읽히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아름다운 책을 추리거나 가리거나 골라서 읽히지는 않겠지요.
나는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1994년 겨울에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에서 ‘1984년 첫판’으로 찍힌 낡은 동화책을 보았습니다. 낡은 판으로 만난 책이기에 절판이 된 책인지 꾸준히 사랑받는 책인지 몰랐습니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나온 동화책이네’ 하고 생각하며 사 둔 뒤, 군대에서 스물여섯 살을 살아내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이 책을 읽었습니다.
..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 몽실은 영원히 이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겨울바람이 추웠지만 최씨집은 매우 따뜻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 몽실의 눈에 물기가 젖고 있었다. 난남이도 그랬었다는 걸 알았다. 최씨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무리 알뜰하게 보살펴 줘도 난남이는 어딘가 사랑에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럼, 엄마는 어쨌어?” “엄마는 그냥 많이 아파서 돌아가셨단다.” “우리 엄마가 죽었어?” 난남이는 몽실이 잡고 있는 손을 그만 놓아 버리고 뒤로 돌아앉았다. 커다란 눈으로 바람벽을 줄곧 바라보는 사이에 눈물이 괴어 올랐다 굵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 (116, 175, 182, 192쪽)
어릴 적에 《몽실 언니》를 읽었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와 이웃과 시골과 마을과 정치와 교육과 문화를 더 슬기롭게 들여다보는 눈길을 틔울 수 있었을까요. 《몽실 언니》를 스물네 살에 읽었으니 외려 이 동화책이 들려주는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한결 차근차근 받아먹을 수 있었을까요.
어릴 적에도 읽고 나이든 뒤에도 읽으며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참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동화책을 모르는 채 산다 하더라도 내 삶이 안 아름다우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 하나를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놀라운 스승을 만나서 배워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권정생 님은 아무한테서도 동화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 곁에는 이오덕 님이 있어 언제나 말동무가 되고 삶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길을 걸었어요. 그러나 이오덕 님은 권정생 님한테 ‘동화 작법’이나 ‘글쓰기 이론’을 한 차례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은 그저 이녁이 태어나서 살아온 길을 가만히 더듬고 헤아리면서 피를 뱉으며 원고지를 채웠습니다. 원고지 한 장을 쓰고 피를 한 움큼 쏟고, 다시 원고지 한 장을 쓰며 피를 한 움큼 뱉았다고 해요.
참말 어떤 기운이 권정생 님을 이끌어 글을 쓰도록 했을까요. 원고지 한 장을 30분에 걸쳐 겨우 마무리지으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 울컥하고 나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픈 몸이면 그저 드러누운 채 누군가 돌봐 주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왜 아픈 몸을 자꾸 움직이며 살았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그토록 글을 썼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자꾸자꾸 새롭게 글을 쓰고 이웃들한테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까요.
.. “언니, 왜 안 먹고 가만 있어?” “아냐, 먹을게.” 몽실은 밥을 떠 입안에 넣었다. 떠넣으면서 이건 어느 집에서 얻은 것이고, 이건 또 누구네 집에서 얻은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 “난남아, 넌 아버지 모시고 집에 있거라. 언니 혼자서 밥 얻어 올게.” “응, 갔다 와.” 난남은 쉽게 대답했다. 어른들이 입는 해진 군복을 허리 밑까지 외투처럼 입은 몽실 언니가 깡통을 들고 집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난남은 자꾸만 슬퍼졌다 .. (201, 222쪽)
“이 문고리에 줄을 달았어. 누가 찾아오면 힘들어서 서지도 못해. 이렇게 문간에 앉아서 문고리를 붙잡아야 해. 그런데 문고리를 잡아도 힘들어. 그래서 한동안 문고리를 잡고, 힘들면 문고리에 매단 줄에 팔을 걸쳐. 이렇게 잡아야 앉아서 얘기할 수 있어.” 힘든 몸인데 곧잘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십니다. 힘겨운 몸이지만 아침에 밥을 끓입니다. 가끔 고등어를 사다가 굽기도 합니다. “내가 밥을 하루에 한 번만 해. 아침에 밥을 해서 밥통에서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 반은 아침에 먹고 반은 저녁에 먹어.” 권정생 님을 찾아온 손님이 빵 한 조각을 잘라 건넵니다. “얘, 정우야. 예전에 네 아버지(이오덕 님) 살아 계셨을 적에는 이런 것 못 먹었다. 이런 것 먹으면 나쁜 것 먹는다면서 꾸짖으셨어.”
권정생 님은 하루하루 살면서 나이를 먹었고, 할아버지 나이까지 살았습니다. 1937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2007년에 조용히 숨을 거두기까지 이녁이 낳은 아이는 없었으나, 이녁 둘레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를 이녁 아이로 여겼습니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쓴 힘은 바로 이 땅 모든 아이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아프기에 글을 쓰고, 아프기에 생각을 하며, 아프기에 하루하루 살아냈다고 느낍니다.
동화책 《몽실 언니》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은 모두 아이들한테 동무가 되는 글입니다. 아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힘든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슬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그리고, 안 아픈 아이와 안 힘든 아이와 안 슬픈 아이한테도 동무가 됩니다.
모든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는 꿈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넋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글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입니다. 동화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입니다. 책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로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가는 슬기입니다.
..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 … 난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로 현관문 기둥에 기대어 서서 몽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 (269, 270쪽)
동화책 《몽실 언니》에 나오는 몽실이는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친아버지도 새아버지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도 새어머니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사랑합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앳된 군인도 사랑하고, 이남에서 올라가는 젊은 군인도 사랑합니다. 부산 길바닥에서 숨진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풀빵장수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몽실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절름절름 걷습니다.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아픈 몸이요 마음일 테지만, 몽실이는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말 씩씩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꼭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 한 가닥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다리가 다쳐도, 배를 곪아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어도, 애틋한 동생하고 헤어져야 해도, 몽실이는 눈물 한 움큼을 삼키고 다시 일어섭니다. 권정생 님 스스로 피를 뱉고 다시 뱉으면서도 원고지와 연필을 놓지 않았듯이, 몽실이는 언제나 새롭게 일어나서 이 길을 걸었어요.
나는 권정생 님이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나 대신 아파 달라.” 한 마디를 늘 가슴에 새깁니다. 아프게, 아프게, 이 말 한 마디를 새깁니다. 그리고, 동화책 《몽실언니》에 나오는 몽실이가 난남이한테 선물한 책 《안네의 일기》처럼, 몽실이도 안네도 이 땅 모든 어머니와 딸과 할머니는 모든 이웃과 숨결을 사랑하며 살았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아픈 몸으로 새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끙끙 앓다가도 일어나 글을 한 줄 적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하늘을 우러러보고 별을 바라보며 박하풀 한 줌 뜯어서 이웃한테 건넬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 비가 내리니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조용합니다. 빗물이 살짝살짝 들을 적에는 제비들이 바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더니, 빗줄기가 굵으니 모두들 제비집에 가만히 옹크리면서 서로 깃을 부빕니다.
사랑이에요.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지구별을 밝히고 모든 보금자리에 숲내음이 감돌도록 북돋우는 힘은 사랑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이요, 평화를 바라는 이라면 사랑스럽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