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31. 《이방인》 새 번역 생각하기 ㄱ

― ‘어떤 한국말’로 옮겨야 ‘번역’이 될까



  번역은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입니다. 또는 한국말을 외국말로 옮기는 일입니다. 번역을 하려면 맨 먼저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외국말을 잘 해야 할 테고, 이와 맞물려 한국말을 잘 해야 합니다. 외국말을 잘 하지 못하면, 외국책을 잘 읽지 못합니다. 외국책을 잘 읽지 못한 채 한국말로 옮길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한국말을 잘 알지 못하면 외국책을 아무리 잘 읽었어도 옳거나 바르거나 알맞게 옮기지 못합니다.


  외국책을 잘 읽으려면 외국말뿐 아니라 외국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모두 잘 알아야 합니다. 한국말로 잘 옮기려면 한국말뿐 아니라 한국 사회와 문화와 역사를 모두 잘 알아야 합니다. 번역을 하거나 통역을 하거나 외국말·한국말·외국 문화·한국 문화를 골고루 살피고 헤아리는 눈썰미를 갖추어야 합니다.


  2014년 봄에 《이방인》이라는 작품이 새롭게 한국말로 나옵니다. 새움출판사라는 곳에서 나왔고, 옮긴이는 이정서 님이라고 합니다. 2014년에 새로 나온 번역책은 지난날 김화영 님이 번역한 책에서 잘못된 대목을 여러모로 짚는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하다가 문득 궁금합니다. 2014년 봄에 새로 나온 《이방인》은 번역을 얼마나 잘 했을까요? 외국말을 알뜰히 읽어냈다면, 나로서는 무엇보다 한국말로 얼마나 잘 옮겼을까 궁금합니다. 새움출판사 《이방인》 첫머리부터 차근차근 헤아려 봅니다.



1.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 ‘-(으)로부터’는 한국 말씨가 아닙니다. 일본 말씨입니다. 이런 토씨로 첫머리를 여니 안타깝습니다.



2. 오후 중에는 도착할 것이다

→ 낮에는 닿는다

→ 낮까지는 닿을 듯하다

: 한국말은 ‘낮’입니다. 한국말은 아침·낮·저녁입니다. “오후 中”처럼 쓰는 말투는 일본 번역 말투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번역 말투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잘못 스며든 이런 번역 말투는 걸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사장에게 이틀의 휴가를 신청했다

→ 사장에게 휴가를 이틀 신청했다

→ 사장한테 휴가를 이틀 달라고 했다

→ 사장한테 이틀 쉬겠다고 했다

: ‘휴가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더 헤아린다면 이렇게 옮기기보다는 ‘쉬겠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틀의 휴가”는 한국 말투가 아닌 일본 말투입니다. ‘の’를 매우 사랑하는 일본사람들 말씨입니다.



4. 내게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탐탁지 않아 했다

→ 내게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탐탁지 않아 했다

: ‘-ㅁ에도’처럼 쓰는 말투는 ‘-ㅁ에도 불구하고’ 하고 똑같습니다. 뒤에 ‘불구하고’를 안 붙이더라도, 이 말투는 일본 말투예요. ‘-지만’으로 바로잡아야 올바릅니다.



5. 요컨대 내가 사과를 할 필요는 없었다

→ 그러니까 내가 사과를 할 까닭은 없었다

→ 말하자면 내가 사과를 할 일은 없었다

: ‘要’는 일본사람이 아주 즐겨쓰는 한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컨대’ 또한 일본사람이 즐겨쓰는 말투에서 퍼진 낱말입니다. 이 낱말은 자리와 흐름에 따라 다 다르게 고쳐야 알맞습니다. 이 대목에서는 ‘그러니까’나 ‘말하자면’으로 고칠 만하고, 다른 자리에서는 ‘곧’이나 ‘이를테면’이나 ‘두말 할 까닭 없이’로 고칠 수 있습니다.



6. 그가 내게 조의를 표해야 할 일이었다

→ 그가 내게 조의를 해야 할 일이었다

→ 그가 나를 위문해야 할 일이었다

→ 그가 나를 달래야 할 일이었다

: ‘表하다’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글로 적는대서 한국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월은 “조의를 해야”로 적으면 됩니다. ‘조의’라는 낱말이 어려울 수 있으니 다른 한자말로 손보거나 더 쉽게 적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려서 아주 쉽게 적어도 됩니다.



7. 하지만

→ 그렇지만

→ 그러나

: ‘그러하지만’을 잘못 줄여서 ‘하지만’으로 쓰곤 합니다. 이런 이음씨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정서 님은 옮긴이 머리말에서 ‘하여’라는 낱말도 씁니다. 이런 엉터리 이음씨는 제발 안 써야 합니다. ‘그리하여’나 ‘이리하여’로 써야지요. 줄여서 쓰는 일이 잘못은 아니고, 얼마든지 줄임말을 쓸 수 있습니다만, 엉터리 줄임말은 함부로 쓸 일이 아닙니다.



8. 상장을 달고 있는 나를 보면

→ 까만 띠를 단 나를 보면

→ 까만 천을 단 나를 보면

: ‘상장(喪章)’이라는 낱말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누군가 죽었을 적에 서양에서는 으레 까만 띠를 달곤 합니다. 그러니, ‘까만 띠’라고 적을 수 있어요. 이 글월에서는 “달고 있는”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한국말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습니다. “달고 있는”이 아닌 “단”이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밥을 먹고 있어요”가 아니라 “밥을 먹어요”라 해야 올바릅니다. “책을 읽고 있어요”가 아니라 “책을 읽어요”라 해야 알맞습니다. 한국말은 이렇습니다.



9. 좀 더 공식적인 모습을 갖추게 될 터였다

→ …… 모습을 갖출 터였다

: “공식적인 모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부디 이 대목을 ‘한국말로 번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게 될’과 같은 입음꼴은 한국말에 없습니다.



10. 내게 깊은 유감을 표했으며

→ 내게 위로하는 말을 했으며

→ 내 슬픔을 다독이는 말을 했으며

→ 내 슬픔을 따뜻한 말로 달래 주었으며

: ‘유감(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유감을 표한다”고 하면 “섭섭하다고 말한다”나 “불만을 말한다”는 소리입니다. 아무래도 이 글흐름하고 안 맞겠지요? 누군가 죽은 자리에서 “유감을 표한다”고 읊는 말은 일본말입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함부로 쓰지 않기를 바라며, 이런 말투로 번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1. 그는 몇 달 전 자신의 삼촌을 잃었다

→ 그는 몇 달 전 삼촌을 잃었다

: “자신의 삼촌”이라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잃었다”가 아니라 “아버지를 잃었다”라 하면 됩니다. 우리 삼촌이 아닐 때에만 어떤 삼촌인지 밝히면 됩니다.



12.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렸다

→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렸다

: 한국말이 한국말다우려면 한국말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말은 일본말과 일본 한자말과 일본 말투와 일본 번역 말투에 너무 물들었습니다. ‘-기 爲해’도 일본 말투 가운데 하나입니다.



13. 길과 하늘의 반사광까지, 아마도 내가 존 것은 이 모든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 길과 하늘에 되비추는 빛까지, 아마도 내가 존 까닭은 이 모두 때문이다

: 토씨 ‘-의’를 아무 자리에나 넣으면 뜻이 흐리멍덩하거나 뒤죽박죽이 됩니다. 번역을 하든 창작을 하든 ‘-의’를 넣지 않고 슬기롭게 적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것’을 세 차례 넣는데, 세 군데 모두 덜어야 알맞습니다.



14. 나는 한 군인에게 기대어 있었는데

→ 나는 군인에게 기대었는데

→ 나는 군인 몸에 기대었는데

: 한국말에는 관사가 없어요. “한 군인”도 “한 오빠”도 “한 아버지”도 아닙니다.



15. 양로원은 마을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 양로원은 마을에서 2킬로미터 떨어졌다

→ 양로원은 마을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 토씨 ‘-로부터’가 아닌 ‘-에서’를 넣어야 올바릅니다. “떨어져 있었다” 같은 번역 말투가 아닌 “떨어졌다”나 “떨어진 데에 있었다”로 바로잡습니다.



  외국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분들이 한국말을 즐겁게 익히고 꾸준히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랑스말도 영어도 일본말도 잘 해야겠지요. 그런데,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면 번역은 부질없이 되고 맙니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다스리지 못하면 번역책은 너무 뒤죽박죽이 됩니다.


  잘못 옮기거나 엉터리로 옮기지 않으려고 마음을 쏟는 한편, 슬기롭고 올바르며 알맞게 한국말로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전 낱말풀이에만 기대지 않기를 바라고, 한국사람이 먼 옛날부터 오늘을 거쳐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즐겁게 주고받을 한국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한국말로 나오는 책은 마땅히 한국사람 말씨와 말투와 말결과 말빛이 살아나도록 가다듬을 때에 빛납니다. 한국말로 펴내는 책은 마땅히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즐기고 누리면서 이야기와 줄거리를 받아들이도록 북돋아야 아름답습니다. 다른 번역가가 옮긴 책을 나무라거나 꾸짖는 일도 뜻이 있겠습니다만, 다른 번역가가 옮긴 책을 나무라거나 꾸짖기 앞서, 이정서 님 스스로 이녁이 옮긴 책이 ‘한국말다운 한국말로 빛나는 번역책’이 될 수 있도록 새로 추스르고 손질하시기를 바랍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4-04-23 02:27   좋아요 0 | URL
최근에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번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번역자와 회사 대표가 같은 사람이었다지요? 다른 이를 공격할 때에는 최소한 그 자격은 갖춰야 하는 것 같습니다.

숲노래 2014-04-23 10:31   좋아요 0 | URL
그런 모습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번역을 아름답게 잘 했으면
대수로울 까닭은 하나도 없어요.

다만, 다른 사람을 '이름을 들먹이며 비판'한다고 하면
비판을 하려는 사람도 스스로 그 앞에 나와야 할 테지요.

요즘 같은 세상에서 곧 드러날 그런 '숨은 뒷자리'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싶고,
얼마나 훌륭히 번역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