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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네 개흙 잔치
안학수 지음, 윤봉선 그림 / 창비 / 2004년 11월
평점 :
시를 사랑하는 시 28
동시를 어떻게 쓰면 아름다울까
― 낙지네 개흙 잔치
안학수 글
창비 펴냄, 2004.11.30.
경운기가 지나가면 큰소리가 한참 울립니다. 경운기 소리가 퍼지는 동안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트랙터가 땅을 간다든지, 경운기 앞쪽을 떼내어 땅을 뒤집을 적에도 다른 소리를 못 듣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거나 버스가 지나갈 적에도 바람이 나뭇잎을 살랑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경운기가 멈춥니다. 트랙터가 멎습니다. 자동차도 버스도 이제 길에 없습니다.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듣습니다. 나뭇잎과 꽃잎이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꽃 곁에 앉으면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먹는 벌과 나비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봄은 온통 소리입니다. 맑은 소리가 흐릅니다. 밝은 꽃내음은 산뜻한 꽃노래와 같습니다. 꽃노래를 듣는 사람들 마음에서 저절로 삶노래가 흘러나옵니다.
.. 핥아먹고 키가 크는 고둥 조개들 / 찍어먹고 모래 빚는 칠게 방개들 / 갯지렁이 개불 쏙 짱뚱어까지 / 개흙을 좋아하면 아무나 오라 .. (낙지네 개흙 잔치)
시골에 농기계가 들어선 뒤로 시골에서 노래가 사라집니다. 시골에 노래가 있을 적에는 농기계가 없었습니다. 농기계를 좋게 보거나 나쁘게 볼 일은 없습니다. 다만, 농기계가 들어서면서 시골은 노래를 잃고, 노래를 잃은 시골에서는 이야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은 이야기를 낳지 않거든요. 손전화도 이야기를 낳지 않아요. 컴퓨터도 이야기를 낳지 않습니다. 자가용도 경운기도 이야기를 낳지 않습니다. 콤바인과 이앙기가 이야기를 낳는 일은 없습니다.
이야기는 삶이 낳습니다. 이야기는 삶에서 샘솟습니다. 이야기는 빙그레 마주보며 웃는 얼굴에서 태어납니다. 이야기는 흙에서 자라고 풀빛으로 싱그럽습니다. 이야기는 도란도란 나즈막하게 속삭일 수 있는 곳에서 기지개를 켭니다.
.. 진흙 속에 살아도 / 나는 안다 .. (참갯지렁이)
이제는 시골에서 일노래를 캐지 못합니다. 모내기노래가 없고 베틀노래가 없습니다. 방아노래라든지 빨래노래가 없습니다. 자장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직 있으나, 먼먼 옛날부터 내려온 자장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어요. 스스로 삶에서 새로운 자장노래를 빚어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어요.
삶에서 노래가 사라진 까닭은 살아가며 노래를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며 노래를 부르지 않는 까닭은 노래를 부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척척 일을 끝내는데 언제 노래를 부를까요. 농약으로 풀을 다 죽이는데 무슨 풀베기노래를 부를까요. 소를 뜯기지 않고 사료를 먹이는데 무슨 소먹이노래를 부를까요. 지게를 지지 않고 짐차로 실어 나르는데 무슨 노래가 나올까요.
노래란 몸으로 움직이고 손으로 일하는 어른이 부릅니다. 노래란 몸으로 뛰고 손으로 노는 아이가 부릅니다. 노래란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노래란 아이 스스로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짓습니다.
.. 깨어진 유리 조각들이 / 조가비처럼 파도랑 노는 건 / 고운 자개 빛을 얻으려는 마음이다 .. (소문난 바닷가)
예부터 노래가 이야기요 시입니다. 예부터 이야기가 시요 노래입니다. 예부터 시가 노래요 이야기입니다. 아이들한테 따로 동시를 읽어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따로 동시책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동시책을 꼭 사다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꼭 동시를 써서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두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동무하고 어울리며 나누는 이야기는 모두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언제나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이야기가 늘 노래이면서 시예요.
곧, 모든 어른이 시인입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시인입니다. 모든 어른은 아이와 함께 시를 쓰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부릅니다. 모든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시를 쓰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 오빠도 가지런한 / 밀알 글씨 또박또박 // 언니도 곱다라니 / 깨알 글씨 조솜조솜 // 나도 시원시원 / 콩알 글씨 사삭사삭 .. (글씨 쓰기)
안학수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낙지네 개흙 잔치》(창비,2004)를 읽습니다. 낙지는 개흙에서 언제나 잔치입니다. 게도 쏙도 조개도 모두 개흙에서 잔치입니다. 물고기도 바다도 개흙에서 잔치요, 갈매기도 바닷새도 개흙에서 잔치예요.
언제나 잔치이니 잔칫날 이야기가 감돕니다. 언제나 잔치이니 잔치노래를 부릅니다. 너도 나도 잔치를 생각합니다. 너와 함께 잔치를 즐기고, 나도 같이 잔치에 섞입니다.
.. 공기알이 춤춘다 / 손 따라 콩당꽁 / 한 알 따기 조막손은 / 모이 쪼는 꼬꼬닭 .. (공기놀이)
동시를 쓸 적에 이래저래 꾸미지 않아도 됩니다. 동시를 쓰면서 글잣수를 맞춘다거나 예쁘장한 낱말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도시 아이한테 꼭 보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도시 아이가 하나도 모르는 숲과 들과 바다 이야기를 굳이 섞어야 하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넋을 들려주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아끼는 꿈을 보여주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즐기는 웃음을 함께 나누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삶을 가꾸는 땀방울을 서로 북돋우면 될 이야기요 노래이며 시입니다.
안학수 님이 책상맡에서 동시를 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뛰놀고 조금 더 웃으며 조금 더 노래하면서 동시를 쓰면 한결 홀가분하면서 싱그러우리라 생각합니다. 깔깔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스스럼없이 또박또박 적다가 새근새근 잠들면 한결 아름다우면서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4347.4.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