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어느 나무이든 가지를 곧게 죽죽 뻗는다. 가지를 곧게 뻗지 않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가지를 비틀거나 뒤틀 적에는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억지로 휘거나 꺾으니 울면서 비틀거나 뒤틀기도 한다.


  사람들은 공원을 만들면서 큰나무를 옮겨심기도 한다. 큰나무 한 그루를 옮겨심으려면 오랜 나날 차근차근 해야 한다. 먼저 나무한테 말을 걸어야 한다. 네가 살아갈 자리를 옮길 테니 부디 너그러이 헤아려 주렴, 하고 인사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새터로 나무를 옮길 적에 잘 뿌리내릴 수 있게끔, 큰나무 둘레 알맞는 넓이로 땅을 파서 굵고 큰 뿌리를 끊는다. 이렇게 여러 날 지낸 다음 땅을 더 깊이 파서 나무 아래와 옆으로 난 뿌리를 웬만큼 잘 건사한 뒤 짐차에 실어 천천히 옮긴다.


  나무를 새터에 옮겨심을 적에는 뿌리와 둥치를 감싸던 천을 얼른 벗겨야 한다. 얼른 벗겨서 땅에 살뜰히 심어야 한다. 이 다음으로 할 일은 나무 둘레에 가랑잎을 골고루 뿌리는 한편,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옮겨심은 나무 둥치 둘레에 찬찬히 옮겨심어’야 한다. 쑥이나 고들빼기나 민들레를 흙까지 넓적하게 파내어 옮기기는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흙을 살려야 하기 때문인데, 풀이 있어야 흙이 산다. 풀과 흙을 함께 파내어 ‘옮겨심은 큰나무 둥치 둘레에 나란히 놓아’야, 옮겨심은 나무에서 뿌리가 땅밑에서 숨을 쉴 수 있다. 숨을 쉬면서 새 뿌리를 내려고 기운을 낼 수 있다.


  한편, 큰나무를 옮겨심을 적에 가지를 함부로 치면 안 된다. 나무는 밑에서 뿌리가 흙을 머금고 위에서 줄기가 잎을 매달며 햇볕과 바람을 마신다. 나뭇가지를 함부로 치는 일이란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왜 치는가? 큰나무를 파내어 옮겨심을 적에 번거롭거나 성가시기 때문이다. 나무가 잘 자라기를 바라면 나뭇가지를 함부로 쳐서는 안 된다.


  바닷가에 있는 공원에 간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일까? 아, 저기로구나. 멀리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나무 둘레로 휑한 흙땅을 본다. 나무 둥치를 감싼 천을 아직도 안 벗겼다. 얼마나 갑갑할까. 숨을 쉬고 싶은데 숨을 못 쉬도록 해 놓았으니 나무가 어찌 견디나. 하루 빨리 저 천을 걷어야 할 텐데, 무슨 짓을 하는 셈일까. 삼백예순닷새 늘푸른잎을 뽐내는 후박나무인데, 잎이 모두 말라죽었다. 아니, 아직 다 죽지는 않았다. 숨이 거의 다 넘어갈 노릇이다. 그 많았을 가지가 거의 사라졌다. 후박나무는 가지가 없으면 아주 괴로워 한다. 후박나무 가지는 푸른 빛깔을 띄면서 새로 돋는다. 푸른 빛깔 가지처럼 푸른 빛깔 잎사귀를 내놓고, 네 철 내내 푸른 숨결을 내뿜는다.


  나무가 앓는 소리를 들어요. 옮겨심기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옮겨심으려면 제대로 나무를 아끼면서 옮겨심어 주셔요. 나무를 돈으로 여기지 말아요. 돈 들이는 생각이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손길로 옮겨심어 주셔요. 조경학이나 원예학으로 나무를 바라보지 말아요. 나무는 나무 그대로 바라보셔요. 이 커다란 후박나무가 살던 보드라운 흙이 있고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던 모습으로 가꾸어야, 앓는 나무가 되살아날 수 있어요. 나무 둘레에 풀이 하나도 자라지 못하면, 끝내 후박나무 한 그루는 안타까이 숨을 거두고 말 테지요. 4347.4.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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