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가 살아온 나날
서울마실을 한다. 2호선 합정역에서 내려 걷는다. 망원역으로 가는 길이다. 전철역으로는 하나이지만, 인천부터 달린 전철을 새로 갈아타서 기다리기보다는 밖으로 나와 걸을 때에 더 나으리라 여긴다. 갈아타느라 땅밑길을 더 걷고 싶지 않으며, 아이들하고 바깥바람을 쐬며 햇살과 하늘을 마주하고 싶다.
큰길가를 걷다가 자동차 소리가 너무 시끄럽기에 큰길 안쪽 골목을 걷는다. 시골 아닌 서울인만큼 골목을 걷더라도 큰길 자동차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린다. 인천만 해도 골목으로 접어들면 큰길 자동차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서울은 참 자동차가 많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골목에도 자동차가 끝없이 오간다. 좁은 골목마다 두 줄로 자동차가 선다. 사람이 걸어서 지나다니기 고단하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좁은 골목을 지나가면서 무엇을 생각할까. 골목이 좁은 까닭은 자동차를 두 줄로 세운 탓인 줄 얼마나 느낄까. 골목이 좁은 까닭은 바로 이녁 스스로 골목에 자동차를 들이밀고 지나가기 때문인 줄 얼마나 알까.
작은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 문득 무언가를 본다. 이 골목에 나무가 있나 없나 살피며 걷다가, 골목집 담벼락에 붙은 나무기둥 하나를 알아차린다. 아, 너 나무전봇대로구나. 그렇지만 몸통이 잘린 나무전봇대로구나. 게다가 담벼락과 하나가 되면서 예전에 네가 나무전봇대였는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구나. 어쩌면 너는 담벼락과 하나가 되었기에 이 모습을 아직 그대로 남길 수 있겠구나. 담벼락과 하나가 되지 못했으면 밑동부터 잘리며 오롯이 사라져야 했겠지.
서울 시내에는 나무전봇대가 얼마쯤 남았을까. 서울 시내 나무전봇대를 알뜰히 돌보거나 건사하는 손길이나 눈길은 있을까. 나무전봇대 자국으로 남은 이런 예쁜 나무기둥은 얼마나 있는가. 나무기둥으로 남은 나무전봇대가 사람들 삶자국을 보여준다고 깨닫거나 헤아릴 사람은 얼마나 될까. 4347.3.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골목길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