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 이어령.존 프랭클 에세이, 김외곤.조형준 사진 에세이 / 새물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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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1

 


한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 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새물결 펴냄, 2008.11.15.

 


  프랑스사람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은 비행기를 타고 지구별을 돕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지구별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는 이녁한테 사진을 찍어 주기를 바라면서 여러모로 도와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다섯 해에 걸쳐 찬찬히 사진을 찍어 2008년에 《하늘에서 본 한국》(새물결)을 퍽 두툼하고 큰 판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은 한국을 찍은 사진책 머리말에서 “사람들은 제 사진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름다운 것은 지구입니다(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하고 이야기해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지구별이 아름다우니, 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빛을 사진으로 아름답게 찍을밖에 없는’ 셈입니다. 내 마음에 사랑을 지피는 아름다운 짝꿍을 사진으로 찍어 보셔요.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이 태어납니까. 내가 사진을 잘 찍으니 아름다운 짝꿍을 아름답게 찍지 않습니다. 내 사진기가 대단히 값지거나 비싼 기계이기에 내 짝꿍을 아름답게 찍지 않아요. 나와 마주한 아름다운 짝꿍한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사랑빛이 사진으로 살포시 옮아갈 뿐입니다.


  예부터 사진찍기는 ‘넋찍기’라 했습니다. 사진에 찍히면 넋이 빠져나간다고 여겼습니다. 이 말은 옳을 수 있고 그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찍히는 사람이 아름답게 삶을 가꾸면, 이녁을 찍는 사진은 언제나 아름답지요. 찍히는 사람이 아름답게 삶을 가꾸지 못하면, 이녁을 찍는 사진은 언제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진책 《하늘에서 본 한국》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이 찍었기에 아름답지 않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름답다면 누가 한국을 찍더라도 아름다운 빛이 서리기 마련입니다. 책끝에 붙은 “이 책은 하늘에서 보면 민족주의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심지어 DMZ를 찍은 사진들을 보더라도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미완’의 국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존 프랭클).”와 같은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남녘과 북녘이 따로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군인과 대통령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서울대 나온 젊은이와 고등학교만 마친 젊은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얼굴 이쁜 색시와 얼굴 못생긴 사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부자와 가난뱅이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하늘에서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는 이것과 저것을 가르지 않습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이 하늘을 날며 사진을 찍는 까닭을 얼핏설핏 알 만합니다. 하늘에서는 국경이 없기에, 이녁은 언제나 지구별을 나들이할 뿐입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를 가로지르지 않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지구별을 두루두루 나들이를 하면서 마음 가득 아름다운 빛을 담아요. 사진은 그저 거들 뿐이라 할까요. 손가락으로 단추를 누르기만 할 뿐, 언제나 아름다운 삶과 꿈과 사랑을 마주하니 즐거운 웃음으로 노래하듯이 사진을 빚는다고 할까요.


  그러면, 한국을 찍은 사진에는 어떤 빛이 서린다 할 만할까 돌아봅니다. 책끝에 붙은 “한국의 농촌에서는 사람의 그림자가 드문드문하고, 낙후된 실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환경이나 자연 풍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을 찍은 사진을 보면 저간의 사정이 짐작된다. 즉 한국 인구의 1/4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인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며, 날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존 프랭클).”와 같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시골에는 사람이 매우 드물고,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도시에는 사람이 매우 많고, 지나치게 넘칩니다. 사람도 자동차도 건물도 한국 도시는 끔찍하다 할 만큼 복닥복닥 어수선합니다.


  사진책 《하늘에서 본 한국》을 들여다보면 골프장 사진이 틈틈이 나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기에 골프장은 그야말로 그악스럽기 때문일까요. 어쩐지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일까요. 숲하고 동떨어진 골프장이요, 시골마을하고도 엇나가는 골프장입니다. 외딴섬에 마련한 별장과 관광단지 사진도 가끔 나타납니다. 작고 예쁘장한 섬에 엄청난 돈을 들이부어 마련한 별장과 관광단지는 무엇을 말할까요. 왜 ‘한국을 이야기하는 사진’에는 그악스럽다 할 만한 모습이 자주 나타날까요.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러들인 ‘시골집 지붕’ 빛깔을 바라봅니다. 새마을운동 바람과 함께 온 나라 시골에 불어닥친 ‘비닐 농사’ 무늬를 바라봅니다. 고랑을 따라 길게 줄을 맞춰 땅을 뒤덮는 비닐입니다. 시골은 온통 비닐이요, 도시는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입니다. 한국은 오늘날 이런 모습입니다. 아름답다면 아름다울 한국이요, 안 아름답다면 안 아름다울 한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거의 마지막에 실린 사진에 붙인 말을 읽습니다.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에는 약 2600만㎡에 달하는 넓은 갯벌이 있다. V자 형의 개막이 그물이 군데군데 처져 있는 갯벌 위로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졌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멋진 풍경을 선사하는 순천만 갯벌은 수산물이 풍부해 지역 주민들의 생계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332쪽).”와 같은 말은 누가 붙였을까요. 한국사람이 붙였을까요, 프랑스 사진가 스스로 붙였을까요. 어쨌든, 순천만 갯벌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마을사람 살림살이를 북돋우는 아주 좋은 삶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나온 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이런 말이 나오기 앞서까지 온 나라 갯벌을 온통 메우느라 바빴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전남 고흥은 들과 바다와 섬과 갯벌이 한껏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고장이지만, 거의 모든 갯벌을 메워 논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른 바닷가 시골에서도 갯벌을 메우기 바쁘기만 했습니다. 서울과 가까운 도시에서는 갯벌을 메워 아파트를 올렸어요. 인천공항은 섬과 갯벌을 메워서 지었습니다.

 


  갯벌은 순천 갯벌만 예쁘지 않습니다. 온 나라 모든 갯벌이 예쁩니다. 그러나 순천을 뺀 다른 고장에서는 갯벌을 없애기에 바빴고, 메운 갯벌에 다시 바닷물을 끌어들이려 하는 고장을 찾기 어려우며, 제주섬은 바닷가를 빙 둘러 찻길을 닦았습니다. 한국은 틀림없이 지구별에서 손꼽힐 만큼 들과 숲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이 아름다운 나라였을 텐데, 오늘날에는 지구별에서 손꼽힐 만큼 몽땅 망가뜨려 어지럽고 아픈 누리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요. 한국에서는 얼마나 아름다운 빛을 만날 수 있을까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님이 다른 나라에서 찍은 사진과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굳이 견주어야 할 까닭은 없을 테지만, 저절로 견주고 맙니다. 자꾸 견주고 맙니다.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빛은 아름다움보다는 그악스러움에 가깝고, 앞으로도 아름다움보다는 그악스러움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4347.3.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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