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4.2.21.
 : 바람맛이 다르다

 


- 하루 내내 일하느라 바쁘다 보니 아이들한테 밥을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다. 아픈 곁님은 오늘 면소재지 밥집에 전화를 걸어 바깥밥을 시켜서 먹자 한다. 그런데 내 주머니에 돈이 없다. 서울마실을 하며 책값으로 돈을 퍽 쓰기도 했고, 찻삯과 여관삯으로 들기도 했기에, 딱 삼천 원이 있다. 맞돈이 없으니 무얼 할 수도 없기에, 일이 아직 밀리고 몸이 몹시 아프지만 자전거를 몰고 우체국을 다녀오기로 한다. 곁님한테는 내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해 본들 나를 보살펴 줄 만한 몸이 아니기도 하고, 얘기를 하면 우체국을 자전거 타고 다녀오지 말라 할 테니까.

 

- 몸이 아플 적에 자전거를 타면 여름에도 춥다. 봄을 코앞에 두며 퍽 포근한 날이지만, 몸 때문인지 매우 춥다. 장갑을 꼈어야 했다고 느낀다. 한참 달리며 뒤늦게 깨달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 영 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가 아니나 참 힘들다. 그런데,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이 바뀌었나?’ 하고 느낀다. 집에서 마당에 빨래를 널 적에도 바람이 바뀌는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다른 고장은 어떠할는지 모르나, 고흥은 태평양 바다를 곧바로 끼는 남녘 뭍이기에, 철 따라 바람이 바로바로 달라진다. 여름이 저물고 가을 지나 겨울이 되면 높바람이 드세다.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접어들면 마파람으로 달라진다. 집에서 면소재지 가는 길은 ‘마’ 쪽으로 가는 길이니, 맞바람이 된다. 거꾸로, 면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높’ 쪽으로 가는 길이라, 등바람이 된다. 바람맛이 다르다. 아무리 아픈 몸이라 하지만, 달라진 바람맛을 느끼며 즐겁다.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살짝 웃는다.

 

- 우체국에 들러 10만 원을 찾는다. 면소재지 빵집에 들러 네모빵을 두 줄 장만한다. 살짝 빠듯한 이달 살림돈이지만, 새로운 책이 나오면서 널리 사랑받으면 더는 걱정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 집으로 등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린다. 몸이 힘드니 사진기는 집에 두고 나왔다. 새봄내음이 무르익는 들길을 달리지만, 들빛을 제대로 돌아보기 어렵다. 그래도 눈에 힘을 주어 구름을 보고 하늘을 본다. 멧등성이를 바라보면서 푸릇푸릇한 기운을 느낀다. 겨울나기를 마친 풀이 새롭게 기운을 내듯이, 나도 아픈 몸을 추스르며 아이들과 다시금 알콩달콩 복닥이면서 놀자고 생각한다. 집에 닿아 땀으로 젖은 웃옷을 갈아입은 뒤 그대로 자리에 뻗는다. 세 식구는 아버지가 사온 네모빵을 먹으며 저녁끼니로 삼기를 바랄 뿐이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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