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품은 여우 내 친구는 그림책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 한림출판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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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46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다
― 알을 품은 여우
 이사미 이쿠요 글·그림
 허앵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 1994.5.1.

 


  가끔 도시로 일을 하러 다녀옵니다. 전남 고흥은 어느 도시하고도 참 먼 시골이기에, 어디로든 도시로 일을 하러 가자면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적에는 언제나 저녁별이나 밤별을 등에 업습니다.


  엊그제 이틀치기로 서울과 인천을 다녀오면서 밤 열두 시 언저리에 고흥에 닿았습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별을 보지 못했고 별을 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인천은 서울보다 건물이 낮지만, 시골처럼 한 층짜리 집이 죽 늘어서지는 않습니다. 골목동네에서도 곳곳에 빌라가 많으니 별바라기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늘이 너무 좁아요. 서울에서는 밀려드는 자동차 물결 때문에 하늘 볼 틈이 없지요. 게다가 깊은 밤까지 불빛이 밝은 서울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별이건 달이건 떠올리지 않으리라 느껴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흥읍에서 내려 택시를 불러 탑니다. 택시 창밖으로 별을 봅니다. 읍내를 벗어난 택시는 바다도 멧자락도 들도 하늘도 모두 깜깜한 길을 조용히 달립니다. 이곳에서는 택시나 버스를 타고 움직이면서 별바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택시를 내립니다.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낮 동안 마당에서 놀며 어지른 것을 치웁니다. 마루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루며 방이며 부엌이며 어지럽습니다. 몸이 고단하지만 이대로 두고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한참 치우고 걸레질을 합니다. 한숨을 돌리려고 마당으로 다시 내려섭니다. 별바라기를 합니다. 이 좋은 별을 보며 살자고 시골로 왔지, 하고 헤아립니다. 이 좋은 별빛을 받는 시골에서 푸르게 자라는 풀과 꽃과 나무를 누리자고 조용조용 살아가지, 하고 돌아봅니다.

 


.. “아주 먹음직스러운 알이네. 한입에 삼켜버리자. 아니, 잠깐!” 여우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이 알을 따뜻하게 품어서, 태어난 아기 새를 꿀꺽하자.” ..  (2쪽)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불을 여미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습니다. 코를 부비고 다리를 주물러 봅니다. 어른인 나와 견주어 조그마한 발을 조물주물 주무릅니다. 이 작은 발로 오늘 하루 얼마나 신나게 뛰놀았니, 이 작은 발로 얼마나 개구지게 뛰고 날면서 하루가 신났니.


  아이들이 있기에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웃고 노래하기를 바라니까,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온갖 놀이를 찾아내고 지으면서 자라기를 바라니, 어디에서 무엇을 만져도 근심할 일이 없는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곰곰이 되새깁니다.


  아파트 아닌 다세대주택에서 살아도 아이들이 집안에서 뛰도록 두기 어렵습니다. 아파트숲 아닌 골목동네에서 살더라도 아이들은 자동차 걱정을 해야 합니다. 나라에서 어린이집 보육비를 대준다 하더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보육비를 대주는 일보다 어린이집이 어떤 노릇을 하는가를 살펴야지 싶어요.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삶은 돈으로는 가꾸지 못해요. 아이는 언제나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사랑스럽게 놀고, 사랑스럽게 노래합니다.

 


.. 큰 소리에 여우가 눈을 떠 보니, 족제비가 알을 깨뜨리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크릉, 크릉! 무슨 짓이냐, 내 알이야!” 여우는 새처럼 입으로 쿡쿡 족제비를 찌르며, 털북숭이 꼬리로 힘껏 때렸습니다 ..  (15쪽)


  이사미 이쿠요 님 그림책 《알을 품은 여우》(한림출판사,1994)를 읽습니다.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왜 여우가 알을 품어?” 하고 묻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닌 적 없고 다큐영화도 거의 본 일이 없는 일곱 살 큰아이는 여우가 새끼를 낳는지 알을 낳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요즈막에는 ‘새는 알을 낳는다’는 대목 하나는 조금 알아챘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보다가 “족제비가 왜 알을 먹으려고 해?” “배고파서.” “족제비가 알을 먹으면 새가 태어나지 못하잖아.” “그러게. 새가 태어나지 못하지. 그런데 족제비는 배고프니까 알을 먹어야 해.”


  큰아이는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요. 아니,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느덧 잊었을까요. 여우도 알을 먹을 생각이었어요. 여우도 알을 먹으려 합니다. 다만, 알에서 새끼 새가 깨어나면 더 맛나게 먹을 생각이에요.


.. 여우는 매일 매일,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었습니다 ..  (26쪽)


  내가 낳은 목숨이든 남이 낳은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돌보는 목숨이든 남이 돌보는 목숨이든 모두 같습니다. 내가 낳은 아이와 내가 씨앗을 심어 돌보는 밭이 서로 같습니다. 내가 쓴 글과 내가 장만한 책이 서로 같습니다.


  목숨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같은 값이라서 같지 않습니다. 같은 사랑이라서 같습니다.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미국사람이 버마사람이나 라오스사람보다 더 낫지 않습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낫지 않으며, 아이가 어른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참새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똑같이, 참새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낫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꽃이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모두 이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목숨이요 숨결이면서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저마다 한식구를 이루어 저마다 예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 난처해진 여우는 아기 새를 두고 숲 속으로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둥지 안에 두고 온 아기 새가 걱정되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삐익삐익, 삐익삐익.” 불쌍한 아기 새의 울음소리가 숲 속까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 ..  (37쪽)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지 못합니다. 여우는 새끼 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알을 고이고이 품”으며 지냈는데, 이 알에서 깨어난 여린 목숨을 어떻게 잡아먹을까요. 아마 여우는 앞으로 ‘풀 먹는 여우’로 달라질는지 몰라요. ‘풀 먹는 여우’로 살다가, 풀이 아파할까 걱정하는 마음이 생기면, 풀조차 안 먹고 ‘바람과 이슬을 먹는 여우’로 다시 태어날는지 몰라요. 하느님 눈물을 쏙 뺄 만큼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여우로 살아갈 테지요. 하느님 웃음을 빙그레 자아낼 만큼 멋지고 예쁘며 즐거운 여우로 살아가겠지요.


  아이를 낳은 어버이는 모두 한마음입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은 모두 한넋입니다. 사랑이 가득 담긴 한마음이요, 꿈이 그득 실린 한넋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요.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앉아 땅을 봐요. 가만히 서서 두리번두리번 이웃을 둘러봐요.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에서 샘솟는 이야기를 느껴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환하게 빛나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는 숨결일까 헤아려 봐요. 4347.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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