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pek0501 님 때문에 씁니다. 겨울눈과 비닐농사와 농사꾼과 시골살이, 여기에 우리 사회와 문화와 문명과 도시 얼거리 모두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을 읽고, '삶을 밝히는 길'을 슬기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부터 '자연재앙'이란 없습니다. '자연재앙'이란 자연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세운 문명이 '자연 흐름'하고 어긋나다 보니, 스스로 불러들인 끔찍한 아픔입니다. 일본 후쿠시마가 왜 그렇게 되었겠어요? 스스로 자연을 거스르면서 문명으로 치달으면서 돈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지켜야 한다면서 온갖 전쟁무기와 군대에다가 핵무기까지 만드는 일을 찬성하는 사람은,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화를 바라면 참말 평화롭게 되도록 살아야겠지요. 겨울에는 마땅히 눈이 내려야 하고, 겨울에는 1미터이건 2미터이건 큰눈도 내리기 마련입니다. 이런 자연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목숨을 잃겠지요 ..

 

 

비닐집에서 키우는 열매와 푸성귀

 


  비닐집에서 애호박을 키우는 오늘날이다. 비닐집에서 키우는 애호박은 비닐로 단단하게 동여매서 가게로 내보내고, 가게에서는 비닐에 단단히 붙들린 애호박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판다. 그런데, 비닐집에서 애호박을 키우면서도 흙바닥에 비닐을 덮는다. 양파를 심건 마늘을 심건 흙땅에 비닐을 덮는다. 고추를 심건 무나 배추를 심건 감자나 오이나 토마토나 가지를 심건, 참말 오늘날 농사꾼은 모조리 언제나 흙땅에 비닐을 덮는다. 오늘날 이 나라 시골 농사란 죄다 ‘비닐농사’이다.


  비닐농사는 비닐농사일 뿐, 유기농이나 자연농이 아니다. 친환경농조차 아니다. 비닐집을 치는 이들은 숲이나 흙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오직 뜨거운 기운만 들어오도록 하고, 햇볕과 바람과 빗물은 하나도 못 들어오도록 막는다. 다른 풀씨가 날려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한다. 비닐집은 푸른 숨결이 살 수 없다. 비닐집은 감옥과 똑같다. 시멘트로 때려지은 건물에 아이들을 집어넣고는 열두 해에 걸쳐 대입지옥 수렁에 몰아세우는 어른들은, 시골에 비닐집을 잔뜩 지어서 한 해 내내 철없는 푸성귀와 열매를 내놓는다.


  추운 고장이라면 비닐농사를 지을 만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에 비닐집이 들어오지 않았을 적에도 누구나 맨땅에 씨앗을 심어서 푸성귀와 열매를 거두었다. 모든 푸성귀나 열매는 철에 따라 먹었다. 철이 없이 먹는 푸성귀나 열매란 없었다.


  딸기를 어째 늦봄이 아닌 한겨울에 먹는가? 참외와 수박을 어째 늦여름이 아닌 이른봄에 먹는가? 말이 되는가? 호박이나 무나 배추를 어째 한 해 내내 마트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사다 먹는가? 이렇게 철없이 살기에 모두들 하나같이 철없는 말을 일삼고, 철없는 짓을 저지르며, 철없는 글을 쓰다가는, 철없는 짓으로 아이들을 망가뜨리지 않는가?


  겨울은 시래기국이요, 봄은 냉이국이다. 겨울은 고구마밥이요, 여름은 보리밥이다. 철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철을 헤아리는 말빛을 밝혀야지 싶다. 흙땅에 비닐을 덮으니 농약과 비료를 쓸밖에 없다. 농약과 비료를 흙땅마다 뿌려대니,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실 수 없다. 이러니, 여러 시골마을을 댐에 가두게 해서 수도물을 마시는 문명 사회가 된다.


  겨울에 내리는 눈을 즐겁게 맞아들이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즐겁다고 할 만할까? 겨울에 내리는 눈이란 겨울가뭄을 막고 새봄을 한껏 빛내는 어여쁜 손길인 줄 깨닫지 못하는 우리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다고 할 만할까? 대통령이나 여러 썩은 정치꾼을 비판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스스로 철이 들어서 철에 맞는 밥과 집과 옷을 누릴 수 있어야, 민주와 평화와 통일과 자유와 평등이 사랑스레 뿌리내리면서 퍼질 수 있다. 철이 없으면 숲이 모두 죽고 만다. 숲이 모두 죽은 자리에 비닐집 지은대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숨을 쉬거나 물을 마실 수 있겠는가? 4347.2.1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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