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142) 위의 1 : 위의 경우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이 다르게 평가되었다면 새로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H.웨이신저,N.롭센즈/임한성 옮김-불완전한 인간》(청하,1986) 20쪽

 

 위의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이와 똑같은 일
→ 이때와 똑같은 일
→ 이 경우와 똑같은 사건
 …


  앞말을 받으면서 ‘위’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퍽 있습니다. 이와 달리, 뒷말을 들려주기 앞서 ‘아래’라는 낱말을 쓰는 분이 꽤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올바르지 않습니다. 책을 쓸 적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종이 위쪽에 나올 수 있습니다만, 앞쪽에 다루려는 이야기가 나온 뒤 뒤쪽에 “위의 경우”처럼 이어진다면, 참 뜬금없는 소리가 돼요. “아래의 경우”처럼 쓸 적에도 똑같습니다. 책 맨 아래쪽에서 “아래의 경우”라 적고는 다음 쪽 맨 윗자리에 다음 이야기가 흐르면 어찌 될까요.


  그러니, 다루려는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려 하면, “위의 경우”가 아닌 “이 경우”라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이 경우”는 살짝 손질해서 “이때”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이와 똑같은”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4338.2.1.불/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때와 똑같은 일이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

 

‘경우(境遇)’은 앞말과 묶어 ‘이때’로 손봅니다. ‘사건(事件)’은 ‘일’로 다듬고, ‘평가(評價)되었다면’은 ‘받아들여졌다면’으로 다듬으며, “새로운 반응(反應)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었다”로 다듬어 봅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604) 위의 2 : 위의 예에서도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나카네 지에/양현혜 옮김-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1996) 31쪽

 

 위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 보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 이처럼
→ 이와 같이
  …


  “위의 예”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잘못 쓰는 보기입니다. 이 글월은 “이 예에서도”로 적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例)’를 손질해 “이 보기에서도”처럼 적고, 단출하게 “이에서도”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더 단출하게 적어 보자면, “이처럼”이나 “이와 같이”로 적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이”로 적어도 됩니다. 4339.5.20.흙/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처럼 규칙이라는 것이 일본과 같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

 

‘예(例)’는 ‘보기’로 다듬습니다. “개별적(個別的)이고 구체적(具體的)인 것이 아니라”는 무엇을 말할까 알쏭달쏭한데, ‘개별적’은 “하나씩 따로 나뉘어 있는”을 뜻하고, ‘구체적’은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추고 있는”을 뜻합니다. 이러한 뜻을 헤아린다면, “따로 어느 하나이거나 또렷한 무엇이 아니라”로 손질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느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29) 위의 3 : 소파 위의 뚱보 하인

 

기름때 흐르는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뇌수에서 몽상을 하는 / 당신네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고 문질러 / 마음껏 조롱하리라, 뻔뻔하고 신랄한 나는
《마야꼬프스끼/석영중 옮김-광기의 에메랄드》(고려대학교 출판부,2003) 1쪽

 

 소파 위의 뚱보 하인처럼
→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외국사람이 쓴 시를 한국말로 옮긴다고 할 때에는 훨씬 더 마음을 쏟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시 흐름을 거스르지 않도록 애쓰고, 말맛과 이야기가 알뜰히 어우러지게끔 힘써야 합니다. 뜻을 옳게 살필 뿐 아니라, 한국말다운 글이 되도록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그나저나, “소파 위의 뚱보 하인”은 무슨 소리일까요. 뚱보 하인이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일까요, 아니면 뚱보 하인이 “소파 위에 올라섰다”는 소리일까요. 이쪽인지 저쪽인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소파에 앉았다”는 소리 아닐까 싶은데, 앉은 모습이 아니라면 “선 모습”이나 “누운 모습”이나 다른 어떤 모습인지 또렷하게 밝혀야 합니다.


  우리는 “걸상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습니다. “땅바닥에 앉”습니다. “걸상 위”도 “자리 위”도 “땅바닥 위”도 아닙니다. “저기 풀밭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저기 풀밭 위에 앉으렴” 하고 말하지 않아요. 풀밭 ‘위’라는 데는 없습니다. 풀밭 ‘위’라면 풀밭 위쪽으로 붕 떠서 ‘하늘에 있으라’는 소리가 됩니다. “소파 위”라는 말도 소파 위쪽 하늘에 있다는 소리가 돼요. 4339.9.8.쇠/4342.6.6.흙/4347.2.9.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기름때 흐르는 소파에 앉은 뚱보 하인처럼 /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 / 너희들 생각을 / 내 피투성이 심장에 대로 문질러 / 마음껏 비웃으리라, 뻔뻔하고 날카로운 나는 

 

“물렁한 뇌수(腦髓)에서 몽상(夢想)을 하는”이라면 “물렁한 머리에서 바보꿈을 꾸는”이나 “물렁한 머리로 꿈속이나 헤매는”쯤으로 다듬으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당신(當身)네들’은 ‘너희들’로 손보고, ‘조롱(嘲弄)하리라’는 ‘놀리리라’나 ‘비웃으리라’로 손보며, ‘신랄(辛辣)한’은 ‘날카로운’이나 ‘따가운’으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