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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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문서에 나오는 낱말과 말투를 알맞고 올바르며 쉽게 다듬는 일을 하면서 ‘수범’이라는 말을 자주 봅니다. 어떤 뜻으로 이
말을 쓰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한국말사전을 뒤적입니다. ‘垂範’은 “몸소 본보기가 되도록 함. ‘모범’으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모범(模範)’이라는 말을 다시 찾아보니, “본받아 배울 만한 대상”이라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을 덮고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때나 중·고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 상장을 수여함’과 같은 말투로 상장을 주곤 했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적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타의 모범’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니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 뿐이에요. 일제강점기 일본 말투인데, “남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주므로”라든지 “남이 배울 만한 훌륭한 모습이므로”를 가리켜요. 그러니까,
교사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어른들 가운데 이녁 스스로 어떤 말씨를 아이들한테 들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는가를 제대로 깨달은 분이 거의 없던
셈이에요. 그무렵에 상장을 받은 아이 가운데 이 말뜻을 똑똑히 알아챈 동무가 얼마나 있었을까요. 네 몸가짐이 참 좋구나, 네 모습이 참
훌륭하구나, 네 매무새가 참 아름답구나, 네 마음씨가 참 곱구나, 하고 꾸밈없이 따사로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에 참다운 어른이리라 생각해요.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