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덕 Joo Myung-Duck 열화당 사진문고 1
열화당 편집부 엮음 / 열화당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명덕 님 사진책 <장미>는 새책방에서 팔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다른 주명덕 님 책에 이 사진책 느낌글을 붙입니다. 도서관에 이 책이 깃들어, 사람들이 널리 살펴볼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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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56

 


하나도 사진, 둘도 사진
― ROSE
 주명덕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2009.6.13.

 


  하나를 보아도 사진입니다. 둘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꽃집에서 보아도 사진입니다. 씨앗을 받아 찬찬히 돌보며 나무로 키워 늘 지켜보아도 사진입니다. 어느 쪽에서도 사진은 태어납니다. 어느 곳에서도 사진을 읽습니다.


  장미를 보아도 사진입니다. 괭이밥꽃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동백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후박꽃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동백씨앗이 천천히 여물다가 굵어지고 무르익으며 벌어지는 모습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후박꽃 망울이 차츰 굵고 단단해지다가 천천히 벌어지면서 한껏 흐드러지도록 터지는 모습을 보아도 사진입니다. 어느 꽃을 보아도 사진은 태어납니다. 어느 꽃잎과 풀잎을 읽어도 사진을 깨닫습니다.


  나그네도 사진입니다. 마을사람과 토박이도 사진입니다. 나그네로 슬쩍 지나가다가 담아도 사진입니다. 마을사람이 한결같이 지내는 삶자락 담아도 사진입니다. 토박이가 토박이다운 눈썰미와 마음으로 그려도 사진입니다. 여행자가 되어야만 사진이 되지 않고, 마을사람 눈길로 바라보아야만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서로 다른 삶을 서로 다른 사랑으로 담아 서로 다른 이야기와 빛이 흐르는 사진이 됩니다.


  주명덕 님이 일흔 나이 언저리에 선보이는 사진책 《ROSE》(한미사진미술관,2009)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시중에 돌지 않고, 새책방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서관에는 있을까요? 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도서관에는 있을까요? 음,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이 사진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는, 이 사진책을 펴낸 한미사진미술관에 찾아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명덕 님은 사진책 첫머리에서, “장미는 예쁘고 아름답다. 흰장미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품격이 백작부인 같다. 남대문 꽃시장 나의 단골 아줌마는 항상 좋은 백장미를 골라 준다. 나는 백장미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 사랑을 나는 내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하고 밝힙니다. 그런데, 한자말 ‘우아(優雅)하다’는 ‘아름답다’를 뜻합니다. 한국말 ‘아름답다’를 한자말로 옮기면 ‘우아하다’가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한국말로는 ‘흰장미’이고, 한자로 적으려면 ‘백(白)장미’가 되지요. “우아하고 아름다운 품격”이란 “아름답고 아름다운 품격”이에요.




  한국사람이 ‘아름다운 흰장미’를 바라보든,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이 ‘優雅한 白장미’를 바라보든 똑같은 꽃입니다. 미국사람이 ‘beautiful white rose’를 바라보아도 똑같은 꽃이에요.


  사진책 《ROSE》는 흰장미를 다발로 처음 만날 적에 곱게 빛나는 모습부터 찬찬히 시들어 마른 모습까지 흑백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차근차근 흐르는 사진을 보여주는 주명덕 님은 “어느덧 내 나이가 칠순이 되었다. 장미 사진들을 보니 내 삶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이제부터, 이제부터 더욱 좋은 사진 작업을 해야만 한다.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는 말을 붙입니다. 그래요, 하얗게 빛나는 장미는 주명덕 님이 풋풋한 눈빛으로 사진기를 처음 쥐던 때 모습일 테고, 차츰 흰빛이 바래는 흐름은 주명덕 님이 신나게 사진기를 쥐면서 뛰어다닐 적 모습일 테지요. 이러다가 뻣뻣하게 시들면서 마르는 장미빛이란 주명덕 님이 일흔 고개를 지나가는 모습이 되겠지요.


  장미꽃은 언제 가장 아름다울까요. 사람은 언제 가장 빛날까요. 장미꽃은 언제 가장 맑을까요. 사람은 언제 가장 환하게 웃을까요. 장미꽃은 언제 가장 돋보일까요. 사람은 언제 가장 싱그럽게 웃으면서 일할까요.


  어린이가 가장 아름다우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흔 할매나 여든 할배쯤 되어야 가장 멋스러우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도 멋도 빛도 따로 금으로 죽 그어서 가르지 못합니다. 오늘이 더 아름답거나 어제가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모레가 한결 아름다울 수 있거나 이듬해에 훨씬 아름다울 수 있지 않습니다.


  갓 돋은 장미꽃은 갓 돋은 대로 곱습니다. 한창 무르익다가 천천히 시들며 씨앗을 맺으려는 꽃송이는 이러한 결대로 곱습니다. 꽃잎이 모두 진 나뭇가지는 나뭇가지대로 곱습니다. 겨울을 나면서 새눈이 돋는 모습은 새눈대로 곱습니다.


  작은 씨앗은 씨앗으로서 곱습니다. 우람한 나무는 우람한 나무로서 곱습니다. 찔레나무는 찔레나무대로 곱고, 탱자나무는 탱자나무대로 곱습니다. 버들잎은 버들잎대로 고우며, 억새잎은 억새잎대로 곱지요.


  고운 눈빛으로 바라보면 어느 나무라도 곱습니다. 사랑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으면 어느 풀이라도 사랑스럽습니다. 고운 빛을 사진으로 담지 못한다면, 고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무늬를 사진으로 싣지 못한다면, 사랑스러운 손길로 어루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가 되어야 사진을 잘 찍지 않습니다. 사진을 쉰 해쯤 찍고 나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지 않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즐겁게 사진을 찍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밝히는 사람이 사랑스러운 사진을 내놓습니다.


  하나도 사진입니다. 둘도 사진입니다. 하나를 읽어도 사진입니다. 둘을 읽어도 사진입니다. 셋이나 넷까지 담거나 보여주어야 사진이지 않습니다. 하나에서 그치거나 둘에서 머물더라도 안 볼 만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나누는 사진이요, 저마다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사진입니다. 일흔 나이란 대수롭지 않고, 오랜 사진길은 놀랍지 않습니다. 꿈을 키우는 삶빛일 때에 곱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눈빛일 때에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4347.1.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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