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평화 발자국 1
권정생 지음, 이담 그림 / 보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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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5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권정생 글
 이담 그림
 보리 펴냄, 2007.6.25.

 


  우리 마음속에는 ‘너와 나’가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너와 다’가 딱히 없습니다. 모두 ‘우리’입니다. 내 마음처럼 네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배고프면 너도 배고파요. 내가 즐거우면 너도 즐겁고 싶어요. 내가 사랑을 누리며 기쁘면, 너도 사랑을 누리며 기쁘고 싶어요.


  혼자만 잘살 수 없습니다. 나만 잘살고 너는 못살아도 되지 않습니다. 나는 못살고 너만 잘살아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잘살 때에 즐겁습니다. 함께 잘살면서 다 같이 노래하고 춤출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아이를 때려 보셔요. 아이가 아프겠지요. 아이한테 맞아 보셔요. 맞으면 아프겠지요. 어른인 우리들이 자가용을 달리다가 빵빵하고 눌러 보셔요. 앞에서 길을 걷던 사람이 깜짝깜짝 놀라요. 우리는 빨리 가고 싶으니 빵빵하고 누를 텐데, 자가용에서 내려 아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다가 누군가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를 들어 보셔요. 얼마나 깜짝 놀랄는지 스스로 느껴 보셔요.


.. “곰이도 일어났구먼?” 아저씨는 일부러 그러듯이 벙긋 웃어 보였습니다. “그럼요, 이렇게 아름다운 봄밤인데…….” 곰이는 하얀 둥근 달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하얀 둥근 달은 하도 맑아서 저절로 소리라도 곱게 울릴 것만 같았습니다 ..  (4쪽)

 


  아주 깨끗한 시골이나 멧골로 찾아가서 냇물이나 샘물을 마셔요. 그리고 냇가 한쪽에서 빨래를 해 보셔요. 빨래를 하며 이는 거품이 흐르겠지요. 빨래거품이 이는 한쪽에서 물을 떠서 마실 수 있는지 헤아려 보셔요.


  늦봄에 들판과 숲으로 가서 들딸기를 따먹어 보셔요. 그리고, 들딸기 돋는 곳 둘레에서 비닐쓰레기를 태워 보셔요. 비닐쓰레기 타는 냄새가 퍼지는 곳에서 들딸기를 따서 먹을 만한지 헤아려 보셔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셔요. 목소리를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셔요. 그리고, 자동차에서 내려, 고속도로 바로 옆에 붙은 마을에 찾아가 보셔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내놓는 소리가 하루 내내 얼마나 크게 울려퍼지는가를 느껴 보셔요.


  전철길과 맞닿은 골목집에 나들이를 가 보셔요. 새벽부터 밤까지 끊이지 않는 전철이 내는 소리와 전철이 지나가며 덜덜 떨리는 기운을 느껴 보셔요.


.. 곰이는 앵두나무가 함박꽃을 피우던 고향 초가집을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는 함께 피난을 오던 아버지랑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무사히 피난을 하고 고향으로 가셨을까?’ ..  (8쪽)

 

 


  나는 어떤 목숨일까요. 너는 어떤 숨결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떻게 어깨동무를 할 적에 사랑스러울까요.


  같은 나라인데, 어느 도시에서는 전봇대를 치우고 전깃줄을 땅바닥에 묻습니다. 전자파를 줄이려고 힘쓰고, 전깃줄로 어지럽지 않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어느 시골에서는 엄청나게 커다란 송전탑을 세웁니다. 논 한복판에도 송전탑을 박습니다. 지붕 위로 송전탑 전깃줄이 가로지르곤 합니다.


  지역정부 탓일까요. 지역정부한테 목소리를 내지 못한 탓일까요. 커다란 도시에는 사람이 많고 돈이 많아서 송전탑을 안 놓고, 전봇대조차 땅바닥에 파묻을까요. 시골마을은 사람도 적고 돈도 없어서 송전탑을 척척 박아도 될까요.


  같은 나라인데,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아파도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느긋하게 지내도 좋을까요. 다 함께 즐거울 길이란, 서로 웃고 노래할 삶이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 오르막 비탈에 진달래가 무더기로 탐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둘은 야트막한 산봉우리에 올라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아저씨, 전쟁을 피해 달아나려 했는데도 전쟁은 우리 뒤를 금방 따라온 거예요. 살려고 갔는데도 난 죽은 거예요.” 산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달은 어쩌면 더 높이 달아난 듯 보였습니다. “아저씬 누구랑 전쟁을 하셨어요?” 곰이가 물었습니다. “국군하고 싸웠지.” “국군은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야.” “어느 나라를 지키는 사람인데요?” “이름만 다르지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야.” “똑같다니요?” “다 같은 단군 할아버지의 자손들이니까.” ..  (12쪽)

 


  권정생 님이 쓴 글에 이담 님이 그림을 넣은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보리,2007)를 읽습니다. 이 이야기책은 한국전쟁 때 일어난 슬픔과 생채기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너와 내가 적군이 되어 싸우고 죽였던 아픔과 고단함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참말 왜 너와 내가 적군이 되어야 했을까요. 참말 왜 너와 나는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가 되어야 했을까요. 참말 왜 아직도 우리는 갈갈이 쪼개져서 서로를 손가락질하거나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면서 전쟁무기를 끝없이 늘리기만 할까요. 조그마한 두 나라로 갈린 채 전쟁무기와 군대를 두느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젊고 푸른 사내들이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서로를 적군으로 노려보면서 미워해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 “그래,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역시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오푼돌이 아저씨는 곰이와 저만큼 떨어져 가서 아까 일어나던 그 장소에 쓰러지듯 누웠습니다. 뒤따라 곰이도 이끼가 더덕더덕 낀 바윗덩이 옆에 그렇게 쓰러졌습니다 ..  (34쪽)

 


  풀은 남녘에서 자라건 북녘에서 자라건 똑같이 풀입니다. 민들레는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똑같이 민들레입니다. 능금나무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똑같이 능금나무입니다. 복숭아나무는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독일에서도 똑같이 복숭아나무입니다. 감자는 한국에서도 브라질에서도 노르웨이에서도 똑같이 감자예요. 참새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인도와 모로코에서도 똑같이 참새예요.


  서로 싸우지 않는 풀입니다. 서로 다투지 않는 나무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숨결입니다. 남녘사람이 북녘사람과 다툴 까닭이 없습니다. 중국사람과 인도사람이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쳐들어갈 까닭이 없습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쳐들어가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괴롭힐 까닭이 없습니다.


  총이 아닌 쟁기를 만들어 함께 흙을 갈아요. 탱크가 아닌 작은 집을 지어 오순도순 어울려요. 잠수함이나 전투기 따위가 아니라, 미사일이나 폭탄이 아니라, 화학무기나 핵무기가 아니라, 다 함께 즐거이 누릴 수 있는 숲과 들과 마을을 이루면서 어깨동무해요.


  나한테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저 사람한테 나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서로서로 누구인가요. 서로 사랑할 이웃인가요. 서로 미워할 나쁜 놈인가요. 서로 아낄 벗님인가요. 서로 다툴 못된 놈인가요. 함께 살아갈 사람인가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끔찍한 놈인가요. 4347.1.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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