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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키 티키 템보 ㅣ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21
아를린 모젤 글, 블레어 렌트 그림, 임 나탈리야 옮김 / 꿈터 / 2013년 10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34
아이 이름을 불러요
― 티키 티키 템보
아를린 모젤 글
블레어 렌트 그림
임 나탈리야 옮김
꿈터 펴냄, 2013.10.18.
서울 다녀오는 바깥일을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옵니다. 시골집에서 다시 아이들 아버지가 됩니다. 밥을 챙기고 쉬를 누이며 잠자리를 여미는 아버지 자리에 섭니다. 작은아이는 신나게 뛰놀았는지 일찍 곯아떨어졌습니다. 이튿날에는 꽤 일찍 일어나겠구나 싶습니다. 큰아이는 퍽 늦도록 놀았으니 작은아이보다는 늦게 일어날까요. 큰아이도 작은아이와 함께 일찍 일어나서 새 하루에 또 신나게 놀까요.
시골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 일꾼이 앞서 탄 손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읍내에서 ㄱ면으로 어느 아저씨를 태우셨다는데, 시골에서 동남아시아 가난한 나라 각시를 받아서 혼인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그분은 아이가 초등학교 육학년인데 하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느라 답답하고 슬프다고 말한대요. 하도 따돌림을 받느라 아이는 학력이 무척 뒤떨어진다는군요.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시골에서 흙 만지고 살려는 가시내는 아주 드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가시내는 시골로 시집을 올 생각이 없기 일쑤입니다. 고흥만 이와 같지 않아요. 다른 시골이 다 엇비슷합니다. 서울하고 가까운 시골로조차 갈 마음이 없는 젊은 가시내입니다. 젊은 사내도 똑같아요. 시골에 남는 사람은 바보스럽다고 바라보는 사회 흐름이고, 시골에 남아 흙을 일구도록 가르치지 않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이요, 대학교 교육입니다. 도시 학교나 시골 학교 모두 도시에서 일자리 찾도록 이끌 뿐이에요. 어느 학교에서나 대학교에 가도록 내몰기만 해요.
우리는 어떤 이름을 누리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이름을 붙이는 숨결일까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어떤 이름을 지어서 물려주는 넋일까요.
..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중국에서는 첫째 아이에게 아주 길고 훌륭한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어요. 하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이름을 대충 짧게 지어 주거나 아예 지어 주지 않았답니다 .. (5쪽)
곁님과 나는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사름벼리’와 ‘산들보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어머니 성도 아버지 성도 안 씁니다. 두 아이는 저마다 새로운 성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큰아이는 ‘사름’이 성이고 ‘벼리’가 이름입니다. 작은아이는 ‘산들’이 성이고 ‘보라’가 이름이에요. 아이들이 이 이름을 스스로 곱게 여기면서 사랑스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큰 뒤에는 저희 이름을 저희 나름대로 새롭게 지어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곧, 어버이는 아이한테 가장 고우면서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서 물려주어요. 아이는 어른이 된 뒤 스스로 새 이름을 지어서 새롭게 누립니다. 아이들 어버이인 곁님과 나 또한 우리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에다가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붙이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란 앞으로 살아가고픈 꿈을 담는 빛입니다. 이름이란 오늘 이곳에서 밝히고 싶은 꿈을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이름이란 어깨동무하려는 이웃을 떠올리면서 사랑을 나누려는 웃음입니다.
이 땅에 흔한 이름이란 없습니다. 이 땅에 똑같은 이름이란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다른 이름을 얻고,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숨결로 다 다른 빛을 비춥니다.
.. 불쌍한 챙은 형의 훌륭하고도 길고 긴 이름을 말하느라 이제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어요. 형의 이름을 한 번 더 말해야 한다니, 그만 하늘이 노래졌지요. 하지만 챙은 우물 속에서 혼자 있을 형을 생각했어요 .. (26쪽)
아를린 모젤 님이 글을 쓰고 블레어 렌트 님이 그림을 그린 《티키 티키 템보》(꿈터,2013)를 읽습니다. 먼 옛날 중국 이야기라고 하는데, 우리 겨레에도 이름을 놓고 우스꽝스러운 옛이야기가 있어요. 오래오래 잘살라면서 어버이가 아이한테 지어 준 이름이 너무 긴 나머지, 이름을 다 외고 부르다가 그만 아이가 숨을 거둔 옛이야기가 있어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부르기에도 사랑스럽게 이름을 지어서 선물할 노릇입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길거나 부르기 까다로우면 이름 구실을 못해요. 이름뿐 아니라 돈도 똑같아요. 돈을 많이 물려주어야 아이들이 즐겁지 않습니다. 많거나 적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즐겁고 아름답게 일해서 갈무리한 돈을 물려받을 때에 즐거워요. 100억 원이나 100조 원이 되어야 하지 않아요. 100만 원도 좋고 100원도 좋아요. 꿈과 사랑을 담은 돈을 물려주어야 어버이입니다. 꿈과 사랑이 깃든 집을 물려주어야 어버이입니다. 꿈과 사랑이 서린 이야기를 물려주어야 어버이입니다.
아이 이름을 불러요. 우리들이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지어서 선물한 아이 이름을 불러요. 그리고, 우리 어버이가 우리한테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답게 지어서 선물해 준 ‘내 이름’을 함께 불러요.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