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에레키테 섬 1 세미콜론 코믹스
츠루타 겐지 지음,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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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01

 


지구별에서 우리가 할 일이란
― 모험 에레키테 섬 1
 츠루타 겐지 글·그림
 오주원 옮김
 세미콜론 펴냄, 2013.12.27.

 


  겨울비 지나간 밤하늘은 더 환합니다. 밤별이 초롱초롱 눈부십니다. 고샅마다 등불이 켜진 마을에서도 밤별이 환하구나 하고 느끼니, 등불 하나 없는 숲속으로 깃들면 한결 포근하면서 사랑스러운 밤별잔치를 누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티벳이나 몽골이나 네팔이나 부탄에서는 얼마나 드넓고 아름다운 밤별잔치를 누릴까요.


  밤별잔치를 누릴 수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이루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고운 별빛을 품습니다. 높다란 멧골이나 싱그러운 숲이나 찰랑이는 바다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언제나 가슴 가득 별내음을 담습니다.


  먼먼 이웃 별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우리가 디딘 이 지구별 숨결을 깊이 헤아립니다. 먼먼 이웃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별 숨소리를 고루 살핍니다.


  어떤 나무도 졸업장 따위는 없습니다. 어떤 꽃도 족보 따위는 없습니다. 어느 풀도 은행계좌 따위는 없습니다. 즐겁게 뿌리를 내리고, 씩씩하게 줄기를 올리며, 해맑게 잎을 틔워,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라 수영이나 좀 하다 가려고요.” (10쪽)
- “다들 돌아갔니?” “응.” “미쿠라, 앞으론 어떡할 거니? 아무래도 본토에 돌아가겠지?” “아뇨, 할아버지랑 둘이서 시작한 일인걸. 저 사람들은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면 돼요.” (17∼18쪽)

 


  즐겁게 살아갈 나날입니다. 씩씩하게 노래할 하루입니다. 해맑게 이야기 나누는 삶입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면, 더 높은 학교에 다녀야 하거나,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이들한테 한결 너른 지구별을 일깨우면서, 아이들 스스로 씩씩하고 아름다운 빛을 가슴속에 품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고 싶어, 학교를 세워 무언가 가르칩니다.


  입시지옥이 된다면, 초등학교조차 아이들한테 덧없습니다. 제대로 된 삶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꿈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모든 학교는 감옥과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규칙이나 규정을 지키는 톱니바퀴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빛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삶을 누려야 합니다.


  즐겁게 살아야지요. 씩씩하게 노래해야지요. 해맑게 이야기해야지요. 아름답게 사랑해야지요. 아이도 어른도 이 지구별에서 할 일이란, 오직 사랑하는 삶입니다.


- “신기루 섬 말하는 거 아니냐? 그야 알지. 요샌 어떤지 모르겠지만, 옛 바다에는 득시글댔었지.” (30쪽)
- “그리고 기다린다. 잠자코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42쪽)
- “겐 영감님! 나도 드디어 봤어요, 에레키테 섬! 이 눈으로 봤다고요! 상륙할 뻔했는데 아까웠어요. 근데 근데 근데 아무도 안 믿어 준다고요!” (78쪽)

 


  츠루타 겐지 님이 선보이는 만화책 《모험 에레키테 섬》(세미콜론,2013)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모험’을 기쁘게 받아들일 한국땅 어른이나 아이는 얼마나 될까요. 그저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로만 여겨야 할까요. 즐겁게 누리는 삶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한국하고 이웃한 일본에서 드넓은 태평양을 누비는 예쁜 아이가 있으면, 일본과 이웃한 한국에서는 어떠한 삶터를 누비는 예쁜 아이가 있을까요.


  이 나라 어른들은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릴까요. 이 나라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랑을 나누는가요. 설악산이나 지리산이나 한라산을 누비면서 삶을 밝히는 어른은 얼마나 있는가요. 동해나 황해나 남해를 누비면서 사랑을 꽃피우는 아이는 몇이나 있는가요.


  도시로 가서 가수나 연예인이나 배우나 운동선수가 되어야 ‘꿈’인가요. 도시에서 미용사가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거나 회사원이 되어야 ‘직업’인가요.


- “미쿠라.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활 고집하지 말고, 좀 제대로 된 일을 해 보렴.” “응, 알아요.” (107쪽)
- “에레키테 섬은 대충 계산하면 지름 800미터 정도. 섬치고는 너무 작아. 게다가 항상 이동하고 있어서 위치가 일정하지 않으니 더 찾기 힘들고, 바람만 잘못 타도 잃어버릴 정도로 작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112쪽)

 


  시골 면소재지에 꼭 피시방이 있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뭐, 면소재지쯤 되면 한 군데쯤 있을 만하겠지요. 그러나, 면소재지이든 읍내이든, 피시방 한 군데조차 없이 고즈넉한 시골마을 되도록 가꿀 만합니다. 아이들이 갈 피시방도 없이, 어른들이 갈 술집도 없이, 모두들 숲을 누리고 바다를 누릴 만합니다. 어른들부터 술집을 닫고 편의점도 닫으면서, 피시방 또한 함께 닫고 극장 또한 없어도 돼요. 숲이 극장이고 바다가 극장인걸요. 숲에서 먹을거리를 찾고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건지면 돼요. 술을 마시고 싶으면 가게에서 사다가 마시지 말고, 집에서 스스로 담그면 돼요. 스스로 흙을 일구어 밥을 얻고, 스스로 풀을 뜯고 열매를 따며 고기를 낚아 아침저녁 차리면 돼요.


  씩씩하며 즐겁게 꾸리는 살림이 있은 뒤에 모험이 있습니다. 살림을 알뜰살뜰 가꾸면서 삶이 태어납니다. 살림을 맑고 밝게 돌보는 밑바탕에서 사랑이 싹틉니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이 극장입니다. 봄에도 겨울에도 지절거리는 숲속 새들 노랫소리가 극장입니다. 여름에 흐드러지고 가을에 멋드러진 숲빛이 극장입니다. 소나기와 무지개가 극장입니다. 누런 들판과 콩 터는 도리깨질이 극장입니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삶이 모두 다큐멘터리인걸요. 카메라로 찍어서 극장에서 보아야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누리는 삶이 언제나 다큐멘터리입니다. 할매 할배 살아온 이야기를 애써 녹음기에 담아야 하지 않아요. 우리 가슴에 고이 담아 우리 아이들한테 찬찬히 물려주면 넉넉해요. 옛이야기와 일노래는 언제나 가슴에서 가슴으로 물려주고 물려받았지, 녹음기나 책에 적바림해서 잇지 않았어요. 가슴으로 들려주지 못한다면 옛이야기가 아닌걸요. 가슴으로 부르지 못한다면 일노래가 아닌걸요.


- “아들의 연구 자료네. 유감이지만 이것밖에 안 남았지. 태평양 쓰레기 벨트를 알고 있나? 해안에서 흘러나온 무수히 많은 쓰레기가 모이는 곳인데. 쓰레기는 태평양의 해류를 타고 결국 특정한 해역에 갇히게 되지.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네.” (136∼137쪽)
- “포기하지 말고 힘내자. 설령 올해 망한다고 해도 3년 뒤가 있어. 그게 망해도 또 3년 뒤.” (172쪽)


  역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콩 한 포기가 살아온 나날이 역사예요. 역사책이 굳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쑥 한 포기가 걸어온 길이 역사예요. ‘한복’이 역사가 아니에요. 풀에서 섬유질을 얻고, 섬유질을 다스려 실을 자은 뒤, 가늘고 곱게 실꾸리를 엮어서 베틀을 밟아 천을 마련하고 이 천을 오리고 기워 옷을 짓던 삶이 바로 역사예요. 볍씨를 띄워 쭉정이를 가린 뒤 볏모를 내고, 모내기를 한 뒤, 즐겁게 보듬어 가을걷이를 하고 나서 절구질을 하고 조리질을 하며 솥에 물을 알맞게 맞추어 안쳐서 먹는 밥 한 그릇이 바로 역사예요.


  역사란 삶입니다. 문화란 삶입니다. 교육이란 삶입니다. 정치도 경제도 예술도 모두 삶입니다. 과학도 수학도 철학도 모두 삶입니다. 삶이 아닌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학문으로만 있는 학문은 ‘죽은 책’입니다. 죽은 책으로는 어떤 이야기도 샘솟지 않고, 어떤 문화도 되지 않으며, 어떤 역사도 되지 않아요.

 

  죽은 책만 붙잡으니, 이 나라 한국에 모험이 없어요. 죽은 책만 들먹이니 살갑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아요.


  살아서 숨쉬는 이야기를 나누어요. 살아서 숨쉬는 사랑을 노래해요. 살아서 숨쉬는 아이들이 되도록, 우리 어른들부터 살아서 숨쉬는 넋으로 하루를 일구어요. 4347.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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