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딱지나물꽃 책읽기
겨울바람 아직 수그러들지 않은 이월로 접어든 때부터 밭둑과 들판에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 꽃을 두고 우리 식물학자는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학명’이 없던 때, 일본 식물학자가 이름을 먼저 붙이기 앞서 한국 식물학자가 ‘광대 옷차림이 울긋불긋’하다고 떠올리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학자가 식물학에 따라 풀이름을 붙이기 앞서,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풀을 먹던 사람들은 풀마다 이름을 다 붙여 놓았다. 식물학자는 시골사람이 붙인 풀이름을 학명, 이른바 학술이름으로는 안 쓰기 일쑤인데, 시골사람은 식물학자가 붙인 이름이 이러거나 저러거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 한의사가 어려운 한문으로 이름을 붙이거나 말거나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풀은 풀이지 ‘草’도 ‘野草’도 ‘雜草’도 아니며, ‘植物’ 또한 아니다. 풀이 맺은 꽃은 풀꽃일 뿐 ‘野生花’일 수 없다.
코딱지나물은 코딱지나물이다. 코딱지나물이 맺는 꽃은 코딱지나물꽃이다. 시골마을에 깃들어 시골사람들 시골말을 듣기 앞서까지, 나도 ‘광대나물’이라는 이름만 듣고 알았지만, 시골사람들 누구나 코딱지나물이라고 말하는데, 나도 시골에서 시골사람으로 살면서 광대나물이라는 학술이름을 쓸 까닭이 없다고 느낀다.
찬바람 씽씽 부는 섣달 한복판에도 씩씩하게 잎사귀 내놓고 줄기 올리며 꽃을 피우는 이 앙증맞고 사랑스러운 들꽃은, 시골내음 그득한 이름으로 부르며 톡 따서 입에 넣어 야금야금 씹으면 봄내음 물씬 퍼진다.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생각을 기울인다. 다른 고장 다른 고을에서는 어떤 이름을 쓸까. 내가 이 풀과 풀꽃을 바라보며 새롭게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매서운 바람과 따순 볕 사이에서 흐드러지는 이 상냥한 들풀과 들꽃한테는 어떤 이름이 가장 곱게 어울릴까. 4346.12.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