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73) 다람쥐 농사

 

“아, 그거, 그건 다람쥐 농사야.” 다람쥐란 놈이 지난가을에 온갖 씨를 다 물어와 밭 여기저기 숨겨 놓은 것들이 저렇게도 싱싱하게 싹이 텄단다 … “아니야, 그냥 둬. 겨울 나면서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니까. 옛날부텀 엄벙덤벙이가 농사 잘한다 했어.”
《유소림-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 18쪽

 

  문득 궁금해 다른 이들도 ‘다람쥐 농사’라는 말을 쓸까 하고 찾아보니, 드문드문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시골에서 다람쥐를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이웃으로 지내는 분들은 ‘다람쥐도 농사를 거든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참말, 다람쥐가 겨우내 먹으려고 모은 온갖 나무열매(나무씨앗)가 흙 품에 안겨 포근하게 깨어날 테니, 다람쥐도 농사를 짓는다고 할 만해요.

 

 다람쥐 농사
 지렁이 농사
 제비 농사
 딱새 농사

 

  다람쥐 못지않게 새들도 농사를 짓습니다. 나무열매를 따먹은 뒤 씨앗을 똥과 함께 뽀직 내놓으면, 이곳저곳에 씨앗을 뿌리는 셈 돼요. 풀열매를 따먹는다면, 또 풀씨를 깃털에 매달고 이것저것 날아다닌다면, 풀씨를 퍼뜨리는 셈 되니, “제비 농사”라든지 “딱새 농사”도 있겠다고 느껴요.


  지렁이는 흙을 살찌우면서 “지렁이 농사”를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렁이가 없는 흙은 기름지지 못하고, 지렁이가 있는 흙은 기름져요.


  사람들은 흙 농사 말고 “사람 농사”도 짓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키우는 일을 가리켜 “자식 농사”라고 일컫곤 해요. 이런 삶과 일을 바탕으로 돌아보면, “책 농사”라든지 “글 농사”라든지 “이야기 농사”를 짓는다고 할 수 있어요. 삶도 농사요 사랑도 농사가 될 테고요. 흙을 가꾸듯이 마음을 가꾸고, 넋과 얼을 가꾸면서 말을 가꿉니다. 4346.12.1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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