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나날 지나도 읽는 책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은 책이 아니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이런 종이꾸러미는 몇 해 지나지 않아 목숨을 다하니까. 이런 종이꾸러미는 한두 해만 지나도 헌책방 책시렁에 못 꽂히니까. 이런 종이꾸러미는 한두 해쯤 들여다보고 모조리 종이쓰레기로 다루니까. 그런데,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을 번쩍번쩍 무지개빛으로 찍기 마련이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는 늘 가방에 집어넣고 다녀야 하며, 학교에서도 이 종이꾸러미만 펼쳐서 무언가 배우고 가르치도록 한다. 책이라 할 수 없는 종이꾸러미를 가르치고 배운다.


  마음을 밝히거나 살찌울 수 있는 ‘책’이라면, 첫째 도서관에서 건사한다. 둘째, 헌책방에서 알뜰히 보듬는다. 그러면, 교과서나 자습서나 참고서나 문제집 같은 종이꾸러미를 도서관에서 사들여서 갖추는가? 입시제도 바뀌는 틀을 아랑곳하지 않고 헌책방에서 이런 종이꾸러미를 책꽂이에 곱게 얹거나 꽂는가?


  이 나라에 책삶이 자리잡지 못하는 까닭은 책 아닌 종이꾸러미를 너무 끔찍하도록 많이 만들 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책 아닌 종이꾸러미를 달달 외우느라 막상 책을 읽지 못하도록 내몰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긴 나날이 지나도 읽을 책을 아이들이 곁에 두고 삶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긴 나날이 지나도 읽을 만한 책으로 삶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오로지 대학입시 하나 때문에 아이들한테 책을 멀리 하도록 내몬다. 어른들 또한 오로지 돈벌이 노릇 하겠다며 대학입시만 읊는 교사 되어 교과서붙이만 가르치려 한다. 이 나라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 아이도 어른도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라. 고등학교 마친 아이들이 다섯 해 뒤에 교과서를 다시 읽을 까닭 있을까. 고등학교 마친 아이들이 열 해 뒤에 자습서를 다시 배워야 할 까닭 있을까. 시험문제 때문에 외워야 하면 책이 아니다. 삶을 배우고 사랑을 느끼며 꿈을 키우도록 이끌 때에 비로소 책이다. 톨스토이 책을 백 해가 넘어도 꾸준히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정약용 책을 백 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읽히고 읽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책이기에 읽힐 수 있고, 책이기에 읽을 만하다. 책이 아닐 때에는 읽지 못하고 외워서 ‘내 이웃을 밟고 올라서는 더 높은 점수’를 따는 바보짓에 얽히고 만다.


  아이들한테 책 아닌 종이꾸러미 내밀며 닦달하면 닦달할수록 책하고 멀어지고 만다. 어른들 스스로 책 아닌 종이꾸러미 자꾸 만들면서 아이들을 들볶으면 들볶을수록 이 나라는 어둡고 슬픈 굴레에서 허덕이고 만다. 읽으려면 책을 읽어야지. 가르치고 배우려면 책을 손에 쥐어야지. 긴 나날 지나도 읽을 책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하고, 긴 나날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빛이 나며 아름다운 책을 학교에서 알리고 나누는 일을 해야 참교육이고 참배움 될 수 있다. 참삶 밝히는 참빛을 들려줄 때에 참길을 연다. 4346.1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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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2013-12-09 14:28   좋아요 0 | URL
매년 일간지에 대학 순위가 발표되고, 출신 대학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이 땅에서는 책 읽기 또한 입시의 한 부분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새벽에 학교 가서 밤중에 돌아오는 아이들에게 독서는 또 하나의 짐일 뿐입니다.

숲노래 2013-12-09 15:01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아름다운 책읽기'가 아닌 '짐스러운 입시지옥'에 얽매이는 동안에는
참말 아름다운 삶하고도 끝내 멀어지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