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아닌 거짓말

 


  아침에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나면 히유 하고 한숨을 돌린다. 저녁에 아이들 밥을 한 번 더 먹이고 나면 후유 하고 큰숨을 돌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차례 아이들 씻기고 나면 새삼스레 숨을 돌린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란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갓난쟁이였을 적부터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갔을 뿐 아니라, 하루 내내 눈이며 코이며 입이며 귀이며 뗄 수 없었다. 언제나 들여다보고 품에 안으면서 돌봐야 했다. 여섯 살 세 살로 살아가고, 이제 한 달 뒤면 일곱 살 네 살로 살아갈 이 아이들은 차츰차츰 스스로 하는 일이 늘어난다. 머잖아 작은아이는 아버지가 굳이 떠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수저질 훌륭히 해낼 테며, 참말 작은아이도 머잖아 웃옷이나 바지를 저 스스로 마음대로 입고 벗을 수 있으리라 본다. 이 아이들 살아갈 기나긴 앞날을 헤아리면, 어버이 손 닿는 나날은 참 짧다.


  아버지 어머니가 함께 놀지 않으면 서운해 하던 큰아이였지만, 또 아버지 어머니가 품에 안지 않으면 으앙 울던 작은아이였지만, 어느새 두 아이는 서로 아끼고 다투고 부딪히고 사랑하면서 신나게 논다. 그저 옆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 지켜보면서 집일을 하거나 글쓰기를 하면 된다.


  시골에 살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와 살아가는 집은 으레 저녁 여덟 시 넘어갈 무렵 찬찬히 아이들을 재운다. 저녁 여덟 시 넘어서 전화를 거는 이가 있으면 못 받기 일쑤이고, 받더라도 만만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집에서 아이들 보듬는 이웃은 저녁 일고여덟 시 무렵에 전화를 거는 일 없고, 저녁 아홉 시 넘으면 아주 바쁜 일이 아니고서야 전화를 걸지 않는다.


  엊저녁 어느 분이 전화를 거셨을 적, 나는 저녁을 한창 차렸다. 전화기를 옆구리에 끼고 소리통을 귀에 꽂고는 도마질을 하고 밥을 살피며 국물 간을 맞추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무와 오이를 채썰기 하고 접시에 담아서 밥상에 올렸다. 밥을 푸고 국을 떴지. 전화를 거신 분은 우리 살림을 아직 잘 모르시니, 아버지가 밥을 차린다는 말을 곧이듣지 않으셨는데, 이녁뿐 아니라 참 많은 내 이웃과 동무는 내가 아버지로서 집일을 도맡고 밥도 늘 차리는 줄 모른다.


  왜 어머니만 밥을 차리고 아이를 돌봐야 할까. 아버지가 아기한테 젖을 물리지는 못하지만, 젖먹이기만 못할 뿐, 아버지가 못 하는 일이란 없고, 못 할 일이란 없다.


  즐겁게, 기쁘게, 신나게, 아름답게 꾸리면 될 집일이라고 느낀다. 아버지가 되든 어머니가 되든, 아니 두 어버이 모두한테서 아이들은 즐겁고 기쁘며 신나고 아름다운 빛을 사랑스러운 손길로 받아먹으면서 자라면 튼튼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느낀다. 거짓말 아닌 거짓말로 듣는 내 이웃과 동무들이 ‘저 사람은 좀 남달라 집에서 집일 다 한다’고 여기지 말고, 이녁 집에서도 ‘어머니만 집일 다 하는 틀’을 깨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집을 하는 살림’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빈다. 4346.1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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